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 깊숙히 숨어 있는 맛집들
더네이 대가를 따라 백 보쯤 가서 건널목을 건너면 류하이 후퉁 식품점에 이르렀다. 문밖 야채 매대에서는 토마토를 팔고 있었다. 네 근에 3마오였다. 원가로 공급하는 자반갈치도 있었다. 한 근에 3마오 8펀이었다. 파리 떼가 잔뜩 몰려 들어 아무리 손을 휘둘러도 쫓아내기 어려웠다. 나와 차오이판은 짓무른 토마토 두 개를 사고 싶었지만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매만지다가 침만 삼키면서 그냥 지나쳤다.
베이다오, <베이징, 내 유년의 빛>
난뤄구샹(南锣鼓巷) 맞은편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베이러우구샹(北锣鼓巷) 바로 옆에 숨겨진 후통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빠오차오(宝钞胡同)'다. 좁고 정신없는 골목이라 지나치기 쉽지만 이곳에 보물 같은 공간들이 숨어 있다. <라오서지아오즈지아창차이老石饺子家常菜>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사합원 정원에서 즐기는 만두 맛집이다. 갓 튀겨진 만두와 새콤달콤한 양배추 무침을 함께 입에 넣고 벽에 걸려 있는 덩샤오핑 달력을 바라본다. 바삭한 만두피가 입 속에서 과자처럼 부서진다.
스차하이 근처 조용한 후통 팡좐창(方砖厂) 69号는 미슐랭 스티커를 받은 베이징식 자장면 맛집이다. 이 허름한 식당은 주문이 필요없다. 자리에 앉으면 바로 자장면 한 그릇이 앞에 놓인다. 베이징식 자장면은 양념이 적은데 짜다. 달달한 한국식 자장면 맛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이라면 싫어할 수도 있으나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평일 점심에도 20-30명이 줄을 서는 그 식당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는데 쉽게 깨지는 음료수 병은 절대 식당 밖, 후통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반쯤 남은 땅콩음료 ‘화셩루(花生露)’를 들고 나가려는 나에게 사장님이 소리 치신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라 한 번에 알아듣지를 못하고 멍하게 있었더니 사장님은 두 번 소리쳤다. 아주 작고 허름한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소극장 연극의 주인공, 그러니까 어리바리해 보이지만 어두운 후통을 거닐다 유리 조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를 테러범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유명한 베트남 음식점 ‘SUSU(苏苏)’의 제일 낭만적인 공간도 치앤량(钱粮)후통에 있다. 낡은 자전거가 놓여 있는 후통을 따라 쭉 들어가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만나게 되는 낡고 빨간 문. 별다른 간판도 없는 바로 그 문이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문을 열면 허름한 외관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세련된 인테리어의 사합원 내부.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는 낭만적인 정원.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한끼를 먹고 싶을 때 늘 이곳을 떠올렸다. 수수의 창립자 Amy는 재료의 신선함과 본연의 담백한 맛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SUSU라는 이름도 '佛手瓜'(손바닥 오이)의 베트남어에서 따왔다. SUSU를 찾는 소비자들은 건강한 식단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재료의 신선함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모든 재료는 당일 소진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침 일찍 후통을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후통에 사는 파자마를 입은 ‘라오베이징런(老北京人)’들이 작은 식료품 가게에서 야채와 과일, 고기 등을 사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정육점 사장님은 열심히 고기를 썰고, 야채 가게 사장님은 양파 박스를 열심히 나른다. 비릿한 건지, 상쾌한 건지 알 수 없는 아침의 후통 냄새가 나의 오감을 자극한다. 후통에서의 모든 시간이 좋았지만 제일은 역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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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