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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Jun 02. 2020

어차피 사랑은 공평하지 않아.

영화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







넌 돼지새끼처럼 쓸모없는 놈이야




그러니 죽어, 죽으라고




넌,  누구야?







  1981년, 스웨덴 스톡홀름 교외의 작은 도시 블라케베리.

  인적 하나 보이지 않는 깊은 밤,  하얗게 눈이 쌓인 텅 빈 놀이터 한쪽에서 창백하게 깡마른 소년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칼로 나무 밑동을 마구 찔러대고 있어요.  아빠는 가족을 두고 떠났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년은 학교에서 못된 아이들로부터 '계집애'라고 불리며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죠.  그녀석들을 똑같이 칼로 그렇게 찔러 죽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다봤어요.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건지 알 수도 없이 얇은 옷차림에 맨발 차림으로 물끄러미 소년을 지켜보고 있던 한 소녀가 저 위에 서 있었습니다.  며칠 전, 어느 노인과 함께 단둘이 바로 옆집으로 이사 온 아이였죠.  

그날 밤,  소년과 소녀는 그렇게 처음 만났어요.  그 순간까지만 해도 소년은 전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밤마다 아버지뻘의 그 노인은, 누군가를 죽여 피를 구해오고 있었죠.  

그 피는... 바로 소녀를 위한 거였습니다.  소녀가 마실, 인간의 뜨거운 피였어요.


  어두운 한밤, 눈 내린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는 열두살 소년 오스칼과 이엘리의 이야기는 스웨덴의 소설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첫 데뷔 소설에 실려 있습니다.  2002년 즈음부터 시작해서 2004년에 집필이 마무리 되었지만 책으로 완성되어 나오기까진 꽤 우여곡절이 많았죠.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호러소설이란 형식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단 그 속에 다루어지고 있는 세부적 내용들과 정서가 너무 괴상하다는 이유로 출판사들로부터 무려 8번이나 퇴짜를 맞은 이야기였습니다.  자포자기했던 그는, 이 이야기를 결국 접어두고 두번째 소설을 집필하던 중에 우드프론트 출판사로부터 뒤늦게 연락을 받게 되었던 거죠.  그렇게 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그의 첫 소설이 바로 이 '렛미인'(영어원제: Let the Right One In)이었어요.  출간되자마자, 이 기이한 소설은 곧 베스트셀러로 떠올라 전 세계 독자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 독일, 미국 등지에서 연이어 영화화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는 그중 스웨덴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제의를 받아들여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소설 제목 그대로 2008년에 개봉된 스웨덴 영화 'Let the Right One In'은 이후 30여개의 영화제에서 48개의 상들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팬들의 입소문에 올랐어요.  로튼 토마토 지수 98%를 기록하며 호러영화로서의 장르적 성취도에서뿐 아니라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순수한 휴먼 스토리로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티켓 파워를 기대하기 힘든 북유럽 스웨덴 영화, 거기다 호러영화였던지라 2008년 우리나라의 수입사 데이지 엔터테인먼트는 '단돈 1천만원'에 이 작품을 들여왔던 걸로 알려져 있죠.  그 당시 광고도 영화 전문지 한곳, 예매 사이트 단 한곳뿐이었답니다.  시네마테크와 같은 예술전용관들 위주로 단 13개 상영관에 내걸렸던 이 영화는... 이후 관람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 33개 스크린으로 확대되었어요.  1만명의 관객만 들어도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리라 내다봤던 이 영화의 국내 관객수는, 족히 10만명에 육박했으리라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이상하고 기이한' 작품의 조용한 신드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죠.  많은 영화 매니아들로부터 현재까지도 컬트적 지지를 이어오고 있고  2010년과 2013년엔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무대에서 공연되며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2016년엔 비영어권 최초의 연극 공연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기도 했어요.  어쩌면 발길에 채일 정도로 흔한 뱀파이어 영화 하나가,  이렇게 '유별난' 주목을 받은 건 대체... 무엇 때문이었던걸까요.








사랑은 원래,  불공평한 거지




내가 너에게 들어가려면




니가 먼저 날 초대해 줘야 해




내가 보통 여자애가 아니더라도




날 좋아해 줄 수 있겠니








  독특한 탄생 이력으로 유명했던 원작소설과,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두개의 영화 버전이 가진 유명세에 비하면 이 작품 '렛미인'의 스토리 구조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왕따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가 만나고 이 둘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생겨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죠.  극중 배경이 되는 스웨덴의 소도시 블라케베리는 영화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순백의 흰 눈으로 온통 뒤덮여 그 깊은 쓸쓸함의 무게에 아주 그냥 온 몸이 푹 젖어드는 느낌마저 들어요.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도 두 소년 소녀, 그리고 소녀의 아버지로 보이는 노인, 이 세 사람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세 인물 사이에 흐르는 그 극도로 섬세한 '감정선'들이  실은 이 기묘한 영화의 주요 소재이자 동시에 핵심 주제가 되고 있죠.  만약 기존의 정형화된 뱀파이어 영화의 공식으로 바라본다면 살짝 당혹감이 느껴질 만큼 영화의 전반부가 꽤 낯설고 생경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이 매서운 한겨울같은 시린 성장기를 보내고 있는 소년 오스칼이 정체불명의 소녀 이엘리와 마주치는 상황은 전형적인듯 하지만... 이 작품속에서 그려지는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보통의 흔한 영화들과는 그 감정적 결에서 분명 큰 차이를 보이거든요.  여타 뱀파이어 영화들에선 피를 섭취해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막대한 재산을 축적해 우아하게 귀족처럼 살아가고 있는  하이틴 로맨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의 느낌이라든지, 아니면 그 반대로 뇌 없는 좀비처럼 우악스럽게 피 빨아먹는 몬스터의 느낌들로만 단순하게 채워졌었습니다.  주로 공포의 대상, 아니면 종종 경외의 대상으로만 그려져왔던 거죠.  

하지만 원작소설 '렛미인'과 이 영화를 통해 그려지는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의 모습은 마치 성적 오르가즘과 같은 극도의 쾌감에 탐닉하듯 인간의 피를 갈구하는 그런 뱀파이어의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마치 맹수처럼 누군가의 목을 물어뜯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곤 하지만 그 초점 없는 눈빛 속에서 어떤 우월적 공포가 느껴지진 않아요.   오히려 소녀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깊은 실존적 회의와 극단적 피로, 그리고 긴긴 세월 온몸에 사무쳐 보이는 그 깊은 고독이...  지켜보는 내내 더욱 가슴에 짙게 와닿을 겁니다.








난 늘 이렇게 어둠 속에 혼자 있어





넌 마음으로만 매일 누군가를 죽이지만





난 살기 위해





이렇게 진짜 누군가를 죽여야만 해








  그렇게 무심히 들여다보자면,  그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소년과 소녀, 두 존재가 서로 만나는 '작은' 이야기였던 거죠.   그리고 실은 이 둘의 '먹먹한' 사랑에 그저 한낱 언저리에 불과해 보이지만 사실 이들만큼이나 지독한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어느 한 노인의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기도 합니다.  사무친 '결핍'을 품고 있는 외로운 이들이 서로의 그 '빈 곳'을 채우려 하는... 실은 애잔한 러브스토리이자 한편으론 기괴한 잔혹동화에 가까워요.   느리고 절제된 영상들과 서정적인 배경음악들이 어우러진 그 잔잔한 이면들속에 소아성애, 동성애, 살인, 폭력, 학교폭력, 결손가정, 정서적 학대, 무관심, 방임 그리고 무기력한 학교 시스템들과 같은 '위험한' 이슈들이 은연중에 깊이 스며져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러한 이 작품의 민감한 코드들에 대해서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로 명확히 옮고 그름을 구분하기가 또한 쉽지는 않을 겁니다.  차가운 머리로 판단하고픈데, 애잔한 가슴이 그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아 버리는 그런 묘한 느낌이 들죠.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의 극명한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될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에겐 아마 인생영화중 하나로 기억될 정도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될 테고, 또 누군가에겐 두번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굉장히 불편하고 찝찝한 영화가 될 수 있어요.  지극히 고요하면서도 동시에 거칠게 날이 서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며칠간 그 짙은 잔상들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처연한 애잔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런 해괴한 작품이기도 하죠.  


  2008년에 공개된 스웨덴 버전의 이 작품과 다시 2010년에 맷 리브스 감독의 연출로 개봉된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은 제각각 원작소설의 큰 줄기를 공유하면서도 세부적인 설정과 캐릭터 해석, 그리고 미묘한 감정적 늬앙스에 있어서 각자 다른 형태의 독특함을 품은 수작으로 평가받기도 했어요.  메마르고 건조한 느낌이 강했던 스웨덴 버전의 영화와는 달리 클로이 모레츠가 뱀파이어 소녀 연기를 맡았던 할리우드판 '렛미인'은 단연 할리우드 작품답게, 더 세련되고 역동적인 폭력 묘사가 두드러져 보였지만 대다수 평단과 관객들은 역시 이 스웨덴 버전의 오리지널 작품에 더 큰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죠.  두 작품 다 제각각의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 한꺼번에 비교하며 감상해봐도 충분히 괜찮다고 여겨지지만 만약 딱 한편만 고르라고 한다면... 한결같이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이 2008년작 오리지날 작품을 아마 손꼽을 겁니다.  제 개인적 느낌은 혹시 어떘냐고요?  딱 한번만 이 작품을 더 감상해볼 수 있다고 한다면, 스산하고 쓸쓸했던 이 스웨덴 버전을 곧바로 산책할 거예요.  주저함 없이,  단번에 말이죠.














오스칼,  나를 지켜줘


  



나도 널 지킬 테니까





그 끝이 결국 어디가 되든,








  거칠고 잔인한 폭력묘사에서 느껴지는 공포가 일견 두드러져 보이지만,  마치 심한 후유증을 앓듯이 실은 그 이면에 스며진 애잔함이 더 짙게 드리워진다는 점에선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걸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의 고통'이라는 측면에선 분명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무서움 그자체보다 실은 아로새겨진 그 슬픔의 감정들로 인해 더 무섭게 느껴졌던 한국영화 '장화, 홍련'의 이미지들도 겹쳐지는 느낌이에요.  흥미롭게도, 원작소설의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는 한국어 소설 번역판에 특별히 담은 3페이지 가량의 감사 서문에서 김지운 감독의 공포영화 '장화, 홍련'을 세번이나 따로 챙겨 볼 정도로 개인적으로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 '렛미인'의 한국판 리메이크를 찍는다면 가장 잘 어울릴 감독으로도 보이는 김지운 감독은 한편으로, 스웨덴 버전의 영화 '렛미인'에 대해서 이런 감상을 밝혔다고 하죠.  "창백한 공포와 스산한 아름다움, 하얀 눈 위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탐미적 악몽으로 그려낸 공포영화의 걸작"이라고 말예요.  


  모든 분들에게 보편적으로 추천할만한 영화가 아닌건 사실입니다.  코드가 전혀 맞지 않는 관객들에겐 불편한 잔여감으로만 남을 여지가 충분한, 기괴한 잔혹동화이자 악몽에 불과할 수 있죠.  하지만 어느날 문득, 내 안의 어떤 숨은 감정들과 절묘히 맞아떨어지면 그저 단순하게 보이는 두 소년 소녀의 이 해괴한 '감정놀음'뿐 아니라 삶의 극단에 간신히 매달려 고통받고 있을지 모르는 세상의 수많은 숨겨진 이면들이 함께 겹쳐져 마음 한구석을 내내 일렁이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모든 갈등이 얼핏 해결된듯한 마치 행복해 보이는 소년과 소녀의 그 결말이 그렇게 보이는게 다가 아니었듯이

흔히 완벽하다고 착각되는 이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때론 그랬던거 같아요.  함께 서로 마주보고 있음에도 결국엔 더 사랑하고 있는 이가... 혼자 더 힘들어하고 혼자 더 아프게 되고 마는, 신기할 정도로 불공평하고 이기적인 그런 민낯을 지니기도 했습니다.  뻔히 그 끝을 알면서도 홀린듯 불꽃 속에 뛰어들어 자신을 스스로 산산이 태워버리는 여린 나방의 모습처럼,  그렇게도 말이죠.  

  소년과 소녀,  그리고 노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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