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햇살 아래 후통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 오영욱은 10년 전쯤 서울의 건축이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하여 신문에 기고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거기에 중국과 한국이 힘을 합쳐 공기 중의 먼지를 없애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 기고는 물론 채택되지 않았지만 그는 <중국인은 왜 시끄러운가>라는 책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청명한 햇살 아래의 도시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답다. 건축의 시작과 끝은 빛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후통도 과연 그렇다. 청명한 햇살 아래 반짝이는 후통은 이름답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비’라는 이름을 가진 위얼 후통(雨儿胡同)으로 가는 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디를 대강 찍어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졌다. 평소에 내가 막연하게 즐겨 쓰던 표현인 ‘햇살이 쏟아지던’ 바로 그 거리였던 것이다. 나는 비타민 D가 부족한 내 몸 상태를 떠올리며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고 있었다. 비키니를 입고 몇 시간 넘게 걸어야 효과가 있으니 알약으로 섭취하라고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그날의 햇살만큼은 다를 것 같았다. 알약이나 주사보다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은 쨍쨍한 햇살이었다.
난뤄구샹과 스차하이 사이에 위치하는 위얼 후통은 전체 길이 343m로 그리 길지 않은 후통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위얼 후통 13호에 위치한 치바이스(齐白石/1864-1957) 기념관이다. 중국의 피카소이자 중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인민예술가’이자 중국 정치인들을 거침없이 비판해 세계 평화평의회로부터 ‘국제 평화상’을 받은 수상자인 치바이스. 나에게는 “여든 즈음에야 그림다운 그림을 그렸다.”라고 말한 겸손하고 유쾌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조급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치 할아버지의 미소를 떠올린다.
13호 사합원은 크지 않았다. 이곳은 원래 청태종의 넷째 아들이 살던 저택 중 일부였는데 신중국 설립 이후 '저우언라이'의 배려로 중국 문화부가 사들여 치바이스에게 헌사했다. 5위안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아서 한참을 씨름했다. 핸드폰을 하늘 높이 쳐들며 골목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더니 드디어 결제가 되었다.
그는 중국 후난성(湖南省)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목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다. 40세에 중국 전역을 여행하고, 57세 전후에서야 북경에 자리를 잡고 그림에 전념했다. 이후 시, 서예, 그림, 조각에 모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해당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2011년 82세에 완성한 <송백고립도ㆍ전서사언련(松柏高立圖·篆書四言聯)>은 중국 ‘춘계 경매회’에서 중국 근현대 회화 작품 중 역대 최고가인 714억에 낙찰됐으며 2017년 또 다른 작품이 약 1530억에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중국 미술품을 그린 화가로 등극했다.
그가 그린 새우, 개구리, 꽃 등이 사합원 한 공간에서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한 모습으로 햇살과 바람을 맞고 있었다. 위대한 작가가 그린 사소한 일상들, 군더더기를 없애고 과감하게 본질로 접근하되, 언제나 유머 감각을 잃지 않기. 그가 추구한 것들은 이런 것이었을 같다. 그림만 봐도 치 할아버지가 얼마나 유쾌한 유머를 구사하며 살았을지 가늠할 수 있다.
치바이스는 93년이라는 짧지 않은 삶을 살았고, 세상을 뜨기 석 달 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근현대 회화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하며 본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도 82세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여든 즈음에야 그림다운 그림을 그렸다'라는 그의 말이 마냥 엄살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니 그의 그림과 공간은 느려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준다.
여름날의 햇빛이 거리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그늘진 곳은 물처럼 시원하여 나는 사람들을 따라 이리저리 물고기처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을 바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쪽으로 가서 고독하고 오만하게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섰다. 머리가 온통 땀에 젖고 이어서 몸 전체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목적지에 이르면 나는 막대 얼음과자를 사서 내 사진을 위로했다.
베이다오, <베이징, 내 유년의 빛>
나는 느긋하게 걸으며 후통의 햇살을 한껏 즐기기로 했다. 어떤 날씨의 후통이라도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 주지만 햇살 아래의 후통은 특히나 귀하니까. 중국의 저항 시인이자 대표 작가인 베이다오(北岛)는 베이징의 싼불라오 후통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78년 <진티엔(今天)>을 창간한 이후 저항시를 썼다. 이후 인권 운동에도 뛰어들어 오래 망명 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냈을지는 상상할 수 있다. 한참 고향을 떠나 있다 부친의 병세 악화로 13년 만에 잠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당시 많이 변해버린 베이징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선택적이고, 모호하고, 배타적인’ 기억을 건져내어 예전의 베이징을 회상하는 글들을 적어 내려간다. 그 글을 모은 작품이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이다. 그의 시선을 빌려 바라보는 오래전 베이징의 후통의 풍경들은 너무나 생생하고, 가끔 아프고, 때로 유쾌하다. 번역된 문장마저 너무 아름다워서 그가 왜 중국 최고의 시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후통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함께 눈과 비를 맞았다. ‘물처럼 시원한 그늘’과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쪽을 번갈아 가면서 후통을 걸었다.
그의 시 중 제일 유명한 <回答(대답)>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열함은 비열한 자의 통행증이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다. 봐라, 저 도금된 하늘에는, 죽은 자들의 거꾸로 비틀린 그림자가 가득 휘날린다’(卑鄙是卑鄙者的通行证,高尚是高尚者的墓志铭,看吧,在那镀金的天空中,飘满了死者弯曲的倒影). 싼불라오 후통에서 막대 얼음과자를 사고 해맑게 좋아하던 아이는 후에 문화대혁명으로 고통받으며 이런 시를 썼다. 후통에는 어린 시절 자오전카이(赵振开, 베이다오의 본명이다)를 닮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마음이 저릿하고 어쩐지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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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