齐白石와 雨儿胡同
중국을 대표하는 화가 ‘치바이스(齐白石/제백석)’를 수식하는 문장들은 넘친다. 중국의 피카소. 중국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인민예술가’. 중국 정치인들을 거침없이 비판해 세계 평화평의회로부터 ‘국제 평화상’을 받은 수상자.
하지만 나는 93년의 생을 누린 그가 한 이 말을 떠올린다.
나는 여든 즈음에야 그림다운 그림을 그렸다
치바이스의 흔적을 만나려면 난뤄구샹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름이 운치 있는 이 후통으로 가야 한다. 위얼 후통(雨儿胡同). 전체 길이 343m의 그리 길지 않은 후통이다.
위얼 후통 13호는 원래 청태종의 넷째 아들이 살던 저택 중 일부였다고 한다. 신중국 설립 이후 '저우언라이'의 배려로 중국 문화부가 사들여 치바이스에게 헌사했다. 햇살과 바람이 잘 드는 아담한 사합원이다. 5위안의 입장료를 내고 기념관에 들어가면 치바이스 동상을 바로 만날 수 있다.
치바이스(齐白石/1864-1957)는 중국 청말 시대에서 현대까지 활동한 화가로 중국 후난성(湖南省)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다. 40세에 중국 전역을 여행했으며, 57세 전후에 북경에 자리를 잡고 그림에 전념했다. 이후 시, 서예, 그림, 조각에 모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해당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2011년 82세에 완성한 <송백고립도ㆍ전서사언련(松柏高立圖·篆書四言聯)>은 중국 ‘춘계 경매회’에서 중국 근현대 회화 작품 중 역대 최고가인 714억에 낙찰됐으며 2017년 또 다른 작품이 약 1530억에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중국 미술품을 그린 화가로 등극했다.
그는 새우, 개구리, 꽃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소재의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의 생물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림만 봐도 얼마나 유쾌한 유머를 구사하며 살았을지 가늠할 수 있다. 이곳은 크지 않은 아담한 공간이지만, 치바이스의 생애와 작품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치바이스는 위대한 작가였지만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우리가 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그렸기에 그림을 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늘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주는 옆집 할아버지가 그리는 귀여운 그림 같은 느낌이랄까. 군더더기를 없애고 과감하게 본질로 접근하되, 언제나 유머 감각을 잃지 않기. 인생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치바이스는 93년이라는 짧지 않은 삶을 살았고, 세상을 뜨기 석 달 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근현대 회화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하며 본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도 82세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여든 즈음에야 그림다운 그림을 그렸다'라는 그의 말이 마냥 엄살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최근 내가 제일 겸허하게 읽었던 책은 김형석 교수님의 ‘백 년을 살아보니’다.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제목부터 ‘사랑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네’라는 띠지의 글귀까지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책이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구름 사진가가 되면 어떨까’라는 부분이었다.
앞으로 10년만 더 건강과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또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나는 어려서 농촌에서 자랄 때부터 하늘의 구름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가난과 싸우며 고생스럽게 살면서도 거처를 마련할 때는 산이나 들이 보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하늘과 구름을 보고 싶어서이다. 지금 내가 있는 방에서도 넓은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구름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80여 년 동안 구름을 사랑하면서 살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사진 기술을 배워가지고 구름들을 찍어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하늘과 구름’ 그 속에는 무한에 가까운 예술품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곤 한다.
백 년을 살아보니 중 발췌
'구름 사진가'라는 꿈도 참신했지만 100세에 아직까지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는 그 마음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 아름다운 꿈은 마흔 언저리에서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자주 주저하는 나를 부드럽게 꾸짖었다.
위얼 후통에서 스차하이까지 걸었다. 바람, 햇살, 구름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날이었다. 앞으로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쓰고 싶을 때마다 '6월의 스차하이'를 떠올릴 것 같다고 확신할 지경이었다. 돌에 걸터앉아 맥주 캔을 따면서 붓을 들고 있는 93세의 치바이스와 새로운 장래희망인 ‘구름 사진가’가 된 김형석 교수님을 생각해 보았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는데, '삶은 장거리니 조금 더 헤매도 아직은 괜찮다', '나이 여든에도 아주 참신한 장래 희망을 품고 매일 매일 더 나아지는 나를 꿈꿔도 된다'는 두 개의 허락을 꽤 좋은 선생님들께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고, 아무것도 늦지 않은 삶 속을 걷는다.
베이징_도시산책
도시를 산책하며 마음을 산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