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륭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우리 동네 구멍가게와 약국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고양이, 쥐약을 먹었대요 쥐가 아니라 쥐약을 먹었대요 우리 아빠 구두약 먼저 먹고 뚜벅뚜벅 발소리나 내었으면 야단이라도 쳤을 텐데……
구멍가게 빵을 훔쳐 먹던 놈은 쥐인데 억울한 누명 둘러쓰고 쫓겨 다니던 고양이, 집도 없이 떠돌아 많이 아팠나 보아요 약국에서 팔던 감기몸살약이거나 약삭빠른 쥐가 먹다 남긴 두통약인 줄 알았나 보아요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고양이, 구멍가게 꼬부랑 할머니랑 내가 헌 프라이팬에 담았어요 죽어서는 배고프지 말라고, 프라이팬을 비행접시처럼 타고 가라고 토닥토닥 이팝나무 밑에 묻어 주고 왔어요
김륭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문학동네, 2009.
이 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3연에 다 들어있다. 죽은 고양이가 더 이상 배고프지 않도록 프라이팬에 담아 묻어 주면서 프라이팬을 비행접시처럼 타고 가라고 빌어준다는 이야기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양이의 삶이 평탄치 않았으리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에도 1연과 2연에서 고양이가 어떻게 죽었는지(“쥐약을 먹었대요”)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 다니던,” “집도 없이 떠돌아”)를 설명해 준다.
1연과 2연이 꼭 있어야 했을까, 생각하며 여러 번 읽다 보니 화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다스럽고 꾸밈없는 말투 속에서 죽은 고양이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는 작은 일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물며 고양이가 죽었는데,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아이는 고양이가 생전에 어떤 설움을 겪었는지, 어쩌다 쥐약을 먹게 됐는지 마음이 쓰였다. 말을 할 수 없는 고양이를 대신해 그 불운했던 삶을 한풀이하듯 이야기해 준다. 덕분에 고양이는 덜 억울하고, 덜 서러웠을 것 같다.
힘들게 살다 죽은 고양이가 프라이팬 비행접시를 타고 광활한 우주로 떠나는 모습을 상상하면 죽음은 여행처럼 느껴진다. 죽음이 덜 슬프게 느껴진다.
기억되는 죽음은 덜 서럽고, 덜 슬프다.
45년 전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5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