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문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피사체를 앵글에 담는다. 셔터를 누르며 나는 종종 내 인생에서 다시 이 문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베이징에 3천 개가 넘는 후통이 있고 베이징에서 지낼 시간들이 줄어들고 있으니 이 후통을 다시 걸을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아무렴 뭐 어때. 후통, 문 그리고 열렬히 좋아하는 것들 앞에 있는 나. 잊지 않겠다는 무력한 다짐을 무력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기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금 이 경이로운 순간이 한 장의 사진이 되어 오래 내 마음에 남을 것이다.
어쨌든 좋아하는 것을 열렬히 좋아하는 편이고 새로 좋아할 만한 것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기도 해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뭔가 힘든 일을 만나 마음이 꺾였을 때 좋아할 만한 대상을 찾으려고 하면 이미 늦은 감이 있다. 괜찮은 날들에 잔뜩 만들어 두고 나쁜 날들에 꺼내 쓰는 쪽이 낫지 않나 한다.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들을 열렬히 좋아했다. 스페인 세비야에서도, 페루 쿠스코에서도, 중국 베이징에서도 내 카메라 앵글에 제일 많이 담긴 피사체는 골목과 거기 놓인 다양한 문이었다. 낡은 문, 초록색 문, 큰 문, 작은 문, 살짝 열린 문, 닫힌 문, 아주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느낌의 문. 그러니 다양한 문들이 즐비한 후통을 걷는 일을 열렬히 좋아할 수밖에.
후통 문 너머의 사합원에는 작게는 몇 가구, 많게는 몇 십 가구가 함께 사는 공간들이 있다. 문에 살포시 귀를 대면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들리고 각양각색의 빨래들은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볕 아래를 지킨다. 이른 아침, 가족들의 아침으로 샀을 법한 빠오즈와 떠우장이 담긴 비닐봉지를 든 할아버지와 배추와 무, 파와 돼지고기를 자전거 앞에 실은 아주머니가 그 문을 넘는다. 그렇게 삶은 넘실거린다.
근처에 맛있는 식당과 카페가 많아서 자주 왔다 갔다 하던 쳰량 후통(钱粮胡同) 19호 문 위에는 낡은 노란 별이 있어서 늘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의 혁명 운동가였던 ‘장빙린’이 가택 연금을 당했던 장소였다. 위안스카이가 ‘용천사’라는 절에 장빙린을 구금했고 얼마 뒤 옮겼는데 그곳이 쳰량 후통 19호였던 것이다. 핫 플레이스와 감금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는데 어쨌든 그랬다. 그 역사를 알고 다시 19호의 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빨래들이 널려 있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큰 사합원일뿐인데 불과 몇 십 년 전 이국의 한 혁명가는 그곳에서 혁명과 죽음을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슬픈 역사가 있는 줄도 모르고 몇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중국 대표 수제 맥주 브랜드 ‘京A’에 앉아서 노동자의 맥주인 ‘Worker’s Ale’을 홀짝홀짝 들이키고 있었구나.
스차하이와 연결된 마오얼 후통 29호 문 앞에 다다라서는 슬펐다. 이곳은 조선 최고 명문가 출신 우당 이회영 선생님이 베이징에서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다. 혁신적이고 실천적인 양명학 계통의 유학자 출신의 우당 이회영 선생은 신채호 선생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 우당을 포함한 여섯 형제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전 재산을 팔아 1911년 만주에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하고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배출하는 등 평생을 바쳐 다양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우당은 1919년 3월 베이징에 처음 왔고, 1925년 12월 톈진으로 이사하는 등 6년 9개월 동안 6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조선의 최고 명문가 자손이었지만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금의 압박 때문에 가난을 견뎌야만 했기에 거처는 갈수록 누추해졌다. 29호의 낡은 문은 힘들었던 우리 역사 같았다.
어떤 후통 문 옆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그려져 있었고, 어떤 후통 문 앞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벌컥 문이 열리고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오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다시는 서로 마주치지 않을 사람들끼리 옅은 미소를 나눈다.
저 문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피사체를 앵글에 담는다. 셔터를 누르며 나는 종종 내 인생에서 다시 이 문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베이징에 3천 개가 넘는 후통이 있고 베이징에서 지낼 시간들이 줄어들고 있으니 이 후통을 다시 걸을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아무렴 뭐 어때. 후통, 문 그리고 열렬히 좋아하는 것들 앞에 있는 나. 잊지 않겠다는 무력한 다짐을 무력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기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금 이 경이로운 순간이 한 장의 사진이 되어 오래 내 마음에 남을 것이다.
열렬히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그 순간을 만났다면 더 열렬히 행복해야 한다. 괜찮은 날들에 위로와 기쁨들을 잔뜩 모아서 '나쁜 날들에 꺼내쓸 수 있도록'. 인생의 비법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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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