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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빛 Jul 24. 2021

아팠던 아저씨에게

더운 여름이었다.


반짝이는 파란색 미러 썬그라스를 쓰고 화려한 바지를 입은 중년의 아저씨가 밝은 모습으로 카페에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정말 활기찬 미소와 인사였다.


나도 '안녕하세요' 하고 웃으며 인사했다.

아저씨는 활기찬 얼굴로 '달달한 커피'를 추천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직접 만든 바닐라빈 시럽이 들어가는 커피를 추천해드렸고 아저씨는 좋아하시면서 커피를 받아 들고 활기차게 나가셨다.



한 달쯤 지났을까? 그 아저씨가 또 카페에 오셨다.

지난번에 드셨던 '달달한 커피'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손님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나는 ‘저번에 드셨던 거요? 네! 지난번처럼 더 달달하게 드릴게요!' 하고 얼른 커피를 만들어드렸다.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아저씨는 주기적으로 카페에 오셔서 달달한 커피를 사들고 가셨다.

가끔은 내가 만든 유기농 쿠키도 포장해가셨는데 '집에 가서 쿠키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라고 표현하시면서 밝게 웃어주셨다.

 

어느 날 다시 오신 아저씨는 갑자기 자신이 암 환자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근처 큰 병원에서 항암치료 중이라고.

사실은 이미 암이 온몸에 퍼져서 치료가 힘든 상태라고 하셨다.

고된 항암치료를 마치고 집에 가는 날에 가는 길에 우리 카페에 들러 고생한 자신을 위해 달달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작은 낙이라고 하셨다. ‘이 정도 기쁨은 누려도 되지 않냐'라고 하시면서.


나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하다. 치료 잘 될 거다.' 등의 말씀을 드렸다.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어떻게 말을 해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단 생각과 기분 상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바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기가 조심스러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씩씩했지만 뒷모습은 왠지 힘들어 보였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아저씨가 생각날 즈음, 아저씨가 또 오셨다.

처음에 뵈었을 때보다는 조금 야위어계셨다.

아저씨는 내게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해주셨다.

배드민턴을 너무 잘 치셨고, 전국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잘 치셨고, 너무 건강해서 자기 자신을 과신했다고 하셨다. 이상 징후가 있었을 때 조금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치료를 받고 나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고 하셨다.

나에게 꼭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항암치료가 많이 지친다고. 치료가 끝나고 바로 며칠 사람처럼 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그때 책도 보고 하지만 그다음부터 다시 치료에 들어가는 시간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아저씨는 그날도 내가 만든 맛있는 쿠키와 달달한 커피를 사들고 집으로 가셨다.






이제는 아저씨가 오시지 않아도 생각이 났다.

오실 때가 됐는데... 치료는 잘 받고 계시는지...

걱정도 되었다.

아저씨를 기다리다 불현듯 아저씨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가 정확히 언제 오시는지 모르니, 다음에 오실 때는 언제 오실지 꼭 여쭤보고 기다려야겠다고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던 아저씨가 또 오셨다!

나는 재빨리 "이번에 항암 들어가시면 얼마나 걸리세요?" 하고 여쭤봤다.

아저씨는 한 2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럼 2주 뒤에 오시는 거죠? 제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저씨는 그날도 달달한 커피를 사 가지고 가셨다.






나는 또 바쁜 일상을 살았고,

시간이 지나자 정말로 아저씨가 오셨다.


전보다는 더 야윈 얼굴이었지만 아저씨는 그날따라 바로 가지 않으시고 의자에 앉아서 조금 이야기를 하셨다.


사실 전에 내가 '기다리겠다고' 말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고.

정말로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내내 치료하는 동안 정말로 큰 힘이 되었다고..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정말 그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린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사실 아저씨가 힘이 되었다고 표현해주시지 않았다면 아저씨의 마음을 몰랐을 것이다.

아저씨가 치료받는 동안 큰 힘이 되었다 하시니 나도 마음 한켠이 울컥했지만 평소와 다르지 않게 대화를 했다.

아저씨는 지금 너무 슬퍼하고 있는 자신의 따님 이야기도 하셨다.



아저씨는 나에게 '이 동네에서 이렇게 커피만 팔 것 같지는 않고, 글을 쓰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음악을 한다고 말씀드렸다. 종종 그림도 그린다고 말씀드렸다.

생각해보니 가사를 직접 쓰고 있으니 글을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저씨는 우리 가게를 찬찬히 둘러보시며 가게에 있는 나무 의자며, 가구며.. 정말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다 예쁘다고 해주셨다.

나는 아저씨가 내가 고른 의자들과 가구들의 어여쁨을 알아봐 주셔서 좋았고,

무엇보다 아프신 와중에도 나를 알아봐 주셔서 고마웠다.


아저씨는 내게 시간을 많이 뺏었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하시고는 길을 떠났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작년 한 해 동안 저에게 오셔서

달달한 커피 한잔, 쿠키 하나에도 기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어서 저도 정말 좋았어요.

아저씨,

작년에 제게 글을 쓰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셨는데

저 이제는 정말로 글도 쓰고 있네요.



그동안 성함도 못 여쭙고, 지금 어디에 계신지 모르지만,

제 마음속에 아저씨 활기찬 미소, 얼굴, 목소리 다 기억하고 있어요.



아저씨,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더는 아프지 마시고

어디에서든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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