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슬기 Sep 14. 2021

헬스장 알바가 꿀이라던데? 필라테스 샵 알바 도전기

꿀은 꿀인데 상한 꿀이었고..


 나는 알바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이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나는 알바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 해 본 알바는 19살에 수능 끝나고 집 근처 먹자골목에 위치한 삼겹살 집 서빙 알바였는데, 아예 태어나 일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해봤기 때문에 생각보다 내 행동은 굼떴고, 사장의 가족들은 한 번에 접시를 서너 개씩 손가락마다 올리고 서빙을 하던데 일 시작한 지 1시간이 겨우 지난 내가 섣불리 그걸 따라 했다가는 기상청에서 오늘은 분명히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들고 나온 장우산이 무색하도록 쨍쨍한 하루가 될 확률과 비슷한 가능성으로 접시를 깰 게 분명해 나는 차라리 한 접시를 서빙해도 안전하고 정확하게 서빙하자는 생각으로 접시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했고 이게 사장의 눈에 좋게 보였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시간이 9시가 넘어가며 점점 술기운이 얼큰하게 오른 아저씨들이 연신 술잔을 기울이다가, 계속 그렇게 그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될 일인데 갑자기 나를 걸그룹의 누구 닮은 아가씨! 하며 부르는 게 아닌가. 아니 자기가 뭔데 내 외모를 평가하는 거지? 알바생은 자기들끼리 그러게 술김에 외모를 오목조목 뜯어 평가하며 심지어 평가질 끝에 도달한 결론을 입 밖으로 내서 불러도 실실거리며 네 하고 가서 서빙을 받아줘야 하는 존재란 말인가. 상당히 기분이 불쾌해진 나는 가뜩이나 나의 1회 1서빙 원칙이 맘에 들지 않아 마찬가지로 기분이 불쾌했던 사장에게 가서 저 테이블은 서빙 안 할게요 해버렸고 사장은 4시간 만에 나를 해고했다. 사회생활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19살짜리의 머릿속에선 해고를 당한다는 것은 뭔가 굉장한 실수를 저질러 상사가 막 서류 같은 걸 집어던지고 하면서 너 해고야!!! 하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그만큼 드라마틱하진 않았고, 사장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일부터는 안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다음엔 편의점에 지원을 해 보았는데, 면접 당시 추석을 일주일 정도 남겨 둔 시점이어서 저 추석엔 할머니 댁에 가야 해서요 했다가 예, 가세요 그럼 하며 바로 칼같이 차단당했다. 요즘 어린애들이 버릇없고 생각 없다는 그런 말들이 왕왕 있는데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보면 버릇없고 생각 없는 어린애들은 언제나 있었던 게 아닐까. 저랬던 과거의 나도 지금은 요즘 어린애들을 보며 철이 없네 하는 생각을 감히 한다. 우습다. 아무튼, 이 외에 뚜레쥬르에서도 알바를 했었는데, 이건 무려 한 달이나 해버리는 바람에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줄이겠다.


때는 7월 초, 더위가 기승을 부릴 시동을 슬슬 걸던 시점이었다. 타투이스트로 6월부터 작업을 시작했고 당장 수입이 변변찮기는 했지만 시작부터 잘 벌면 그게 더 얼토당토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으로 탱자탱자 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생활에 너무나 편안-히 몸이 적응한 나머지 거의 밤낮이 바뀌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루는 낮을 살고 하루는 밤을 사는 미친 생활 패턴이 점점 내 일상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애시당초부터 알고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내 자유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안될 걸 알면서도 괜히 시도해봤다가는 더 일상이 조져질 것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을 때 나는 실로 7년? 만에 알바몬 사이트에 접속했다. 내가 원한 조건은 집에서 가까운 위치(최대 도보 30분), 하루 4시간 미만의 짧은 근무 시간, 낮은 업무 강도였고, 현실적으로 이 조건들을 충족하는 알바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최소한의 양심으로 하지 않았는데, 딱 이 조건들에 부합해 보이는 알바 공고가 눈에 띄었다. 게시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공고. 바로 지원했다. 안녕하세요 누구누구입니다 하는 건조하고 재미없는 소개로는 이 코로나 시대에, 꿀일 게 분명해 보이는 이 알바 자리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간의 경력을 읊으며 내가 자신 있는 항목들을(설사 자신이 그다지 없는 것이라도) 잔뜩 나열한 다음 느낌표를 잔뜩 붙여 지원했다. 아무리 알바를 구하는 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느낌표는 너무 궁해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왕 보낸 거 어쩔 거냐 하며 또 넷플릭스나 보고 있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편견일 수 있겠지만 막연히 필라테스샵 원장은 당연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 속 목소리는 걸걸한 아재의 그것이었다.


필라테스샵 카운터 알바는 무엇을 입고 가나? 아니, 애초에 알바 면접이라는 것 자체에 무슨 옷을 입고 가나? 나는 도저히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알바와 동떨어진 삶을 산지 비슷한 햇수가 흘렀을 것이기에 그나마 주변에서 가장 최근에 대학을 졸업했으며 카페 알바 경력이 있는 친동생에게 자문을 구해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단정한 원피스를 입기로 했다. 그럼 머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전 직장은 호텔 업계였기에 근무할 때도 면접 볼 때도 흡사 항공사 직원들과 비슷한 머리를 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이 머리는 동네 필라테스샵 카운터 알바 면접을 보러 갈 때 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오바같아 그냥 단정히 하나로 묶는 편을 택했다. 약 15분 정도 알바 치고는 길게 면접을 봤고 다음 날부터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수인계는 꼴랑 딱 2시간 받았다. 그만큼 업무적으로 딱히 할 게 없다는 것인데, 이게 예고된 꿀의 서막인가 싶으면서도 나는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부터 12시. 하는 일은 출근해서 노래를 틀고, 샵 전체 청소기를 돌리고, 부족한 비품이 있다면 채우고, 기존 회원 관리 및 신규 회원 상담하기. 매일 같이 노래를 틀고 청소기를 돌리고 부족한 비품을 채웠지만 기존 회원 관리 및 신규 회원 상담은 당최 할 일이 웬만해선 생기지 않았다. 기존 회원들은 이미 결제를 마치고 수업을 잘 받고 있기 때문에 내가 딱히 뭘 관리할 게 없었고, 신규 회원들도 대부분 친구 소개로 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상담을 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또한 신규로 오는 회원들도 내가 카운터 알바지 필라테스 강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대단히 전문적인 상담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3시간 동안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게 거의 전부인, 꿀 알바 중의 꿀 알바였다. 문제는 사장이었다. 면접 다음 날 나보고 다른 하는 일이 있냐고 묻길래 타투이스트임을 밝혔더니 대뜸 남자들이 타투를 새기는 것처럼 바보 같아 보이는 게 없다, 그런데 이게 성별이 여자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타투가 있는 여자들은 굉장히 섹시하다며 지극히 사적이고 알고 싶지도 않은 타투에 대한 본인의 소견을 밝혔을 때 속으로 이 새끼 뭐야 싶었지만 2시간의 인수인계 동안 기존의 직원이 아마도 근무하며 사장을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본인도 1년 일하면서 면접 볼 때 빼고 2번 본 게 전부라길래 그냥 나이 먹고 주접이네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주접은 근무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알바를 시작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을 것이다. 퇴근하고 작업실에 가려는데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혹시나 내가 실수를 했을까 봐, 사실 너무나 단순한 업무라 실수를 할래야 할 수가 없지만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덥썩 전화를 받았고, 사장은 오늘 새로 등록한 회원은 있냐며(사장 핸드폰으로 확인 가능함)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실수 때문에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다는 점에 안도하는 한편 별 이런 얘기를 하려고 퇴근 후에 전화까지 했다는 사실에 은근한 짜증이 치밀었다. 뭐, 일하는 시간 동안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아니니 고용한 지 얼마 안 된 아르바이트생이 일은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겠거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러나 퇴근 후 자꾸 진정 쓰잘데기 없는 주제로, 예를 들면 본인의 택배가 오늘 도착했냐는 것 같은 정말 쓰.잘.데.기 없는 얘기들로 카톡을 하고, 즉각 답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언제건 그게 밤 10시일지라도 서슴없이 전화를 걸곤 하는 사장의 행동은 점점 그러려니가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샵의 강사들은 나에게 텃세까지 부렸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던지, 주말 잘 보내라는 내 인사에 네~ 하고 가버린다던지. 내가 조금만 어렸으면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그들과 잘 지내보려 했을 것이다. 사장의 돌아버린 연락도 스트레스받아가며 꾸역꾸역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좋은 게 좋은 것도 맞지만, 좋아야지 좋은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살게 되었다. 그래서 굳이 나에게 텃세를 부리는 강사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지 않았고, 업무 관련일지라도 6시가 넘어가면 사장의 카톡에 답을 하지 않았고, 업무 관련 조차 아니라면 시간에 관계없이 퇴근 후 오는 연락은 일절 받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갑자기 웬 아재스러운 이름 석자를 띡 보내면서 이 남자 아냐고. 이딴 카톡은 왜 보내는 걸까? 심지어 여성 전용 필라테스 샵이었기 때문에 회원의 이름도 아니었다. 아무튼 본인의 거지 같은 카톡에 웬만해서는 답하지 않는 내가 고까웠는지 사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로 인해 샵 사정이 어쩌고 이러쿵저러쿵하며 유선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유선상으로 사람을 잘라놓고는 사장은 그날 저녁에도 엿같은 카톡을 보냈다. 당연히 답장은 하지 않았다.


대중없는 사장의 카톡 및 전화를 나름대로 무시한다고는 무시했는데, 이게 그래도 신경이 많이 쓰였는지 그만둔 후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앞으로 살면서 알바를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태까진 그래도 알바로는 최장기간, 약 2달 가까이 근무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헬스장 카운터 알바가 꿀이라던데 정말 꿀은 꿀이었다. 하지만 나는 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출근 땜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 밤에 술도 못 조지는게 젤 힘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스코 김밥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