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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16. 2023

우산을 왜 들고 왔지?


아침 일찍 집을 나서기 전, 날씨를 체크했다. 예보에 따르면 오전에는 흐리겠지만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다. 나는 현관에 놓여있던 우산을 챙겨 나왔다. 오늘은 아침에 수업 한 개, 오후에 시험 하나와 팀플 수업이 있었다. 수업은 세 개뿐이지만, 각 수업 사이에 공강이 있어 수업을 모두 마치면 대략 저녁 8시쯤 되곤 한다. 따라서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올 테니 오후에 비가 온다면 우산이 필요할 것이었다.


학교는 아침부터 붐볐다. 학생들을 실은 차와 택시가 수없이 오갔고, 걷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첫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의실에 거의 다다랐을 때, 복도에서 한 친구를 마주쳤다.


바쁘게 걸어오던 친구가 나를 보더니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똑같이 응수했는데, 친구가 내손에 들려진 우산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비 온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친구가 빠르게 말했다.

"날씨가 흐리긴 했어. 아무튼... 수업 파이팅!"

그리고는 휙 지나갔다.

멀어져 가는 친구에게도 파이팅이라고 외친 나는 속으로 나의 준비성을 마구 칭찬하며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오전 수업은 대상관계이론에 대한 것이었다. 오늘은 그중 정신증의 하나인 조현증에 대해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대상관계이론을 좋아하지만 오후에 시험이 있다 보니 강의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마음 한편에서 어제까지 공부한 내용이 뒤죽박죽 떠오르고 있어서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다. 가끔씩 들리는 수업 내용을 메모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학생식당에서 간단히 때웠다. 매주 목요일마다 함께 점심을 먹는 친구가 있는데, 오늘은 내가 바쁘다 보니 조금 이르게 밥을 먹었다. 우리는 대화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음식을 입에 넣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져 카페인의 도움을 받으며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나니 오후 2시를 훌쩍 넘겼다. 시험 과목도 상담분야였는데 걱정한 시간에 비해 시험은 금방 지나갔다.


시험을 끝내고 스마트폰을 보니 점심을 같이 먹었던 친구로부터 끝나면 산책하자는 문자가 와있었다. 나는 큰 일을 끝낸 기분에 홀가분하게 친구와의 산책을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산책 중에 갑자기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책 전까지 우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친구가 공부하고 있던 곳에 우산을 두고 나온 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집을 나선 순간부터 산책 전까지 한 손에는 우산과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어깨에는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멘 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런데 허탈하게도 우산이 없는 순간에 비가 내렸다. 언젠가 내릴 비를 대비해 작지도 않은, 기다란 장우산을 들고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야속하게도 정작 비가 오는 순간에는 손에 그 우산이 없었다. 처음에는 우산을 다시 가져오려고 생각했지만,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지 않아서 이내 포기했다. 친구와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수다를 떨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비는 점점 거세졌다. 결국 친구와 나는 계획한 산책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서둘러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친구는 나에게 우산을 지팡이 삼아 들고 다니라고 농담을 건넸다. 나도 친구의 말에 내가 정말 오늘 내내 우산을 지팡이로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종일 우산을 가지고 다닌 보람을 아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친구와 헤어진 후 다음 수업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비가 계속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제야 다시 스스로를 칭찬하여 역시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위안했다. 천천히 걸어도 5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위협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우산으로 막으니 새삼 마음이 든든해졌다. 우산을 챙겨 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어떤 날은 우산을 챙겼음에도 비가 오지 않은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종일 들고 다닌 우산을 버스에 두고 내려 용도대로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히려 잠깐이라도 우산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런 날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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