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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빛 Feb 22. 2021

느린 시간, 빠른 시간


느린 시간, 빠른 시간


  내 인간관계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분포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방에 내려와 가게를 오픈한 건 ‘느린 시간’을 살고 싶어서였다.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는 서울의 지하철,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 사람들이 가득 차 위에서 내려다보면 온통 까만 머리만 보이는 백화점. 젊은 시절 많이 누리고 많이 즐거웠지만 14년간의 생활 끝에 나는 남편과 함께 지방으로 이사 왔다. 그게 좋았다. 조금 덜 붐비고, 탁 트인 풍경이 좋았고, 내내 그리웠다.

  한적한 동네에서 카페를 여는 꿈을 꾸었다. 사람들에게 커피를 내어주고 나의 작업과 건강한 일상생활을 틈틈이 유지하며 가까운 자연 속에서 매일 산책하는 그런 삶을 말이다.

  정작 오픈을 하고 나니 나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렀다. 잘 유지될 줄 알았던 ‘나 개인의 삶’은 한쪽 구석에 완전히 던져두고 일에만 몰두했다. 카페를 자리 잡는 일은 내가 1인 가게 운영 패턴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가장 컸다. 게다가 원두, 우유, 밀가루 등의 원재료 말고는 모든 디저트 메뉴와 커피 소스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으니 일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가게에서 점심도, 저녁도 잘 먹지 못하고 마감을 하고 허기진 상태로 집에 가면 요리를 제대로 해 먹을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가게에서 얼어있던 몸을 녹이고 나면 녹초가 되어 TV를 보며 머리를 식히거나 쓰러져 잤다. 그러니 집안일이 잘 될 리 없었다. 세탁기 돌리는 일이며 설거지, 청소도 팔이 아파 잘 못하고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시간이 나면 마트에 가서 카페에 필요한 장을 보고 손님들에게 판매할 디저트를 만들었다. 틈틈이 인터넷 사이트도 관리해주어야 해서 시간은 더욱 없었다. 무엇보다 나 아니면 대신 일을 해줄 사람이 없는 1인 가게 사장이었다.
  직장생활을 했을 때 퇴근 후 저녁 장을 봐서 요리를 열심히 해 먹었던 나는, 카페 일을 하면서도 이게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산이었다. 일과 생활의 밸런스는 무너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가게는 처음에 상상했던 것만큼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어떤 날은 사람이 많았지만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사람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조차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도 사람이 없어도 할 일은 항상 많았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다.
  그때 깨달았다. 장사란 쉽지 않은 것인데. 그리고 내가 살던 수도권과 이 곳은 인구수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데. 우리 카페보다 좋은 카페와 공간도 넘쳐나게 많은데 하면서.






  내가 14년간 수도권에서 쌓았던 친한 지인들이 먼 거리임에도 가게에 놀러 왔다. 인생 잘 살았다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한편으로 그 친구들은 내가 수도권에서 장사를 했다면 자기는 매일매일 내 카페에 출근도장을 찍었노라고 이야기를 했다.

  ‘차라리 서울에서 장사를 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그 반대였다. 정신을 차리고 애초에 우리가 지방으로 온 이유를 생각했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살기 위해 이 곳을 택했는데, 나의 일과 생활 패턴은 치열하게 지냈던 지난 시절 그대로 악작 같이 일하고 있었구나.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꼭 만들고 일과 삶의 밸런스를 찾아야겠다 다짐한 것이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이다. 주변에 가게 운영을 오래 하시면서 자신의 삶을 잘 살고 계시는 다른 사장님들을 보며 나도 나의 삶을 놓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로하스의 삶. 워라벨. 느린 시간을 사는 삶.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분명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살 수 있는데 그동안 가족들을 다그치며 너무 바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동안 밥도 잘 못해먹고 운동도 못하고 건강을 잃은 것은 아닌지.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새 시간이 빨리 흘러 두 살이나 더 먹고 나니 조금은 억울했다.



 내 청춘에게 더 이상 미안한 일을 만들지 말자고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지금이 가장 빛나는 청춘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이 가게에서의 일이 모두 흘러가지 않도록 기억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삶의 시간 속에서 나를 붙잡아

느린 시간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도록

내 삶과 청춘을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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