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하나는 잘 말려서 갖고 있자

이안 <사월 꽃말 2>

by 강경

사월 꽃말


엄마, 꽃집에서 적어 왔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건 미선나무,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이건 꽃기린.


둘을 붙이면,


모든 슬픔이 사라진 다음에도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엄마, 우리 이 말 기르자



사월 꽃말 2


미선나무를 심을 땐,


가지 하나를 잘라

갖고 있자


모든 슬픔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슬픔 하나는,

잘 말려서 갖고 있자



꽃이 진 날에도


꽃이 진 날에도

내 이름 기억할 거지?


늦가을

학교 울타리에 핀 개나리꽃

두 송이


너랑 나랑 노랑

봄에 한 약속


민주야


꽃이 진 날에도

내 이름 불러 줄 거지?



로드 킬


길에서 차에 치여 죽는 걸

로드 킬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길 죽음이라고 번역해 놓은 걸 봤어

길 죽음,

길 죽음이라니


정말 꼭 맞는 번역이지 않아?


길에서 죽은 건

고양이만이 아니니까

이제까지 걸어온

고양이의 길이 죽은 거니까

앞으로 걸어갈

고양이의 길이 죽은 거니까


길에서 길이 죽은 거니까



이안, 『오리 돌멩이 오리, 문학동네, 2020.


시집으로 엮인 시들은 고유한 맥락을 지닌다. 개별 시가 아니라 시집 단위로 읽을 때 시들은 더 깊이 와닿는다. 4월에 함께 읽고 싶은 이안 동시집 《오리 돌멩이 오리》에서 동시 4편을 가져왔다.


<사월 꽃말>에서 미선나무의 꽃말은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이다. <사월 꽃말 2>에서 그 의미가 확장된다. 화자는 “가지 하나를 잘라 갖고 있자”고, “모든 슬픔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슬픔 하나는 잘 말려서 갖고 있자”고 하며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슬픔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모든 슬픔이 사라지면 기억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억’이다.


<꽃이 진 날에도>도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꽃이 진 날에도 내 이름 기억할 거지?” “내 이름 불러 줄 거지?”라고 묻는 개나리꽃은 사월에 진 샛노란 꽃 같은 생명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수선한 시국 탓인지, ‘민주’를 ‘민주주의’로 읽게 된다.


기억은 어떻게 애도로 이어질까?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어떻게 애도할 수 있을까? 그 답을 <로드 킬>에서 찾을 수 있다. “길에서 죽은 건 고양이만이 아니”고 “이제까지 걸어온 고양이의 길”과 “앞으로 걸어갈 고양이의 길”이라는 말에서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애도란 죽은 이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그들이 도달하지 못한 미래로 대신 가져가는 일이 아닐까.


시인은 서문에 "금 간 마음에 달아 주는 노란 단추" 같은 시가 독자의 "손에 꼭 쥐어지는 돌멩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기억의 달 4월,

잘 말린 슬픔 한 잎 꺼내어 가슴에 달고

슬픔이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가르쳐 준

이 노래를 듣는다.


악뮤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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