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 수필 <나의 길, 나의 삶>
“인간은 누구나 길 위에 서 있고, 또 그 길을 지니며, 그 길 위에서 하나뿐인 자신만의 인생을 산다.”
-박이문
나의 오랜 꿈은 작가였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박이문 교수의 <나의 길, 나의 삶>이란 수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분의 삶이 바로 내가 추구하던 삶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작품을 내서 인세로 살아갈 수 있는 작가의 삶을 동경했고, 어떻게 살아야 참다운가에 관해 고민했고, 평생 배움의 길을 가고 싶었다. 얼마 전 다시 그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여전히 가슴에 울림이 있었다. 그 시절에 내가 소망했던 대로 배움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었고, 작가의 삶을 동경하며 지나온 배움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됐다.
작가의 꿈은 인생 풍파를 겪고 나이가 지긋해져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인생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길 중에 배움의 길을 택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기자가 되려고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기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신문사에서 실습하면서 단편적인 기사보다 통찰력 있는 긴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아는 게 많아야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니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론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운 좋게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렸다. 미국 대학에서는 세부 전공을 달리해 대인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인간 행동 분석에 필요한 통계를 배웠고, 연구보고서와 논문을 썼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유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대학에서 강의 조교, 연구 조교로 일하며 학비와 생활비 보조를 받은 덕분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면서 월급도 받는다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강의 전날은 수업 준비로 쪽잠 자기 일쑤였지만 가르치는 일 또한 배움의 연속이라 보람 있었다. 그렇게 내 시간을 온전히 배움에 쓰는 전업 학생의 삶이 만족스러웠다. 최소한의 의식주만 충족된다면 일평생 학생으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학생으로 살 방법을 궁리했다. ‘학생’에서 한 글자 고쳐 ‘학자’가 되어 학교에 취직하면 학교를 떠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식견 높은 학자가 되면 전공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통찰력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박사 공부를 마친 뒤 짧은 기간 박사 후 연구원을 거치고 나서 학교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그사이 여러 대학에 면접 기회가 있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박사학위를 받고 전공 분야의 일을 하지 않아서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솔직히 아깝긴 하다. 공부한 것을 돈벌이에 써먹지 못해서가 아니라 배운 것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 알고 있어서 아깝다. 그러나 공부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공부란 무엇을 얻고자 필요했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백팔 배를 올릴 때 첫 번째 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모든 절이 똑같이 중요하듯 졸업까지의 모든 과정이 목적이고 성취였다. 생계 걱정 없이 오랜 시간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고 성장한 것으로 충분했다.
돌이켜 보면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갖고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온 것은 교육열 높은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이다. 어릴 적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문을 외듯 말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명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사람은 돈보다 명예를 추구해야 하고, 그러면 자연스레 돈은 따라온다고. 가세가 기울었어도 꿈을 좇으며 살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큰 만큼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크다. 만약 그 시절에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도록 돈벌이가 확실히 보장되는 공부를 하라고 배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배움을 수단 삼아 부와 안정을 추구했을까. 가족의 삶이 훨씬 더 풍족해졌을까. 운이 좋아 부유한 삶을 살게 됐다면, 그 또한 가슴 뛰는 삶이었을까.
먼 길을 돌아 드디어 오랜 꿈인 작가의 삶에 다가왔다.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Roberta Jean Bryant)는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Anybody Can Write)>라는 책에서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라고 했다. 작가를 정의한 말 중에 이 말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요즘 나는 매일 일상에서 글감을 낚고, 생각을 우려내 글을 짓는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글로 써서 정리하고 고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비로소 작가가 된 것 같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고민이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글을 쓰면서 찾게 될 것 같다. 깨달음의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서투른 글 한 편에 마침표를 찍는다.
2023년 1월 12일 작성
나의 길, 나의 삶 / 박이문
어려서 나는 새를 무척 좋아했다. 여름이면 보리밭을 누비고 다니며 밭고랑 둥우리에 있는 종달새 새끼를, 눈 쌓인 겨울이면 뜰 앞 짚가리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방울새를 잡아 새장 속에 키우며 기뻐했다. 가슴이 흰 엷은 잿빛 종달새와 노랗고 검은 방울새는, 흔히 보는 참새와는 달리, 각기 고귀하고 우아(優雅) 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개도 무척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개와 더불어 뒷동산이나 들을 뛰어다녔다. 가식(假飾) 없는 개의 두터운 정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어느 여름날, 그 개가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가게 되던 날 나는 막 울었다.
서울에 와서 나는 문학에 눈을 떴다. 별로 읽은 책도 없고, 읽었다 해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특수한 인간처럼 우러러 보였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하나하나의 시(詩)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석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시인(詩人)이 된다면 당장 죽어도 한이 없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보들레르나 말라르메와 같은 시를 쓸 수만 있다면, 횔덜린처럼 방황하다 미쳐 죽어도 상관없다고 믿었다. 어떤 직업에도 구애(拘礙)됨이 없이 작품을 내서 인세(印稅)로 살 수 있는 삶이 가장 부러웠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화려했던 사르트르가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사회와 거의 단절(斷絕)하고 사는 괴벽(怪癖)스러운 샐린저 같은 작가의 생활이 더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차츰 무엇이 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알고 싶었다. 모든 것에 대해서 투명할 수 있게 되고 싶었다. 정서적(情緖的) 표현에 대한 충동(衝動)에 앞서 지적 갈증에 몰리게 됐다. 만족할 수 있는 시원한 지적 오아시스를 찾아, 나는 사막(沙漠) 같은 길을 나서기로 결정했다.
시골 논두렁길을 따라 삭막(索莫)한 서울의 뒷거리를 방황하던 나는, 어느덧 소르본 대학의 낯선 거리를 5년 동안이나 외롭게 서성거린다. 파리의 좁은 길이 로스앤젤레스의 황량(荒涼)한 길로 연결되고, 그 길은 다시 보스턴의 각박(刻薄)한 꼬부랑길로 통했다. 이처럼, 나는 앎의 길을 찾아 30세가 넘어 40이 가깝도록 다시 학생 생활을 했고, 이제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학교의 테두리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50년의 긴 배움의 도상(途上)에서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고, 적지 않은 것들과 접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꿈에도 가볼 수 없는 지적 깊이를 보여 준 철학자들, 사상가들, 과학자들, 예술가들이다. 그것들은 거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성취한, 에베레스트보다 높고, 눈에 덮인 들보다도 고귀한 도덕적 가치이다. 나는 이런 만남이 있을 때마다 찬미(讚美)와 존경을 퍼붓지 않을 수 없었고, 경건(敬虔)하고 겸허(謙虛)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감탄을 잘 한다.
이런 경험만으로도 나는 내가 택한 배움의 길에 아쉬움 없는 보람을 느낀다. 내 환경이 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내 운명에 대한 불만 의식이 적었던 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뜻대로 앎을 찾아 배움의 길만을 택할 수 있게 해 준 내 환경을 고마워하고, 내 운명에 감사한다. 겉으로 보기에 나의 삶은 사치스러웠다고도 할 만큼 배움만을 위해 살아 왔고, 앎의 길만을 따라다녔지만, 나는 아직도 잘 배우지 못했고,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배운 것이 있다면 잘 알 수 없다는 사실뿐이며,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단편적인, 파편과 같은 것뿐이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아직도 나에게는 아물아물하다. 그러기에 나는 사물의 현상(現象)을 더욱 관찰하고, 남들로부터 더욱 배우고, 더욱 생각하고, 더욱 알고 싶은 의욕에 벅차 있을 뿐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이게 다 뭔가?', '어떻게 살아야 참다운가?'에 대한 대답이다. 이처럼 근본적이고 총괄적(總括的) 물음에 대한 대답을 내가 찾아 낼 수 없음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다. 아마도 확실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생각한 끝에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극히 단편적(斷片的)이며 극히 피상적(皮相的)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이나마 더 배우고, 생각해 보고, 더 알고 싶다. 나는 눈을 감는 날까지 더 배우고 더 알고자 노력할 것이다. 내가 새로운 것을 알았다고 믿게 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투명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철학적 저서를 통해서, 혹은 문학 작품을 통해서, 혹은 잡문(雜文)의 형식으로라도 표현하고 남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만일, 내 자신을 위한 지적, 정신적 추구(追求)의 결과가 혹시 남의 사고에 다소 나마 자극(刺戟)이 되고 사회에 티끌만큼이라도 공헌(貢獻)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기막히게 기적적인 요행(僥倖)으로, 나에게는 한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논두렁길에서 시작된 나의 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길고도 짧았다. 어느덧 내 삶의 오후가 왔음을 의식한다. 약간은 아쉽고 초조해진다. 갈 길은 더욱 아득해 보이는데, 근본적 문제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어렸을 때에 초연(超然)했던 종달새, 우아했던 방울새, 정이 두터웠던 개가 생각난다. 엄격한 승원(僧院)이나 깊은 절간의 고요 속에서 이런 짐승들을 생각하면서 더 자유롭게, 더 조용히, 또 생각하고 또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