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타 Jun 15. 2024

글의 여백

"혹시 선재 업고 튀어 보셨나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다 보면 헤어 디자이너 분과 스몰토크를 나누곤 한다. 이런 스몰토크에서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잘 먹히는 주제 중 하나다. 다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이 많이 쌓여서 시간이 남으면 거의 책만 읽다 보니 영화, 드라마, 예능 등은 안 본 지 꽤 됐다. <선재 업고 튀어>를 비롯해서 네다섯 개 정도 시도하셨지만 결국 전부 실패하고 다시 침묵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문득 글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숏폼, OTT가 점점 퍼지는 지금 글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글을 읽는 건 영상을 보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글의 매력은 무엇일까.


책을 한번 봐봤다. 읽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영상이나 그림 보듯이 봐봤다. 보기만 해보니 새삼 빈 공간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한글은 물론이고 내가 아는 다른 언어에도 속을 색칠하는 글자는 없다. 모두 가느다란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픽셀 하나하나 가득 채워져있는 영상과 달리 글은 대부분의 공간이 텅 비어있다. 전체에서 까만 부분을 모으면 20% 정도는 될까. 그럼에도 우리는 글에서 충분한 존재감을 느낀다. 어쩌면 그 여백을 우리가 생각으로 채우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상은 모두 같은 장면을 본다. 인물의 모습도 모두 같은 걸 느낀다. 글은 다르다. 가령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녀"라는 묘사를 읽으면 사람마다 생각나는 모습이 다를 것이다. 글의 내용과 각자의 경험, 지식을 통해 장면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익숙해지면 이제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글의 내용과 내 생각을 결합시켜보게 된다. 그래서 글은 마치 음식 같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꼭꼭 씹어서 내 안으로 흡수시키는 걸 보면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먹는 속도가 다르듯이 글도 사람마다 읽는 속도가 다르다. 러닝 타임이 정해져 있는 영상과는 다른 부분이다. 같은 글 안에서도 그 문장이 내 생각과 얼마나 엉기는지에 따라 흡수하는 속도가 달라진다.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일시정지하면서 보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책은 가끔씩 어떤 문장을 만나면 덮어두고 몇십 분 동안 생각에 잠기곤 한다. 두세 번 다시 읽으면서 되새김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을 들고 다시 글을 보면 페이지가 가득 차 보인다. 나는 이게 글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을 보더라도 서로 다르게 느끼고 각자의 재해석으로 여백을 채우는 것. 독서모임 같은 곳에서 서로 어떻게 다르게 채웠는지 나눠보면 그 매력은 두 배가 된다.


글에 대한 생각이 늘어난 건 요즘 공모전에 낼 목적으로 단편소설을 쓰는 중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제대로 써보는 건 처음이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특히 쓴 글을 읽어봐도 모든 내용을 아는 상태에서 읽는 거라, 뒤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전혀 감이 안 오는 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며칠 전 만난 친구에게 지금까지 쓴 부분을 보여줬다. 차근차근 빌드업을 쌓아나가는 게 마치 장편 소설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그동안 거의 장편소설만 읽어서 그 형식이 익숙해서였을 것 같은데, 단편소설은 분량이 길지 않으니 좀 더 연결에 여백을 두면서 말하고 싶은 주제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너무 정확한 말이었다. 그동안 읽던 책뿐만 아니라 이런 에세이를 쓸 때도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형식으로 쓰던 편이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쓰게 된 것 같다. 게다가 단편소설을 쓰겠다고 해놓고 단편 모음집이라는 걸 지난달에 처음 봤다. 심지어 학생 때부터 자주 보던 소설들은 장편 중에서도 10권, 20권이 넘어가는 정말 긴 작품들이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단편 소설들을 읽어보면서 장면의 여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봐야겠다.


여담으로, 친구가 직설적으로 말해도 되냐고 물어본 다음 내가 괜찮다고 해서 피드백을 들었는데, 해주고 나서 이런 얘기에 정말로 기분 안 나빠하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사실 나도 신기했다. 예전에 [나는 ... 을(를)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에서 빈칸을 "지적"이라고 채웠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내 문제점을 모르고 그대로 살아가는 게 더 싫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해도 사람 감정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피드백을 받았을 때 기분 안 나빠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정확히는 어떻게 수정할지 아이디어가 계속 샘솟아서 기분 나쁠 겨를이 없었다. 친구가 '지금 빨리 가서 글 쓰고 싶지'라고 한 걸 보면 티가 났나 보다. 몇 달 정도 책 읽고 글만 쓰면서 보내고 싶은데 요즘 일도 외부 활동들도 바쁜 시기라 아쉽다.

작가의 이전글 안녕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