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 비춘 한국사회와 교회 # 3
지금 대한민국은 커다란 내전상황과 다름이 없다.
과거처럼 총칼로서의 전쟁이 아닌 문명국가에서
심리적, 이념적, 정치적 진영의 내전상태이다.
기이하게도 한국교회가 내전에 선봉장에 서있다.
화평케 하는 자의 사명을 받은 교회가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켜
내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지극히 모순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요즘 이러한 내전적인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더 놀라운 일들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의 내전에 새로운 리더로 등장한 목사가
나의 신학대학원 동기목사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100명이 넘는 대학원 동기 단톡방에 까지
시국논쟁이 격화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다수 한국보수교회가 지지하는
정치진영의 주장의 발언과 선전물과 홍보성의 자료들이 일방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 시국에 목사는
당연히 보수정치 진영을 지지하는 것이 애국이며 신앙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어쩌다가 다른 생각과 관점을 가진 목사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신앙적으로 크게 잘못된 목사 취급을 받으며 뭇매를 맞는 분위기가 되곤 한다.
요한복음 7장은 놀랍게도
2000년 전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에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성들은 ‘무엇이 옳은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그리스도인지?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선생인지?’
분별을 못하는 무지와 혼란으로 국가적 위기 상태였다.
혹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인 것 같다.’
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도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힘든 상황이다.
당시 유대국에서 신앙적으로나 법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산헤드린공의회에서 예수를 거짓선생으로 단죄하고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살벌한 상황이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7장은
이러한 상황과 분위기에서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 속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전해주고 있다.
당시 산헤드린공회에서 예수는 물론,
따르는 사람들도 처벌하려는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도 감히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의견이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제시한다.
“그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의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요 7:50,51)
압도적 다수의 생각과 니고데모 한 사람의 생각
누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것일까?
요한복음이 기록하는 시점은 니고데모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
역사적, 성경적 판결이 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분별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봐라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요 7:52)
요한사도는 오히려 진실을 말하는 니고데모가
다수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의 최고 지도자들인 산헤드린공의회 속에도
진실의 가려지고 있는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진실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하는 곳에
불의함이 지배하고 있음을 현실을 사도요한은 보여주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종교인들은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증거 해야 할 자들임에도
오히려 거짓됨과 불의함에 주도하고 있는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그 시대,
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대로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무지와 혼란의 상태도 반복되는 것이 인간사회이다.
“누가 까만 놈이고, 흰 놈인지 모르겠다.”
예전에 우리 집안의 문제를 분별하고 가르마를 타야 할 위치의 사람이 했던 말이다.
그때는 답답했고 힘들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다 밝혀졌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혼란이 극심한 내전 상황은
당시 유대국의 망국의 길처럼 국가사회의 미래가 위태한 지경이다.
조속히 정상을 회복하려면
국가사회의 주권자인 국민들의 올바른 분별력이 필요하다.
요한복음은 이와 같은 혼돈과 혼란한 사회 속에서
진위를 분별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말씀이다.
사도요한은 진실한 사람들과 거짓된 사람들의 속성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말과 태도, 행동을 통해
진실한 사람과 불의한 사람들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분별력을 가지게 하고 있다.
정확한 사실(fact), 타당한 논리, 합리적인 지식에 기반하지 않는다.
니고데모의 발언은
“우리 율법은 누구를 단죄할 때에 억울함이 없도록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증인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이러한 처신이 우리가 믿는 율법정신에 합당하냐?”
라는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율법의 정신을 밝힌 것이다.
산헤드린공회원들은
니고데모의 성경적 근거에 반론을 펼치지 못하고
비논리적인 엉뚱한 반응과 태도를 보인다.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요 7:52)
니고데모가 밝힌 성경적 진실(fact)을 외면하고
집단적으로 진영논리로 지역비하적인 인신공격을 한다.
정직함의 결여에다 편견과 오만,
폭력성까지 있는 불의한 사람들의 속성을 드러내 준다.
불의한 자들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존중이 결코 없다.
요한복음에서 모든 시대의 불의한 자들의 공통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요 7:49)
저들은 자기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조차도 저주를 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을 네 편 내 편으로 나누고
자기들 생각이 같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쉽게 정죄하고
공격하는 것 또한 불의한 자들의 공통속성이다.
따라서 시기와 상황에 따라 진실규명이 명확하지 않을지라도
발생한 문제나 사건을 대하는 자세, 인간과 사회공동체를 대하는 태도는
진실을 분별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불의 한 자들은 진실이나 공의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는 사람을 중요하게 보는 인간에 대한 존중, 존엄성은 같은 것도 없다.
타인을 쉽게 공격하고, 자신들의 자리 나 이득 앞에서는
타인의 생명조차도 빼앗을 수 있는 폭력도 가능한 이유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처럼 불의한 인간성에 대한 폭로이며 정죄이다.
동시에 인간성 회복과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