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수고 속에서 살아가기
3년 전 수도권을 벗어나 카페를 열고 내 삶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소비의 패턴이었다. 서울에서는 몇 발자국만 나가면 돈을 쓸 곳이 널려있었고, 사람을 만나든 데이트를 하든 어디에 가서 돈을 써야 했다. 직장인이 받는 월급을 받았으니 몇만 원짜리 옷이나 몇십만 원짜리의 옷도 툭툭 사기도 했다. 도시는 원하기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가까운 곳에서 너무 쉽게 구경도 할 수도 살 수도 있는 곳이었다.
이곳의 생활은 이전의 생활습관을 고수할만한 주변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작은 마트를 가려면 차로 5분 정도, 옷을 사려면 차로 15분 정도를 나가야 했다. 소비 다이어트를 결심하던 차에 운 좋게도 소비하기가 어려운 구조에 놓여있다 보니 저절로 뭘 사는 행위 자체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쉬는 날 하루 빼고는 카페에 묶여있으니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무언가를 살 시간도 잘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나의 소비생활에 큰 변화가 생긴 건 주변 환경보다도 내가 장사를 시작하고부터였던 것 같다. 월급을 받고 일하던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가게를 차리고 내 손으로 메뉴를 만들고, 한 잔 한 잔을 판매하며 내 땀방울이 섞인 돈을 벌어보니 시중의 물건 가격이 쉽게 보이지가 않았다. 이전엔 머리로 알았지만 우리나라가 물가가 싼 편이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월급도 내가 땀 흘려 번 돈이고 장사해서 번 돈도 내 돈인데 왜 다르게 느껴졌던 걸까?
개업 후 6개월이 안된 시점에 코로나가 터졌다. 그 시점에는 3만 원짜리 옷이 있으면 ‘내가 커피를 10잔은 더 팔아야 버는 돈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인구가 한정된 도시에서 경험상 새로운 10명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매출에 3만 원이 추가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서서히 내가 하는 소비에 더 신중해지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게 되었다.
지금은 카페 운영 3년 차, 물건값을 커피값에 빗대어 계산해보는 그런 습관은 없어졌지만 장사를 통해 하루 매출에 따라 불안하기도 때로는 안도하기도 했던 시간들 덕분에 분명 삶을 조금 배운 것 같다.
처음 장사를 하는 내게 아버님은 ‘장사는 경험’이라고 하셨다. 잘되든 안되든 장사를 해본 사람은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고.. 건물 주인아저씨도 이전에 카페를 직접 운영해보셨기에 '장사를 해보지 않았다면 그 어려움을 끝까지 몰랐을 거'라고 말씀을 해주시며 코로나 시기에 어려워진 나를 도와 임대료를 깎아주셨다. 나도 내가 카페를 운영해보지 않았더라면, 장사를 해보지 않았다면 그분들의 어려움을 평생 몰랐을 것이다.
내가 힘들어보니 다른 사람들의 수고와 어려움이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비의 패턴도 조금 달라졌지만 내가 장사를 하며 정말로 알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수고들을 더 느끼게 된 것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그분들이 했을 수많은 수고와 노력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커피 한잔에 원가가 얼마야?" 이 말을 정말 싫어한다. 커피 한 잔에는 잘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여러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 커피 농장에서 생계로 임하는 농부들 때문에 공정무역거래를 사용한다. 또 로스터들의 오랜 실험과 노력, 그리고 나 같은 카페 주인의 노력-커피를 위해 연습하고 공들인 시간들, 거친 노동력, 공간 유지, 인건비, 재료비 등이 커피값 안에 복잡하게 포함되어있다. 그래서 커피를 말할 때 사람들이 습관처럼 말하는 원가를 말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수고가 녹아든 것이 이것뿐이랴.
장사를 통해 배운 것들은 너무나 많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수고 속에서 내가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모든 순간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 기대어 산다.
나는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나를 도와준 건물주인아저씨 덕분에 버틸 수 있었고,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 나와 따뜻한 눈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아끼지 않는 그런 손님들 덕분에 힘든 겨울을 건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감사한 일이 너무 많아졌다.
내게 재료를 배달해주시는 택배 기사님들과 맛있는 커피를 제공해주시는 로스터분들, 커피를 재배해주신 농부분들의 노동에, 내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가게 상인분들에게 감사한다.
내 손으로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어드리고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안락한 카페 안에서 여름에는 시원하게,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일할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한다. 번 돈을 모아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생일 선물을 살 수 있고, 저금을 할 수 있고,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음에 감사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 덕분에 살아가는 것 같다.
장사를 통해 배운 것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 속에서 내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음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마음,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나도 남들을 더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