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코로나 19가 전 세계적 재앙이 되었다. 한국은 전염병 종식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모든 국민도 동참하여 함께 노력하여, 다행히 이제는 어느 정도 진정국면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긴장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언재 어디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또 발생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에서 초기에 급속한 확산에는 신천지 사람들은 행위와 태도가 크다. 저들은 국가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음에도 자성이 없고 진정성 있는 사과나 합당한 행동 같은 것은 없었다. 저들에게서는 사회적 책무 같은 것들은 아예 없어 보인다.
왜 신천지 사람들은 이처럼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것일까? 바로 영생에 대한 오도된 믿음 때문이다. 신천지 사람들은 영생에 집착되어 있다. 영생 교리는 신천지 사람들의 모든 의식과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힘이다. 영생 외에는 가정도 국가나 사회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은하철도 999의 영생
은하철도 999는 일본인 마츠모토 레이지가 쓴 만화다. 철이라는 소년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우주 횡단 열차를 타고 수많은 난관을 겪으면서 우주여행을 하는 스토리이다. 철이는 천신만고 끝에 영생이 있다고 하는 안드로메다라는 별에 도착한다. 하지만 철이는 다시 지구로 되돌아가기 위한 은하철도를 탄다.
이유는 영생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철이가 확인한 안드로메다에서 본 "영생"은 인간의 육체를 유리관 속에 보관하고, 기억과 의식은 인조 기계에 집어넣어 안드로이드(인간형 로봇)가 되어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사는 것이다. 영생이 단지 죽지 않고 목숨만 연장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은하철도 999는 드러내고 있다.
성경에서 영생이란
성경에서 영생이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요한복음 17:3) 여기서 “아는 것”은지식이 아니라 사랑의 깊은 관계를 말하고 있다.
구약에 “리브가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였더라.”(창세기 24:16) 여기서 “알다”는 히브리어로 “야다”로 사랑의 깊은 관계를 의미하는 단어다.
신약에서도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누가복음 1:34) 여기서도 “알지”는 헬라어로 “기노스코”인데 이 단어 역시 동일하게 사랑의 깊은 관계를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영생은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뜻한다.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다. 기독교 진리란 사랑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것이며, 사랑이 성경이 말하는 영생이다.
영생과 이웃사랑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는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로 확인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구약성경의 모든 핵심이다.(마태복음 22:37-40 ) 사도 바울이 율법의 완성은 사랑(로마서 13:8-10)이라고 하였고, 사랑이 성경의 모든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영생이라는 것은 구약에서부터 말해 왔고(시 133:1-3), 성경이 말하는 최후 심판의 기준도 이웃사랑 여부이다.(마태복음 7:23) 결국 이웃사랑 없는 영생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요한일서 4:20)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8)
오도된 영생은 신천지 사람들만 가지고 있겠는가? 한국 교회들도 지금 같은 코로나 19로 인한 국가 사회의 위기와 우리 주변 이웃들의 위험한 상황에서 교회당 예배만을 고집하는 태도가 과연 성경적인가? 묵상과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