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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Mar 18. 2021

그놈의 '사람'

인간관계, 에세이, 심리학, 분석 심리학




“왜 그렇게 신경 써? 그냥 관심 꺼”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그게 뭐가 중요해?


신경을 쓰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신경이 쓰인다.
남들의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그냥 머릿속에서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것뿐이다.

내 몸뚱아리인데도 참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난 사람에 꽤 민감하다. 사람 때문에 열 받고 사람 때문에 웃고 사람 때문에 산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부터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군 생활 중에서도 내 발목을 잡은 건 사람이었다. 전혀 다른 지역에서 온, 온갖 사람들이 모여서 위계질서라는 틀에 뭉쳐있으니 나 같은 사람에겐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군대생활을 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막내시절에 ‘카네기 인간관계론’이라는 책을 군 서재에서 발견했다. 그 책은 나에게 마치 가뭄 같던 군생활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짬을 내서 소위 인간관계의 비법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 법칙들을 익히고 같은 부대 사람들에게 적용을 하니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세상의 비밀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인간관계는 점점 부드러워졌고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메말라갔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진짜 하던 건 관계의 도구가 아닌 본질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 뭔가 잡힐 듯 말 듯 두루뭉술한 나만의 철학을 쌓아나갔다. 나의 허술한 이론으로 생겨났던 온갖 의문들에 대한 답을 한 큐에 정리해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이자 프로이트의 제자로 잘 알려진 ‘카를 구스타프 융’이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성격유형 검사인 'MBTI'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였다. 요즘 유행인 이 검사의 원형이 융의 '성격유형 이론'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이후 나무 위키와 그의 자서전 통해 융의 독특한 삶에 대해서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뭔가 복잡해 보이는 그의 심리학에 접근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공부해봐야지’하면서 미루기를 반복했다.


 마침 이번 독서모임의 주제가 자신의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이었다. 왠지 융을 통해 내 고민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의 책을 도전하게 되었다.


내가 이번에 골랐던 머리 스타인의 ‘융의 영혼의 지도’는 인터넷에서 BTS 때문에 한번 이슈가 된 적이 있어서 소문으로만 들어본 책이었다. 별생각 없이 융의 개론서로 좋겠다 싶어서 택했는데 사고 보니까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논문 같은 책이었다. 다른 입문서들을 몇 권 접하고 나서야 그의 이론들이 약간씩 이해되고 그동안 쌓였던 인간에 대한 의문들이 조금씩 녹아내려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투사’였다. 우리가 발표할 때 쓰는 프로젝터를 상상하면 된다. 벽을 통해서 영상이 재생되지만 그 영상 자체는 프로젝터 안에 있다. 융에 따르면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즉, 상대를 알기 위해선 나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말하길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깊은 바다 위에 솟아있는 ‘의식’이라는 섬 위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행복의 비결이 간척사업을 통해서 그 섬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라고 했다. 말은 쉽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콤플렉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콤플렉스란 돈, 가족, 지위, 성격이나 신체적 결함 등 우리 마음속에 뭉친 곳이다. 근육이 뭉치면 그곳을 풀어주듯이 마음이 뭉쳤을 때 그것을 직시하고 인정함으로 마음의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알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기억을 들쑤시는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자.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상처 받는 각자의 포인트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콤플렉스다.


융은 콤플렉스는 감정적 외상이라고 했다. 그 상처들이 타인에게 투사된다고 한다. 즉,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 때 먼저 내 마음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하다. 나아가 과거의 상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서 그 과거를 재구성하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처가 깊을수록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하지만 극심한 상태가 아니라면 ‘홈트'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명상을 통해 의식적으로 자신을 관찰할 수도 있고 꿈을 통해 슬쩍 나온 무의식을 가지고도 자신의 마음속 그림자를 확인할 수도 있다.


융은 콤플렉스를 풀려는 노력과 동시에 자신의 열등 기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저 사람 성격 확실하네.’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성격이 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성향 중 한 부분만 극단적으로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 융은 ‘대극’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풀어 말하자면 양 극단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쪽 성향이 강할수록 반대쪽 성향이 무의식적으로 올라와 그를 괴롭힌다. 그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반대 성향의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완전히 외향적인 사람이 혼자 있고 싶은 집착이 생기고, 이상주의자가 강박적으로 안정에 대해 고민하고, 극도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별것도 아닌 일에 울컥하고,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 융통성을 없는 자신을 자책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융은 시소가 한쪽으로 너무 기울지 않도록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둥글둥글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속 가장 싫어하는 것들일수록 일부로라도 들추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


융은 또한 하나의 직업적 역할에만 너무 갇히게 되면 자신의 영혼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페르소나’라는 가면에 자신의 정체성을 너무 일치시키면 결국 자신을 집어삼키고 무의식적으로 반발을 일으켜 정신적인 질환이 생긴다. 지위와 책임감이 높을수록 그런 현상이 강해진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면서 그 가면을 벗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융은 늘 반대되는 것들의 균형을 강조했다. 의식과 무의식, 선호성향과 열등 성향, 가면과 맨얼굴 등이 통합이 되어서 둥근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결핍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정말 힘들겠지만) 전에 기분 나빴던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이 아무렇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융의 이론은 비과학적이고 심지어 종교적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를 접하는 개인으로서 그저 내 생활에 도움이 되는 부분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 같다. 그를 통해 나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지도를 보고 가는 것과 그냥 막연히 앞을 향해 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융의 지도를 따라서 내 안의 벽을 허물고 나아가 남들에게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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