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녹색 학부모회의 기쁨

by 리유

밝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담임 선생님이에요. 쌍둥이라 두 번 오셔야 하는 거 아시죠?’


학기 초 책가방에 놓여있던 녹색학부모회 참여 동의서는 제출하지 않았었다. 아니, 못했었다.

회사 일이 바빴고, 얼마 남지 않은 휴가는 친정엄마가 아이를 못 보는 날에만 아끼고 아껴 사용해야 했다.


사실은, 핑계다.

어쩌면,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 여겼는지도.


그런데, 전화가 온 것이다. 두둥.

그것도 두 번 연속 참석하라는 ‘통보’와 함께.




그렇게 12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영하 15도의 겨울 아침, 그날이 왔다.


기모 내복에 장갑, 핫팩까지 무장을 하고 나섰다.

학교 중앙현관으로 들어가 야광조끼와 안내봉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정된 장소로 출발.


후아. 정말 춥다. 속눈썹에 눈물이 방울방울 얼어붙었다. 귓불이 떨어져 나갈 듯하다.

다른 곳은 노인 봉사로 하고 돈을 드린다는데, 여기는 왜 엄마 아빠들이 하게 하는 거야.

너무 옛날 방식이야. 시대가 변했는데, 학교도 같이 바뀌어야지.

그나저나 깃발에는 왜 녹색 어머니회라고 적혀있는 거야. 이름만 학부모회로 바꾸면 뭐 해. 결국 엄마들이 대부분이고 여기 어머니회라고 떡 하니 적혀있는데.

어떻게 서야 하는 거야. 여기? 저기? 봉은 또 어떻게 잡는 거야. 늘어나진 않나. 에잇, 그냥 하자.


투덜투덜. 중얼중얼.


그렇게 속 시끄럽게 횡단보도 앞에 대충 자리 잡았다.



8시 30분. 본격적인 녹색 학부모회 활동 시작.

초등학교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그마한 어린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신호등과 봉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엇, 뭐야. 나 지금 웃고 있네. ‘


마스크 속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의 핫팩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와 신호등, 길을 건너는 아이들뿐인 이곳이 마치 예쁜 그림처럼 보인다.

색색깔의 패딩을 입은 모습은 파스텔들이 집 밖을 나와 신나는 소풍을 나온 듯하다.

무채색이었던 도로와 건물을 곳곳을 화사한 색으로 물들인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까르르 웃음소리가 얹어져 귓가를 맴돈다.



마스크 바깥으로 살짝 보이는 오동통한 볼은 발갛게 물들어 톡 터질 것 같다.

작은 몸에 큰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큰 언니 오빠와 함께 걷는 아이, 본인도 작으면서 더 작은 동생 손을 꼭 잡고 챙기는 아이,

엄마를 뒤로 하고 저 멀리 뛰어가는 아이, 친구와 장난치며 하하 호호 웃는 아이.

지금 막 일어난 모습으로 까치집 하나 머리에 얹고 터덜터덜 가는 아이.




그렇게 한참이나 그림을 감상하며 신호등에 맞춰 깃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이


‘엄마다!’ 소리와 함께, 따듯함에 뿌듯함까지 더해졌다.


내 아이들이 저 멀리서 엄마를 보고 생긋 웃으며 걸어온다.

매일 새벽 출근하기에 아침엔 눈도 못 맞추는데, 등굣길에 엄마가 서 있다니. 그것도 자기들이 다니는 학교 활동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한 놈은 달려와서 안아주고, 한 놈은 저 멀리서 부끄러워하며 손을 흔든다.

이 날 아이들은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를 시작했으리라.


이후 마음을 녹이는 순간들이 연속으로 다가왔다.


길을 다 건넌 작은 아이가 내 앞에 서더니 앳띈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

‘감사합니다’


저 멀리서 친구와 슈퍼파워를 쏘던 남자아이 둘이 내 옆에서 장난을 멈추더니

‘안녕하세요!’ 씩씩한 목소리로 90도로 인사하고 다시 장난을 시작한다.


조금 큰 아이도 슬쩍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이거 진짜 해야 해.

엄마, 아빠들 다 해봐야 해.

학부모회라고 부르니까 적혀있는 것쯤이야 괜찮아.

어차피 아빠들도 오잖아?

와 씨. 강추 강추.


2022년 마지막 주,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모든 순간들이 새로웠다. 따스했다.


부모라면 필수코스로 추천한다.



그래서,

다음날의 녹색 학부모회는.


남편에게 넘겼다.

뜨신 핫팩과 함께.



나는 해봤으니까.

너도 만끽해 봐.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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