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과 할아버지

조건 없는 사랑

by 심루이

노인의 등과 소의 등이 똑같이 까무잡잡해 보였다. 저물어 가는 두 생명이 오래된 밭을 확확 갈아엎는 모습이 꼭 수면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도 같았다.


노인의 거무스름한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더욱 생기 있게 보였다.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이 흥이 나는 듯 움찔거리자, 그 골마다 진흙이 꽉 들어찬 모습이 마치 밭 사이사이로 난 작은 길처럼 보였다.


인생, 위화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두 분 계셨지만 한 분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을 뵐 수 없었다.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다른 한분은 무척 멋쟁이셨다. 버버리 재킷에 베레모를 쓰고(머리가 많이 없으셨던 관계로), 직접 만든 토스트를 아침으로, 파스타를 특식으로 드시고 가끔 사시미 칼로 회를 뜨셨다. 신발 공장을 운영하셨던 터라 할아버지 댁에 가면 늘 고무 냄새가 났다. 커다란 기계들이 저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그 공장은 내가 처음 만난 밥벌이의 현장이었다. 할아버지와 함께면 우리는 늘 좋은 소고기를 먹었고 좋은 차를 탔다. 여름휴가로 떠난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시던 할아버지를 아주 멀리서도 찾을 수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민 머리가 수면 위에 반달처럼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보다도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할아버지를 오빠와 나는 참으로 사랑했다. 만날 때마다 숨을 쉬지 못할 만큼 힘껏 안아 주셨는데 할아버지의 볼록한 배가 내 배에 닿는 그 동그란 느낌이 좋았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던 할아버지는 내가 스물다섯이 되던 해 우리를 떠나셨다. 지금 생각해도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 아니었나 한다. 나는 너무 멋진 사람들은 하늘에서 빨리 호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강하게 품고 있는데 모두 할아버지 때문이다.


서민들의 거주지가 잔뜩 모여 있고 가장 많은 후통과 연결되어 있어 '후통의 성지'라고도 볼 수 있을 '东四十条'역 근처의 많은 후통들. 이른 아침, 생선 가시처럼 촘촘하게 이어진 둥쓰 후통을 찾아 가면 나의 할아버지를 닮은 어르신들이 많다. 거동이 불편한 그들은 지팡이나 기구에 의지해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아침 산책을 한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금살금 지나쳐가며 내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서울이 집이던 내가 부산 국제 영화제 자원봉사 때문에, 부산 할아버지 댁에 혼자 잠시 머물렀을 때였다. 뒤풀이로 정신이 팔려서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막차를 타고 할아버지 댁 근처 전철역에 내려서 재빨리 개찰구로 뛰어가는데 저 멀리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아주 오래전부터 계셨던 것처럼 보였는데 너무 죄송해서 언제부터 기다리신 건지도 여쭙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늦은 나를 탓하지 않으시고 온화하게 웃으시며 동그란 배로 나를 꽉 안아주셨다. 할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전철역에서 아파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발을 떼시던 할아버지는 세 걸음을 걷고 멈춰서 조금 쉬고, 세 걸음을 걷고 또 멈춰서 조금 쉬기를 반복하셨다. 이내 거친 숨소리가 났다. 할아버지의 거동이 이렇게까지 불편해 지신 줄은 몰랐기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손녀 마중을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그 길을 혼자 오셨을 걸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최대한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걸음 속도에 맞추며 조잘조잘 아무 얘기나 하는 거였다. 전속력으로 달렸다면 3분도 걸리지 않을 길을 우리는 30분 동안이나 걸었는데 그 길이 할아버지와 내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길이 되어 버렸다. 헤어질 때 할아버지가 건넨 ‘뭐든지 즐겁게 해라’는 말은 내게 유언처럼 남았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유언을 닮은 말들이 엄마를 통해 내게 전해진다. 인생과 성취에 관한 굉장한 통찰력을 기대하겠지만 쓰기에도 민망한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넘어질 때를 대비해 길을 걸을 땐 두 손을 모두 호주머니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 택시에서 내릴 때는 무조건 한 번 더 앉은자리를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 음식을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면 실례라는 것 등등 온통 너무 사소해서 민망한 당부들이다. 그러고 보면 조부모님들은 손주의 사회적 성공이나 성취에는 큰 관심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손주가 건강하기를, 다른 이에게 괜한 미움을 사지 않기를, 그들의 하루가 무탈하게 마무리되기만을 바란다.


별 것 아닌 당부들은 신기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 묘비명처럼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추운 겨울 호주머니에 양 손을 쑤셔 넣을 때마다, 택시에서 내릴 때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나는 어쩌면 나의 조부모님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나는 내 아이에게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전한다. 아이는 아마 어릴 때 내가 짓던 바로 그 표정으로 ‘그렇게 당연한 걸 왜 자꾸 말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이도 생의 순간순간에 유언을 닮은 이 말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한 손을 빼고, 택시에서 내릴 때면 늘 매의 눈으로 의자 위를 확인하고, 쩝쩝 소리를 내는 누군가와 식사를 하게 된다면 ‘우리 왕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싫어하셨겠어’라고 생각하게 되리라는 것을.



개인적 경험은 저마다 그 모양과 빛깔이 셀 수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할머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상상을 통해 혹은 따스한 기억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모습은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


부모는 자식이 어떻게든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연인은 당신에게서 이해받기를 원한다. 친구는 당신이 함께 여행을 떠나 주길 원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당신이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는 게 할머니 마음이다. 그것은 아무런 계산도 사사로운 욕심도 없는, 당황스러울 만큼 순수한 사랑이다.


소소한 즐거움, 알랭 드 보통


이른 아침 후통을 걷는 어르신을 보며 조부모에게 받은 '당황스러울 만큼 순수한 사랑'을 떠올린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손주의 순수한 행복만을 바라는, 순두부처럼 한 없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그들의 사랑.


나는 후통 어딘가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 할아버지를 닮은 어르신이 아주 천천히 한 사합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그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그들의 아침 산책이 내일도, 모레도 쭉 계속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에 조건 없는 사랑은 너무나 절실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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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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