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을 견디는 연습을 하고 있다

by 강은

며칠 전에 잠이 안 왔다. 갑자기 떠오른 부동산에 대한 고민. 실은 전에도 이런 적이 있다. 지금 분양을 넣는 게 맞자? 지금 사도 되나? 이 가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했고 책임감에 무거웠다.


그냥 한 번 동네를 가본 것뿐인데. 우연히 친절한 사장님을 매물을 보고 온 것뿐인데. 내일까지 살지 말지 결정하라고 부동산 사장님이 마감시한을 준 것도 아닌데. 물론 그러다 놓쳤던 지난 기회. 또 주저하다 상황이 반복될까 두려움에 빨리 뭘 해야 하지 않냐는 조급한 마음이 든 것도 맞다. 그런데 문득 그보다는 내가 모호한 상태를, 결정하기 전에 지나가는 애매한 중간단계를 견디기 어려워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소개팅에서도 그랬다. 소개를 받아 처음 나갈 때까진 부담이 없었다. 상대가 괜찮다 싶으면 나도 적극적이 되었다. 아니다 싶으면 단칼. 그래,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보통 상대들은 첫 만남엔 완전한 호감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닌 것도 아닌 어느 중간쯤 있었다. 나쁘지 않네, 잘 모르겠다의 느낌일 때는 어려웠다. 괜히 내가 좀 더 친절하게 반응하거나, 먼저 연락을 보내려고 하면, 부담이 들었다. 내 마음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상대가 적극적으로 연락이 오면, 어느 순간 답장을 보내는 게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다음번엔 영화 볼래요?' 같은 제안에 누군가는 그냥 가볍게 만나봐, 세 번은 만나봐야지가 나는 늘 어려웠다. 그래서 장문의 거절을 보내곤 했다. 그 애매하고 모호한 상황을 얼른 단정 지어야 마음이 편했다.



잠이 안 오던 밤, 문득

이 모호함을 견디는, 지나가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아니 너무 의미 부여를 하지 말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부동산에 들린 것뿐이고, 오늘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을 것이고, 내일이나 혹은 이번 주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하자라고.

집을 산다/만다, 만난다/안 만난다, 이렇게 할 거야 말 거야 이분법으로 바로 단정하지 말고, 오늘, 내일, 이번 주, 이렇게 세분화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닫아두겠다고.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 지인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경험도 있고요.

라는 소개팅 상대의 말에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나는 연수든, 낯선 곳이든, 낯선 이와 만나는 걸 좋아한다. 그냥 지인, 친구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마음 나누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잘한다. (물론 주변이 다 여자지만) 어쨌든 소개팅하면 왠지 목적이 있으니까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데 그냥 지인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좀 가벼워질 것 같다.



삶이라는 게 실은 다 모호한 건데.

그럼에도 이렇게 결정이라 이름 붙이는 순간은 늘 고민되고 견디기 어려웠다. 지금은 그냥 탐색 중일 뿐이라고.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말해본다. 그런 중간 과정을 견디고, 지나가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해질 녘의 하늘, 모호해서 더 아름다운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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