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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l 07. 2024

자연과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절로

산이랑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지인분이 신안사 템플스테이를 추천해 주셨다. 쓰다 보니 신안사의 '사(寺)'에 이미 절이라는 뜻이 있으니 신안사 템플스테이는 역전앞처럼 겹말일까, 신안 템플스테이 혹은 신안사 스테이라고 해야 맞을까 잠깐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튼. 마침 요즘 소설을 쓰고 있으니 속세와 연을 끊고(?) 마음껏 글 읽고 쓰겠다는 핑계로 템플스테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눈치챈 지인들도 있겠지만 내겐 특정 행동 패턴이 있다. 일단 무턱대고 계획하고, 그 계획을 지인들에게 떠벌리고 다닌 다음, 거짓말쟁이가 되기 싫어서 어떻게든 해내는 무시무시한 패턴이다. 그래서 이번 템플스테이에서도 기어코 가져갔던 책 두 권도 다 읽고 쓰고 있던 소설도 초고를 끝까지 마무리했다. 물론 소설 쓰기는 퇴고부터가 시작이라고들 하지만.

원래 일기예보에는 장마 예정되어 있었다. 비 와도 그건 그거대로 운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냥 있었더니 장마는 웬걸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는데 둘 다 상관 없다고 해도 사나보다. 덕분에 정말 푸르른 자연을 만끽했다. 절이라 하면 모두 흙바닥인 줄 알았는데 푸른 잔디가 깔려있어서 더 좋았다. 산이라 기본적으로 기온이 낮기도 하고 바람도 불어서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도 덥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마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면서 보냈다. 버스정류장 쪽으로 내려가서 정자를 끼고 마을을 거쳐 올라오는 한 바퀴 산책 코스가 있는데 틈날 때마다 수시로 몇 번이고 돌았다. 흙 내음 + 풀 내음과 계곡물소리가 생생하게 배경으로 깔리고 그 위에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화음으로 울리는데, 이 감동을 뭐라고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래가지고 소설은 어떻게 쓰려고)


나는 2박 3일이었지만 다른 분들은 전부 1박2일로 오셔서 3팀씩 총 6팀이 거쳐갔다. 신기하게도 전부 여성분이셨다. 사실 남성분이어도 내가 먼저 말을 걸진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덕분에 2박 3일 동안 거의 묵언수행하다시피 지냈다. 템플스테이 온 사람들과 대화한 건 첫날 저녁 공양(여기선 식사를 공양이라 한다) 때 한 번밖에 없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드시던 분이 '왜 혼자 오셨어요? 혼자 오기 어려울 텐데 대단하다.'라고 물어보셨다. 장금이가 왜 홍시 맛이 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계획을 세울 땐 혼자인 상태로 시작하는 게 기본이고, 그냥 그대로 와서 혼자인 건데 왜 혼자냐고 물어보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냥요, 하핫'하면서 얼버무리긴 했지만 아직도 어떤 대답이 좋았을진 모르겠다. 근데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행과 같이 오시긴 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잠깐 생각이 들긴 했지만 딱히 혼자 온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으니 상관없겠지 했다.


묵언을 하면서 스님처럼 고행을 한 건 아니고 고양이랑 많이 놀았다. 사진처럼 신안사에는 고양이가 지천에 널려있다. 하지만 절에서 키우시는 고양이들 빼고는 거의 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갔다.

키우는 아이들도 처음부터 개냥이는 아니었는데, 사실 그랬으면 감흥이 덜 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경계를 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곁을 내주더니, 둘째 날 오후쯤 되자 (그래서 2박 3일로 와야 한다) 멀리서 눈만 마주쳐도 오도도도 달려와 무릎을 내놓으라고 다리에 몸을 비벼대서 감동이었다. 하지만 알레르기 약을 두 개 밖에 안 들고 와서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이 다가와도 안아주지 못해서 슬펐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하면 알레르기를 주지 말던가, 알레르기를 줄 거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게 하던가 라며 괜한 불만을 토로해 봤지만 결국 약을 안 챙긴 내 잘못이니 누구를 탓하리오.


새벽 예불도 참석해서 108배도 해봤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고요한 자연소리밖에 없는 새벽에 3시부터 30분 동안 울리는 목탁소리는 파괴적이었다. 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날 제대로 절하는 자세도 배웠다. 일단 허리 먼저 굽어지거나 손이 먼저 나가면 안 된다. 상체가 바닥과 수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합장을 한 채로 (다리 힘만으로!) 일자로 내려와야 한다. 게다가 무릎을 쿵 찧는 소리가 나면 안 되니 (다리 힘만으로!)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그다음 절을 하고 나서도 다시 상체만 먼저 세우고 합장을 한 채로 (다리 힘만으로!) 올라와야 한다. 108배를 하면 허리가 아프다고들 하는데 나는 발목과 종아리가 너무 아팠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정자세로 끝까지 해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발목과 종아리는 괜찮아졌지만 허벅지에 알이 배겼는데, 생각해 보니 맨몸 스쿼트 108개를 한 거나 마찬가지라 그럴만했다. 평소에 하체 운동 좀 열심히 할 걸 그랬다.


마지막 날엔 이런 프로그램이 으레 그러듯이 설문이 있었다. 보통 이런 설문에서는 크게 불편한 것만 없었으면 별생각 없이 매우 좋음을 선택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매우 좋음을 찍었다. 나도 지인분께 추천받아서 온 건데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고 싶다. 자연을, 특히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면 한번 와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한번이라고만 하는 이유는 한번 오시면 저절로 또 오게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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