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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 Jun 10. 2021

우울의 밤

 날이 흐려지고 있는 저녁입니다. 오늘은 기차 안에서 편지를 씁니다. 옆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편지를 쓰니 기분이 색다릅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사실 어젯밤에도 잠을 설치는 바람에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밤만 되면 검은 생각들이 왜 그렇게 몰려오는지,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것일까요. 마음속에 모습을 꽁꽁 숨기고 있던 속상한 마음과 해로운 생각들이 밤만 되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검은 밤과 성질이 같기 때문일까요.


 특히 홀로 눈뜨고 있는 밤이면 머릿속은 더욱 시끄러워집니다. 너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어렴풋이 되새겨보자면, 과거에 속상했던 일들을 다시 꺼내보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는 참 중요합니다. 과거가 쌓여 현재의 내가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하지만 늘 소중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다지도 현재를 괴롭히는 것을 보면요. 과거에 들었던 못된 말, 속상한 말, 누군가 나에게 보냈던 싸늘한 눈빛들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 살아있습니다. 과거는 때로 미래를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잊고 싶은 기억 또한 나의 기억이기에 지울 수 없고, 감각을 강렬히 때렸던 기억은 더욱이 깊이 박혀 감출 수도 없게 합니다.


 간혹 조심성과 배려가 부족한 사람들 때문에 잊지 못할 기억들이 생긴 것이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잊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고는 합니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저 잊히기에는 시간이 너무 느린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힐 거라고 여기며 겨우 눈을 감고 머릿속을 비워냅니다.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를 잘 살아가는 방법과 올바른 미래로 가는 지름길을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아요. 하지만 과거를 잊고 치유할 수 있는 정보는 미흡합니다. 그리고 누구도 잊지 못할 과거의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 적도 없습니다. 그저 견뎌내며 시간을 보내는 방법만이 정답이기 때문일까요? 그런 것이라면 저는 항우울제를 몇 년이고 더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견디고 견디다 너무 아플 때에는 손을 뻗어 누군가의 옷자락을 잡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를 아껴주는 사람,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의 옷자락을.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요, 요즘은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들이 참 고맙습니다. 홀로 싸우다가도 기대어 쉴 곳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밤의 저는 또 얼마나 오래 잠들지 못한 채 눈꺼풀만 덮고 있을까요? 많이 힘들겠지요? 마음이 너무 무거워 홀로 눈물을 훔칠지도 모릅니다. 많이 아파하겠습니다. 열심히 아파하며 과거와 싸우다 돌아와 내 사람들에게 기대어 쉬어가겠습니다. 차근차근 이겨내 보겠습니다. 당신께 안부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을게요.


 오늘은 감추고 싶던 우울이 잔뜩 묻어난 편지였습니다. 어느 우울한 날,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날, 사소한 타인의 불행이 마음을 놓게 할 것 같은 날에 이 편지를 꺼내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날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저는 내일 또 편지하겠습니다.


 21. 06. 10. 나무.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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