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19의 급속한 확산의 특이한 점은 신천지라는 종교 단체가 있어 국민적 충격과 함께 커다란 사회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신천지 교인들의 비상식적 행위와 태도를 보면서 사람들은 의문을 가진다. 사람들이 왜 이러한 종교들에 빠져들게 되는가?
사람 포섭에 최적화로 진화된 신천지
신천지 포교 방법을 살펴보면 기존의 이단 단체들 중에서 방법을 계속 진화시켜 최고단 수법이 되어 있다. 너무나 다양한 계획적 포교 방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이 된다. 신천지에서 나온 사람들을 통해 저들의 포교방식을 접할 때마다, 그 방식이 사람 유혹에 전문화, 최적화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포교 대상자의 상세 정보를 사전 입수하고, 우연을 가장한 계획적인 접근, 상대의 필요와 욕구를 기민하게 채워주며, 점점 편안하고 친밀한 인간관계까지 단계적으로 형성해간다. 이러한 과정이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다. 당하는 사람들은 신천지 안에 들어온 자신을 뒤늦게 서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신천지 교리에 이미 세뇌가 된 상태이다.
이러한 신천지 유혹에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안타깝다. 하지만 모두가 당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신천지가 사람을 포섭하려는 방식이 매우 고단 수적인 수법이긴 하지만 이용당하는 사람에게 어떤 내적인 연결고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물고기 잡는데도 낚시 바늘에 아무리 좋은 미끼를 붙여 놓아도 물고기에 욕구에 맞지 않으면 물지 않는다. 또한 욕구에 맞는 미끼를 던져도 그 속에 낚는 무서운 바늘이 숨겨 있다는 것을 알면 덥석 물지 않는다. 우리는 각종 사기나 사이비 종교집단들의 유혹에 쉽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내적인 두려움의 문제
사람들이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나 단체에 쉽게 넘어가는 원인 중에 하나가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인간 심연 깊숙한 곳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문제이다.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수많은 문제에 밑바닥에서 두려움을 발견하게 된다. 철학에서도 인간을 통찰하는 가운데 내면의 두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존재적 불안이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두려움의 근원을 밝혀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은 두려움에 심연이 너무나도 깊이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을 직면하기를 원치 않는다. 두려워하는 자신과 직면하는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회피하고 외면하며 살아가게 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더 무의식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삶을 지배한다.
신천지의 교리는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을 자극하여 사람들을 낚아 올리는 것과 같다. 또한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성경의 본래 의미를 살짝 비틀어 왜곡시켜 놓은 것이지만 성경의 깊은 지식을 가지지 않고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분명 신천지 교리가 성경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작용하는 힘이 있다. 신천지 교리 속에는 인간의 내면의 두려움과 숨은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조건부 종말론의 두려움
신천지 교리에는 144,000명이라는 아주 특이한 조건부 종말론이 담겨있다. 정해진 숫자 안에 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강한 두려움이다. 신천지 사람들의 열심의 밑바탕에는 이 두려움과 욕망이 강박증처럼 무섭게 작용하고 있다. 신앙의 밑바탕에 두려움이 작용하는 것은 결코 건강한 신앙이 될 수 없고, 성경적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와도 명백히 다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런 종류의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인간 내면에 진실의 빛을 비추어 두려움의 근원을 보게 해주고 있다. 성경은 두려움의 근원과 실체를 발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건져내어 안식과 사랑의 삶으로 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