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뜬다리 아래에서
주황색 물갈퀴와 흰 몸통만 드러낸 채
물결 따라 출렁이는 녀석을 보았다.
어제는
물 밖에서
날개를 퍼득이며 기다란 부리로 먹이를
낚아채려는 녀석들의 아우성을 들었다.
녀석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한다.
위화(余華)의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을 읽는 중이다.
느낌은 있지만 그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읽기를 멈추게 한 대목을 함께 읽어보자.
우리의 글쓰기에도 도움 될 듯하다.
"누군가 뭔가를 쓰고 싶을 때 그 사람과 그가 드러내려는 주제 사이에는
서로를 제약하는 일종의 긴장 관계가 형성되지.
창작자는 어떻게든 주제를 탐구하려 하고 주제는 온갖 장애물을 만들기 때문이라네.
그러다 때때로 모든 장벽이 일시에 사라지고 모순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전에는 꿈에도 생각 못 한 일이 벌어지곤 해.
그럴 때야말로 창작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느껴지지."
(위화가 인용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
창작자의 ‘어떻게든’은
괭이갈매기의 ‘어떻게든’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 삶의 ‘어떻게든’과도 다르지 않다.
살아가는 일과
의미를 찾는 일과 표현하는 일은 결국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