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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Jul 23. 2021

티눈의 여왕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눈의여왕

          




아주 먼 옛날,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쪽 나라가 있었다. 그곳에는 자신감 넘치는 여왕이 다스리는 커다란 성이 있었다. 그녀는 작은 성들과의 전쟁에서 모두 이겨 그 지역을 전부 통일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여왕은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신하들과 백성들은 모두 여왕에게 충성했다. 그녀도 그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눈이 세차게 휘몰아치던 어느 날 아침, 여왕은 황금색 화려한 침실에서 눈을 떴다. 방안 공기에 답답함을 느낀 여왕은 침대에서 나와 창문 한쪽을 열었다. 그러자 거센 눈보라가 그녀에게 몰아쳤다. 여왕은 얼굴에 커다란 눈덩이를 맞았다. 놀란 그녀는 급히 창문을 닫았다.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눈을 치워냈다. 볼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다시 거울을 보니 오른쪽 볼에 커다란 뾰루지가 나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그런 흠이 생겼다는 사실에 몹시 슬펐지만 곧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뾰루지는 사라지지 않고 새끼손톱만큼 커졌다. 게다가 흉측한 모양이 되어버렸다. 다음날 여왕은 궁전 의원을 방으로 불렀다.

“이게 무엇이냐?”

“여왕님, 그것은 티눈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그 병은 원래, 원래...” 의원은 여왕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당장 말을 하지 못할까?”

“원래 발에 생기는 병입니다. 작은 신을 신거나 발가락끼리 지속적인 마찰이 있을 때 주로 생깁니다.”

“너는 내 얼굴이 발가락으로 보이느냐!”

여왕은 양 쪽 볼이 붉어진 채로 소리쳤다. 방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저도 얼굴에 그런 병이 난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나을 수는 있는 병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각종 약초들을 빻아서 만든 약을 꾸준히 바르시면 어느 날 ‘똑’하고 떨어질 것입니다.”     

다음 날 의원은 항아리에 든 약을 여왕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는 그날 밤 병사들에게 끌려가 숙청당하고 말았다. 반역죄였다. 여왕에게 수치심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여왕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국책 회의에 계속 참석하지 않자,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 한 명이 그녀의 방 앞을 찾아왔다. 여왕은 그 신하를 믿었기에 그를 방 안에 불러들였다.

“여왕님, 신하들이 여왕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신 게 아닌가 하고 무척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네. 그저 몸이 좀 안 좋았을 뿐이야.”

“여왕님, 얼굴에 난 그것은 무엇입니까?”

“잠깐 뭐가 난 것뿐이라네. 약을 바르고 있으니 금방 낫겠지.”

“하루빨리 나으시면 좋겠습니다.” 신하는 여왕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하지만 여왕은 그런 그가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날 밤 충신은 병사들에게 끌려가 숙청되었다. 역시 반역죄였다.      



일주일이 지나도 티눈이 전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여왕은 어쩔 수 없이 국책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엔 네 명의 수석 신하가 있었다. 그들은 숙청당한 신하의 소식을 들었기에 여왕에게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러다 한 신하가 말했다.

“여왕님을 다시 뵐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저희 모두가 여왕님만을 기다렸습니다.”

“나야말로 이제야 참석해서 미안한 마음이라네.”     

신하들은 여왕에게 난 티눈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날 회의에 참석한 신하는 모두 숙청당했다. 여왕은 회의 내내 신하들이 자신의 티눈을 쳐다보는 것처럼 느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분명 속으로는 깔깔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회의가 끝나고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      



시간이 갈수록 여왕은 환청과 환각에 시달렸다. 백성들의 웃음소리가 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 또한 창문 바깥에서는 눈송이들 사이로 신하들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티눈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새로운 신하들로 꾸려진 국책 회의가 진행되었다. 4명의 신하가 있었다. 곧 회의석에 여왕이 등장하자, 신하들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단 한 명의 신하를 제외하고 말이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다가 한 신하가 여왕에게 말했다.

“여왕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여왕님의 얼굴이 너무나 눈이 부셔 도저히 회의에 집중을 할 수 없습니다.”

“나를 놀리는 것이냐?” 여왕은 금세 붉어진 얼굴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빛나는 보석을 살면서 본 적이 없습니다. 여왕님의 얼굴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붙어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여왕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 말이 거짓말이라면 저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겠습니다.”



그때를 틈타 다른 신하들이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여왕님 얼굴의 보석은 도저히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 있습니다. 원래도 미모가 탁월하시지만 그 보석까지 가지고 계신 여왕님은 완벽하게 아름답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회의 내내 여왕님의 보석 같은 아름다움에 계속 눈이 가서 아주 혼났습니다.”



그러더니 신하 한 명이 거울을 각종 보석으로 치장된 황금 의자에 비스듬하게 비춰서 여왕에게 보여주었다.     

여왕은 고개를 숙여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실제로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자네들은 정말 보석을 볼 줄 아는 신하들일세. 여기 있는 모두에게 황금을 마차에 실어서 보내겠네.”

“감사합니다.” 신하들은 동시에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날 이후로 여왕은 다시 자신감을 되찾고 북쪽 나라를 적극적으로 다스리게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약을 바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티눈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여왕의 눈에 그것은 더 이상 병이 아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석이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다른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은 여왕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 난 티눈을 찬양했다. 여왕은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으쓱대면서 기뻐했다. 그들은 곧 그녀를 '티눈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여왕이 없을 때 그 표현은 성 안팎에서 서로를 놀릴 때 쓰는 일종의 유행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왕이 자고 일어나서 거울을 보는데 얼굴에서 티눈이 '똑'하고 떨어졌다. 여왕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녀는 티눈 없이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었다.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방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의원을 불러와 떨어져 버린 그 티눈을 다시 붙일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다.     

“개구리의 침으로 만든 찐득한 액체를 붙이면 어떤 것이든 붙일 수 있습니다.”

의원은 곧 그 액체를 가져와서 떨어진 티눈을 여왕의 얼굴에 다시 붙여주었다.      

볼에 찰싹 달라붙은 티눈을 만지면서 그녀는 타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왕은 의원에게 커다란 보석 꾸러미를 하사했다.      



며칠 뒤 여왕의 생일날이 찾아왔다. 신하들과 백성들이 모두 모인 대형 야외 강당에서 여왕은 황금으로 만든 연단 앞에 섰다.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티눈의 여왕님!”

“하늘의 별들보다 반짝이는 티눈의 여왕님!” 모두들 박수를 치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두 가지 구호를 번갈아 외쳐댔다.     



“부러워하지 말거라. 너희들 마음속에도 모두 각자의 티눈이 있단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커다란 환호성과 수많은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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