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나 답게 경험하는 일
1264년, 베이징은 쿠빌라이에 의해 원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7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중국의 수도로서 영욕의 세월을 온몸으로 겪어 냈다. 그러니 우리가 그저 심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걸어 다니는 베이징 도심의 골목길은 생각 외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후통, 베이징 뒷골목을 걷다, 조관희
오전 8시,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 평범한 후통(胡同)에서 서성이는 ‘중국인 같기도 한데 아닌 것도 같은 멀대 같이 큰 여자’는 과연 누구일까? 연신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고, 노란 자전거를 만나면 뛸 듯이 좋아하며 자전거로 고작 100m를 가다가, 내려서 다시 걷고, 카메라로 아무렇게나 놓인 벽돌이나 헤진 이불 같은 쓸데없어 보이는 무언가를 찍어대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호기심과 경계심 딱 중간에 있다. 나는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가끔 고개를 숙이며 인사도 하면서 ‘당신 대체 누구요’라고 할아버지가 물어본다면 ‘중국인인 줄 아셨겠지만 전 사실 베이징에 사는 한국인이랍니다. 후통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걸으며 사진으로 담고 있어요’라는 그들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해 줄 수 있는 대답을 속사포처럼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오전 8시,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들은 자전거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잠옷을 입고 화장실로 질주하고,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출근을 서두르느라 매우 분주해 보인다.
낯선 도시의 도시 산책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내 시간들은 대부분 후통 위에서 흘렀다. ‘작은 뒷골목’을 뜻하는 후통은 베이징만이 가지고 있는 베이징의 지문이다. 그 위에서 이국을, 계절을, 사람을, 일상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알아갔다. 생선 가시처럼 촘촘하게 뻗어 있는 후통은 때로 강물 같고, 때로 작은 언덕 같고, 때로 울창한 나무 같아서 나는 물처럼 흐르다가 지치면 언덕에 기대 쉬다가 가끔은 나무의 그늘에 숨어 있었다. 음악을 듣고 신나게 걷다가, 때로 이어폰을 벗고 후통의 소리들을 들었다. 거의 매일 햇살을 온몸으로 감당하던 빨래와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는 어르신들을 만났고, 커피와 맥주를 번갈아 마셨다. 후통에는 세상을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과거 사람들의 세계와 작은 꿈들이 모여있는 학교가 있었고, 복잡하고 따가운 세상에 여전히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서점과 가게들이 있었다. 고양이들이 특히 많았는데 사합원 지붕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고 있는 고양이들은 자연스러웠고, 자유로워서 내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에 걸었고 가끔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후통을 걷는 일은 내가 베이징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자주 탈 수 없었던 건 넘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호기심 때문에 5초마다 자전거를 세우고 유심히 무언가를 들여다보다 다시 자전거를 타는 일을 반복했는데, ‘이럴 거면 자전거 따위 타지 마!’라고 나의 귀차니즘 세포는 말하고 있었기에 다시 걸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걸었지만 대부분 혼자 걸었는데,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후통의 화장실은 때로 더러웠고, 넘쳐 나는 공중 화장실 때문에 후통에서는 지린내가 났다. 그 외에도 후통을 걷는 일은 수많은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일이라 혼자가 편했던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여러 공간에서 왜 문을 닫은 건지 이유조차 찾을 수 없는 ‘오늘 쉬어요(今日休息)’ 공격과 ‘사진과는 전혀 다르지’ 공격을 받았는데 혼자였으니 그 누구에게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불확실성은 나에게 의외의 행복을 자주 안겨줬다.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은 뒤부터는 핸드폰 지도 대신 마음의 지도를 더 자주 들여다봤다. 발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면 내가 세상과 스스로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는데, 내 산책기는 그러니까 그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과정과도 같았다.
후통이 제일 멋지게 살아 움직일 때는 당연하게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취가 묻어나는 순간이다. 속옷을 비롯한 각종 빨래들이 국기처럼 펄럭이고, 거동이 불편한 동네 할아버지가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잠옷을 입고 공중 화장실로 뛰어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생활 여행자’가 된 듯한 묘한 기쁨을 느낀다. 여행과 삶, 삶과 여행이 교차되는 짜릿하고 찌릿한 그 순간. 나는 활자 중독자였고, 활자가 딱히 많지 않던 후통에서도 늘 무언가를 읽어내려 두리번거렸기에 그런 순간들은 나를 분주하게 했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끝없이 두리번거리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나만의 언어로 해독하느라 하루가 매우 짧았다.
모든 후통이 비슷하지만 다르다. 화장실도, 대문도, 길이도, 사람도, 고양이도, 나무도, 빨래도. 바로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후통일지라도 그렇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가끔 그 사실이 신기하다. 나는야 이야기하는 인간, '호모나란스' 유형의 사람이다 보니 대문 안 쪽의 삶과 이야기가 매우 궁금해지기도 한다. 후통에 걸려 있는 이불과 셔츠, 운동화의 주인공들이 일궈가고 있는 삶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타인의 삶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방인이기에 내게 허락된 그 선 주변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타인과 나의 어울리지 않는 순간들이 교차되고 계속 각자의 후통을 걸을 때 나는 한 문장만을 품고 있다. '이 삶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일을 배워야만 한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중) 그러니까 나는 후통에서 그것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을 나 답게 경험하는 일. 그런 순간들이 모이면 이 인생을 나답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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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골목(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