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한 나의 경험은 어느새 많이 달라졌다.
한때는 거창한 단어였고, 철학적인 질문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도 바뀌었다.
자유 하나에 가족을 걸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주말 아침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날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일어날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동네 친구와 만나, 영어 단어를 적어둔 작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나보다 큰 눈삽을 들고 어둑어둑한 길을 걸었다. 김 씨 일가의 동상이 세워진 곳에 가서 눈을 치우는 일. 그게 학생이던 나의 일상이었고, 의무였다.
충성심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나이부터 반복되던 습관이었다. 습관이라기보다 구조에 가까웠다.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이미 그렇게 하기로 정해진 것에 나를 끼워 맞추는 삶이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 느낀 자유는 훨씬 컸다.
말할 수 있다는 것.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어디로 갈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
그때의 나에게 자유는 ‘선택지'와 같은 뜻이었다. 하나만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내 세상이 조금은 더 넓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한국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고, 나도 어느새 직장인이 되고 나니 자유의 얼굴이 조금 달라졌다.
출근 전날 밤이면 괜히 바로 자기가 싫다. 일찍 자면 손해 보는 느낌이다. 지금 잠들면 아침에 눈을 뜬 내가 다시 쳇바퀴 같은 일주일을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월요일이 다가오는 게 분명한데,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괜히 휴대폰을 더 보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영상도 끝까지 본다. 눈을 감지 않으면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것처럼. 적어도 잠드는 시간만큼은 내가 정하겠다는 작은 고집처럼.
일이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다. 그렇게 몰두하다 보면 “북에서 온 사람”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나를 전부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한 명의 직장인으로 불리고, 회의에 참석하고, 쌓인 일을 하고, 월급날을 기다린다. 스스로 벌어 생활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여행을 고민하는 삶. 이 삶은 분명 내가 선택한 자유가 있는 삶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날들이 앞으로도 계속, ‘평생’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참 버겁다.
월요일이 오고, 또 오고, 또 온다는 생각.
이 리듬이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반복이 싫다기보다, 조금은 무겁다.
어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지하철도 없던 시절, 토요일에도 출근하던 날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또 살아냈을까.
나는 이미 한 번 큰 이동을 겪은 사람이다. 남과 북이라는 경계를 넘으며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옮겨왔다. 그때 자유는 생존과 맞닿아 있었다. 어디에 살 수 있는지, 무엇을 말해도 되는지,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 자유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일이었고, 그 자체로 숨이 쉬어지고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겪은 자유에는 선택이 많아진 만큼 책임도 늘었다. 아무도 나를 통제하지 않지만, 대신 내가 나를 통제해야 한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뜻이다.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대신, 실패도 온전히 내 몫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줄어든다. 핑계 댈 구조가 사라질수록, 나는 나 자신과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자유는 정말 많을수록 좋은 걸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고, 아무도 나를 통제하지 않는 상태.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 삶. 처음에는 그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서 보면, 모든 방향이 열려 있다는 건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할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유는 넓지만, 넓은 만큼 막막해지기 쉽다.
북한에 있을 때는 선택지가 적었다. 대신 고민도 적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는 ‘스트레스’라는 말이 없었다. 머리가 아프다, 골이 아프다 하는 표현은 있었지만, 선택의 과부하에서 오는 피로를 설명하는 단어는 없었다.
한국에 와서는 선택지가 많아졌다. 대신 매일 결정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직장을 계속 다닐지, 다른 길을 찾을지, 공부를 더 할지, 어디에 살지, 누구와 함께할지. 자유는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나를 불안하게도 했다.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도 함께 따라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유를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자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상태”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하고.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면 나는 방향을 잃고 허둥댄다. 하지만 경계가 너무 단단하면 갑갑하고 숨이 막힌다. 남과 북 사이를 건너온 사람으로서, 나는 경계를 쉽게 말할 수 없다. 경계는 나를 가두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주기도 했다. 울타리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한국인이 된 지금, 나는 거대한 자유를 실감하기보다 하찮고 소소한 자유를 붙잡고 산다. 점심을 혼자 먹을지 동료와 먹을지 고르는 일. 퇴근 후의 시간을 나에게 쓰는 일. 출근 전날 밤 잠드는 시간을 조금 미루며 “조금만 더 있다가 자야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일.
나는 북에서 왔고, 지금은 한국에서 산다.
북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한국 사람이고, 학생이었다가 이제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 모든 과정에 자유와 선택과 결과가 있었다.
나는 자유를 얻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자유를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자유는 빛 같다.
그런데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진다.
선택이 많아질수록 책임도 분명해진다.
통제가 줄어들수록 스스로를 다스려야 할 몫이 커진다.
나는 자유를 무한정 원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
한가한 일요일 오후, 괜히 노트북을 켜고 이런 글을 끄적이며 생각한다.
월요일은 오겠지만, 내 삶이 전부 월요일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