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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있는 이곳에서.

House I used call Home

by 심루이

심이는 나 못지않게 베이징을 사랑한다. 다섯 살부터 베이징에서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이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곧 베이징을 떠날 거라고 얼마 전 얘기했을 때, 한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을 수십 개나 열거하는 내 앞에서 심이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베이징은 자기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고, 떠나기 싫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은 알지만 속상하다고 했다. 당연히 속상하겠지,라고 다독이는 내게 심이는 의외의 말을 했다.


엄마 나는 베이징 이 집이 너무 좋아. 다음에 이 집에서 또 살고 싶어.


그 사실만은 의외였다. 나와 춘은 사실 이 집을 탐탁지 않아했다. 크지도 않고,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늘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을 꿈꿨다. 베이징 생활 초반에는 새로운 집을 열심히 알아보기도 했다. 막상 살다 보니 대단지의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중국에서 하는 이사라는 것이 생각만 해도 귀찮아서, 그냥 살자는 것이 벌써 5년이 되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 다시 베이징에서 살게 된다면 당연히 더 좋은 집을 구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이의 마음속에 이 집이 그렇게 큰 의미일 줄은 정말 몰랐다.


아이의 대답을 떠올리며 집을 둘러봤다. 문득 나도 이 집을 꽤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답답한 벽에도 내가 애정 하는 베이징 지도를 놓아서 그곳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 용도를 알 수 없던 작은 방 옆의 희한한 공간도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앉아 중국어를 처음 배웠고, 좋은 책들을 읽었다. 사범대학 부속 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심이 방 큰 창문도 좋아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 창문의 암막 커튼을 쫙 걷어버리고 창문을 여는데, 그 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였다.


때마침 슈퍼밴드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House I used to call Home.>


It was here on this floor that I learned to crawl

여기 이 바닥에서 기는 방법을 배우고

And I took my first steps in the upstairs hall

위층 복도에서 첫걸음마를 떼었죠

Crazy back then how it seemed so big to me

이상하죠 그땐 복도가 어찌나 커 보이던지

I can still see the marks on the closet door

장롱 문에는 아직도 표시가 남아 있네요

Mom and dad started measuring me at four

엄마 아빠는 네 살부터 키를 재주셨거든요

That was always my favorite spot for hide and seek

장롱은 숨바꼭질할 때 숨기 제일 좋은 곳이기도 했어요


So to whoever lives here next I have only one request

이곳에 머물 다음 주인에게 한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Promise me that you'll take care of the place that knew me best

약속해요 나를 가장 잘 아는 이 공간을 잘 돌봐주기로

I'll pack my memories and go

저는 그만 추억을 싸서 떠나요

So you'll have room to make your own

그래야 당신의 추억을 채울 공간이 생길 테니

Just be good to the house that I used to call home

내가 집이라 부르던 이곳을 잘 부탁해요


House와 Home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심이에게는 이 공간이 처음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집을 떠날 때 우리는 참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노래 주인공처럼 다음에 머물 누군가에게 '우리의 베이징 생활을 책임져준 이 공간을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메모를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친구들과 함께한 보물찾기, 숨바꼭질, 춘절 공연 안무 연습까지 무수한 추억이 있는 이 공간을 아이는 먼 훗날 기억할 수나 있을까. 매 순간 많은 사진들을 남겼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이 공간에 문득 고마움이 차올랐다. '더 나은 다음 집'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내가 머무는 이 공간을 사랑하면 그만이었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곳을 채우면 그만이었다. '곧 떠날 집인데 뭐'라고 생각하던 마음을 버리고, 떠나는 그날까지 이 공간을 더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심이의 마음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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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_도시산책

도시와 마음을 함께 산책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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