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
이만희 감독이 연출하고 당대의 스타였던 신성일, 문정숙이 주연을 맡았던 1966년 영화 '만추'는 당시 영화 관계자들뿐 아니라 지금의 영화팬들에게도 한국영화 100년사에서 손꼽히는 걸작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살인죄로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던 중 특별휴가를 얻어 서울행 열차에 탑승한 한 여자가 범죄 혐의로 쫓기던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내용이었죠.
두 사람의 스쳐가듯 짧은 만남과 시린 이별을 담은 이 멜로영화는 당시로선 특이하게도 꽉 찬 서사로 극이 진행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쭉 나열되는 이미지들을 통해 깊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형식이었다고 해요. 국내의 원본 프린트뿐 아니라 당시 해외에 출품되었던 필름마저 모조리 유실되어 지금은 다시 찾아볼 수도 없는 '레전드'가 되어 버렸지만 이후 여러 번에 걸쳐서 여러 형태로 리메이크되어 왔습니다.
김태용 감독이 원작 시나리오를 토대로 각본과 연출을 맡고 중국 여배우 탕웨이와 현빈이 주연을 맡아 2010년에 제작된 이 작품 역시, 최초였던 1966년도 작품의 리메이크라 할 수 있어요. 순 제작비 70억원에 프로모션 비용까지 약 90억원, 미국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 된 이 영화는 제35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어 사전 관람했던 관계자들과 관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기도 했죠.
한데 막상 극장에선 제때 개봉되지 못했었습니다. 느리고 담담하며 지극히 섬세한, 말 그대로 쓸쓸한 '늦가을' 같은 분위기의 작품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수익성이나 대중성에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에요. 적당한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해 잠들어 있던 이 영화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배우 현빈이 폭발적 인기를 거두고 나서야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거죠.
살인죄로 복역 중인 모범수 여자가 받은 특별외출,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쫓기는 다른 한 남자, 그리고 혜어짐...이라는 기본골격은 원작 '만추'의 그것을 여전히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짧은 만남을 가지게 되는 그 낯선 공간은 잔뜩 낀 안개와 흐린 날씨로 유명한 미국 시애틀로 바뀌었죠. 한국어를 알지 못하는 중국 여자 애나와 역시 중국어를 알지 못하는 한국 남자 훈이라는 설정도 새로웠습니다.
그렇게 개봉 후 국내 최종 흥행 집계는 단 '90만 명'. 꽁냥꽁냥한 전형적인 로맨스물의 정서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이 작품이 이른바 이렇게 '돈이 되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이 작품은, '로맨스'라는 그 한정된 영역 안에서만 평가하기엔 깊이가 남다르죠. 실은 더 포괄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그런 작품으로 제겐 받아들여집니다. 애나와 훈의 인생을 각자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던 게 그 죽일놈의 '사랑'이긴 하지만, 영화는 서로서로에게 닿아지는 그 관계의 어떤 미세한 '접점'을 툭툭 던지듯 그렇게 조용히 내비치고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래서 비로소 '소통'하게 된다는 건, 과연 무엇을 통해 가능할까요. 돌이켜 떠올려보면 가장 훌륭한 '대화법'이란 건 나를 잘 드러내고, 나를 잘 표현하고, 나의 것들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우선이라고 강요받다시피 배워온 거 같아요. 내가 전달하고픈 것만 내내 떠올리고 있으니 타인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단편적인 시그널만 주고받으며 서로 먼저 상대의 말을 끊기 바쁘기도 해요. 오랜 시간을 함께 부딪치며 그렇게 수많은 '신호'를 주고받아도... 그걸 '소통'이라고 정의하기에는 힘든, 그런 반쪽짜리 관계들도 생각해보면 의외로 수두룩 하죠. 얼마나 많이 마주쳤는지, 얼마나 많은 말들을 주고받았는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해나 공감의 척도가 결코 아닌 거라면 언제나 그게 궁금했습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 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순간에 어떤 계기로 가능한 건지 말이죠.
이 영화 '만추'에선 어땠을까요. 이 작품은 어찌 보면 정말 삭막할 정도로 인물들의 대사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직접 감정을 드러내는 대사들은 더욱 드물어요. 탕웨이가 연기하는 '애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마음을 꽁꽁 닫아버렸고, 현빈이 연기하는 '훈'은 중국어를 아예 모르고 영어마저 그리 썩 유창하지 않습니다. 수없이 서로 많은걸 우다다다 쏟아내도 충분하지 않을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두 사람은 정작 그리 많은 말들을 직접 주고받진 않죠.
하지만 애나의 메마르고 건조한 그 깊은 눈빛 속에, 손짓에, 걸음걸이에, 그리고 미세한 호흡들 속에 실은 수많은 '감정'들이 스며져 있습니다. 시답잖은 농담들이나 툭툭 던지는 듯한 훈은 무표정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 속에 느껴지는 섬세한 그 감정의 변화들을 숨죽여 들여다보며 계속 기다리고 또 기다리죠. 그리고 사람과 사랑에 상처 받아 마음을 닫았던 애나 역시, 그렇게 이 남자가 자신을 들여다봐주고 차근히 읽어내려 한다는 걸 '느껴가는' 겁니다.
가장 꺼내기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훈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로 애나가 얘기하던 그 장면은 사실... '언어적'으로는 완전히 어긋난 상황이었어요. 애나는 훈이 알아듣지 못할걸 알고 얘기하고 있었고, 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두 단어인 '하오'(좋아)와 '화이'(나빠)로 추임새 같은 반응을 할 뿐이었으니 말이죠. 근데 그렇기 때문에, 훈은 더더욱 그녀의 눈빛과 표정, 목소리의 미세한 흐름들에 눈 한번 떼지 않고 '집중'합니다. 섣불리 애나의 말을 끊으려 하지 않고, 끼어들지 않고, 부러 보채거나 섣부른 충고나 간섭을 하지 않아요. 애나가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그 '사실'들 자체는 이미 그 순간 별 의미가 없습니다.
명쾌하게 분석을 하고, 결론과 해답을 내려주고, 이른바 '오지랖'을 떠는 것보다 가만히 아주 조용하게... 누군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기다려 주는 게 더 울컥하며 와닿을때가 있잖아요. 이 작품은 그런 시선으로 가만히 그녀를 함께 들여다볼 때, 오히려 더 풍부하고 묵직한 감정들이 가슴 깊이 와닿는 영화라고 봐집니다.
시종일관 애나가 감정 없이 차갑고 무표정했다고요? 아니요,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계속 울고, 웃고, 두려워하고, 미소 짓고,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울분을 호소하고 있었어요. 적어도 훈에게 그녀는... 분명히 그러했었던 겁니다.
물끄러미 커피를 내려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애나의 모습을 비춰주던 마지막 씬. 참 야속하게도 영화는, 테이블의 맞은편에 애나가 기다리는 그 '누군가'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와 앉는지를 끝내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열린 결말'로 이 스산하고 쓸쓸한 영화의 마무리를 지어 버리죠. 지켜봐 왔던 이의 바람이나 기대에 따라서 이 결말은 다양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사랑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로맨스물로 마무리짓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홀연히 그렇게 애나 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그 사람은 예의 그 능글능글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곳에 들어와 그녀의 이름을 부르겠죠. 하지만 우리 삶이, 일어나기 힘든 그 '기적'이 아니라 거친 '다큐'에 가까운 것이라 본다면... 애나는 몇 시간을 우두커니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다 이제 자신이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또다시 무거운 상념에 빠질 겁니다.
솔직히 처음 이 작품을 감상했을 땐, 이 알 수 없는 결말에 참 먹먹했어요. 끝내 애나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한데 지금의 느낌은 또 좀 다르게 와닿아요. 이 작품이 사랑, 그 감정 자체에만 오롯이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진 않아 보이거든요. 세상의 모든 가치, 감정, 관계들이 흑백과 같은 양극단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흑과 백의 그 사이에 회색빛이 있다면... 그 빛깔들 또한 수많은 층의 농도와 채도로 제각각 존재할 겁니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우리가 마주치는 제각각의 '인연'들이 다 그러해요.
그래서 단지 이 작품은 예기치 못하게 마주친 두 남녀의 안타까운 '썸'만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을 겁니다. 김태영 감독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이란 망망대해의 외딴섬이자 이방인인 우리들 모두가, 낯선 존재에게 '마음을 여는 바로 그 순간'의 감정들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죠. 감겨 있던 눈이, 듣지 못하던 귀가, 닫혀 있던 마음이 비로소 열리는 바로 '그 순간'에 대해서.
7년 전 그날, 남편의 시체를 거실에 내버려 두고 피멍 든 얼굴과 초점 없는 눈동자로 텅 빈 거리를 멍하니 배회했던 그날에 애나의 '시간'은 그대로 정지해버렸어요. 그녀의 감정도, 그 날 함께 죽었죠. 하지만 그녀의 꽁꽁 얼었던 그 '시간'은 다시 서서히 흐르고 있는 거 같습니다. 누군가가 그녀의 지친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살아 숨쉬는 그 '시간'을 끝내 그녀의 손목에 남겨두고 갔던 그 순간으로부터 또다시.
'시간'이란 게 말입니다, 원래 절대적이고도 상대적이듯이... 때론 찰나의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그 '시간'안에 남아서, 누군가를 그렇게 계속 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죠.
이거, 결국엔 슬픈 사랑 이야기 아니냐고요? 글쎄요, 지금 제가 보기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녀가, 웃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