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전까지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람들과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차를 타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동네를 돌아다니며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술과 음식을 먹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쓰게 되었으니까.
아무튼 택시, 금정연
겨울이면 그 북쪽에서 정말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면서 아이들은 하나둘씩 자전거를 포기하고 버스로 등하교했다. 언제쯤 자전거가 아니라 버스로 통학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간단했다. 안장에서 엉덩이를 치켜들고 고개를 숙인 채 페달을 힘차게 밟아 본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자전거가 똑바로 나아간다면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겨울바람이 시작되지 않은 셈이다. 만약에 자전거가 좌우로 비틀거린다면 이제는 자전거가 아니라 버스를 이용해 통학할 계절이 찾아왔단 뜻이다. 그 시기가 대개 11월 말이었던 것 같다. 12월이면 자전거 보관소가 텅 비게 되고 통학 버스의 유리창에 학생들의 입김이 뿌옇게 서렸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베이징 거리에는 늘 몇십 대의 자전거가 놓여 있지만 자전거를 고르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할 일이다. 잘못 골랐다가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어떤 자전거는 본인의 본분을 잊고 잘 나가지 않는다. 안장에서 엉덩이를 치켜들고 온 힘을 다해 페달을 굴려봐도 여의치 않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아서 이럴 거면 차라리 뛰어가는 게 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여러 번이다. 한참 타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 거의 몸을 던져 자전거를 세운 적도 있다. 멀쩡해 보였던 안장이 갑자기 빠지기도 한다. 몇 번 황당한 일을 겪은 후에는 고른 자전거의 상태가 별로면 바로 다른 자전거로 갈아탄다. 언제든 부담 없이 자전거를 교체할 수 있는 삼천 원 남짓의 메이투안(美团) 월 정액권을 칭찬할 만하다.
‘햇살 좋은 날 자전거 타기’가 즉각적인 기쁨을 주는 행동 리스트 탑텐 정도에 올라가 있는 나로서는 어느 길이든 편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심지어 자전거 신호등도 있는 다정한 베이징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산이 귀한 베이징은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라이딩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그렇다 보니 자전거 인구가 엄청난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아침 풍경은 꽤 인상적이다. 비록 가끔 수십 대, 혹은 수백 대의 자전거가 폭풍을 맞은 쓰레기처럼 거리 곳곳에 널브러져 있어서 길을 걸을 때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모를 때가 많고, 처음 사용한 오포(ofo) 자전거는 갑자기 망해버려서 야진(심지어 나는 199위안의 야진을 냈다)을 모두 뜯겨 버렸지만 나의 자전거 사랑을 막진 못했다. 저렴하고, 교통 체증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며, 심지어 건강에도 좋지 않은가. 중국인 사이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중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되는데, 꽤 즐거운 경험이라 자전거를 타지 않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자꾸 권하게 된다.
하지만 못 말리는 자전거 애호가에게도 위기는 있었으니 바로 베이징의 칼바람. 12월에 접어들면 온몸에 구멍이 숭숭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칼바람이 찾아온다. 이를 뚫고 자전거나 전동차를 타는 것은 보통 내공으로는 불가능하다. 좀비처럼 목도리로 온 얼굴을 감싸고, 털장갑과 털모자로 무장을 해봐도 오래 달리다 보면 머리가 띵해져 온다. 나 같은 이방인은 적당히 다른 대안을 찾고, 일상 유지를 위해 계속 자전거나 전동차를 타야만 하는 베이징런들은 대부분 눈만 노출되는 방한 용품을 입는다. 이불이 아닌가 싶은 온몸을 뒤덮는 그 어떤 것. (정확한 이름을 뭐라 붙여야 할지 난감한데 광고 문구는 '자전거 보온의 혁명'이렸다!) 보고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물건이니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효과는 아마도 획기적일 것이다.
대로에 비해 자전거가 드문 후통에서는 자전거가 유독 반갑다. 구석 어딘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노란색 자전거를 발견하면 신이 나서 자전거에 올라탄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과 햇살 아래서 후통을 달리는 그 순간이 누가 뭐래도 내겐 최고의 순간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나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에는 자전거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는 것. 이동 수단의 속도와 그 공간을 이해하는 깊이는 반비례한다고 가정해볼 때 도시 면모를 구석구석 살펴야 하는 ‘도시 산책자’에게 제일 어울리는 이동 수단은 역시 걷기. 하지만 자전거와 후통은 드물게 행복한 조합이기에 변덕스러운 도시 산책자는 '걷다가 타다가 다시 걷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난뤄구샹(南锣鼓巷). 난뤄구샹을 제대로 느끼려면 메인 대로가 아닌 그 양 옆으로 뻗어 있는 후통들을 가봐야 한다. 신채호 선생이 부인 박자혜 여사와 함께 중국어 독립운동 잡지인 ‘천고’를 발행했던 시기에 머문 차오떠우 후통(炒豆胡同), 늘 유머를 잃지 않았던 목수 출신의 중국 대표 화가 ‘치바이스(齐白石)’가 살던 위얼 후통(雨儿胡同), 우당 이회영 선생이 베이징에서 마지막으로 머문 공간이자 청나라 마지막 황후인 ‘완롱(婉容)’이 결혼 전까지 생활한 마오얼 후통(帽儿胡同), 중국이 낳은 걸출한 소설가이자 혁명가 ‘마오둔(矛盾)’의 옛집이 있는 허우언스 후통(后圆恩胡同) 등등 다양한 후통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0개가 넘는 후통들을 신나게 달리면서 금정연 작가의 말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전까지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동네와 골목들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마음으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기쁨을 혼자 만끽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은 참으로 낯설다. 아직까지 이 세상에 내가 미처 모르는 존재와 장소는 또 얼마나 많을지, 나는 남은 생에서 이상한 일들을 또 얼마나 많이 하면서 살아갈지 생각하면 숭고한 마음마저 든다.
이 날 산책의 마무리는 양 꼬치와 하얼빈이었다. 유명 맛집에서 무려 30분이 넘는 웨이팅 끝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양꼬치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아주 작은 구멍가게에 들려 불친절한 아주머니 사장님께 하얼빈 맥주 한 캔을 샀다. 그리고는 스차하이 주변 어느 돌 위에 철퍼덕 앉아 대낮 혼맥을 감행했다. 5년 전의 나는 양꼬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어려워했었는데 이렇게 사방이 오픈된 관광지, 그것도 돌 위에서 양꼬치를 먹고 있는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스차하이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천 원짜리 맥주와 기름과 살이 적절히 섞인 양꼬치는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소중한 친구에게 ‘중2스러운’ 메시지를 보냈다. 낮술 먹고 취한 게 아니라 여기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래. 어떤 눈부신 순간들은 마음의 부끄러움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순간을 마음속에서 꺼내어 들여다본다. 어떤 기억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세고 수명이 길다는 것을 나는 베이징을 걸으면서 깨닫게 됐다. 먼 훗날 누군가 내게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초능력을 준다면 나는 햇살이 눈부시던 유월의 베이징, 자전거를 타고 난뤄구샹 후통들을 달리던 그 순간, 양꼬치가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3 꼬치 정도는 더 사야 하지 않았니’라고 스스로를 원망하던 그 순간으로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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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