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감상평
[리유클래식] 이름의 공간을 만들고 운영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ง •̀_•́)ง
리유클래식은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작업을 하고 클래스를 운영한다.
이 공간에서는 클래식 음악으로 주제별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작곡가 알아가기, 영화 속 클래식 음악, 성인 피아노 취미 래슨 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다. 혼자서 수업프로그램을 여러 개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모객도 해야 하고, 스케줄 정리도 해야 하고, 수업 자료도 준비해야 하고, 게스트를 맞이할 공간도 정리해야 하고 :)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을 하면서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고민을 하는 와중에 아쉽고 결과물에 대한 한계를 느꼈던 부분은 게스트의 참여에 대한 부재였다.
그들이 직접 시간을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보통 클래식 음악은 정말 알고 싶어서 어느 정도 교육의 목적이 강하다. 그들은 궁금증을 해결하고 하지만 무언가 눈에 보이게 남겨지는 결과물에 대한 부분이 항상 아쉬웠다. 그날의 음악을 내 마음속에 담아 가고, 감동을 하고, 내 플레이리스트에 한 두곡 추가되는 것이 최선이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기 참 어려운 장르이다. 다른 프로그램 후기를 볼 때마다 그 점이 가장 부러웠더란다.
해볼 수 있는 것은 감상평을 스스로 적어보는 시간이었다. [남의 집]이라는 플랫폼에서는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하고 와인 한잔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때 정말 다양한 감상평을 받아 볼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은 이러한 일들에 수줍어 잘 표현을 안 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나의 아주 편협한 선입견이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그리고 즐겁게 감상평을 써 내려갔다.
호스트인 나는 어느 정도 음악에 대한 가벼운 정보지식 전달을 해준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지면 그 정보에 매달려 그러한 방향으로 음악을 감상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시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음악을 듣고 단어나 형용사로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며, 혹은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특히 스케일이 큰 곡을 감상할 때면 특정 영화나 장면을 떠올리기도 하고, 악기 소리를 표현해내기도 한다.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던 친구들은 더욱 디테일한 표현까지도 해낸다. 그들의 감상평을 보면 꽤나 재미있다.ᵔᴥᵔ
함께 감상하며 이야기를 공유한 음악과 그들의 감상평을 나눠보려고 한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러시아(미국망명)
라흐마니노프는 정말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 중 하나이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세계적으로도 워낙 사랑받지만 특히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클래식> 순위에 항상 5위 안에 드는 곡으로 유명하다. 클래식 감상 클래스를 할 때마다 오는 게스트 분들에게 혹시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있냐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정말 피아니스트의 조성진의 역할이 98%라고 생각한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2번 협주곡은 본인도 너무 사랑하는 음악이다. 처음 도입부의 비장한 화성의 전개부터 압도되고 중반부로 갈수록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되고 풍부한 오케스트라 선율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준다. 클라이맥스 부분은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고 후반부의 차분하게 반복되는 선율은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다. 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그야말로 “들을 거리”가 많은 음악이다. 화려하지 않은 멜로디가 그 깊이감을 더한다. 이 곡의 처음 들려지는 화음의 전개는 매우 여리게 시작하며 점점 더 거대하게 앞으로 다가온다. 각 음정의 거리가 있어, 손이 작은 나는 결코 한 번에 화음을 누를 수 없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이 음반을 들었을 때 한 번에 화음을 동시에 누르는 피아니스트가 그리 많지는 않다.
라흐마니노프는 마르팡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었다. 손과 키가 일반인보다 훨씬 거대해지는 병명이었는데, 그런 그의 손가락은 한 옥타브를 벗어나 그다음 ‘라’ 음까지 닿는다고 전해진다.
8개의 건반이 한 옥타브로 불리는데, 8개의 음에 5개의 음까지 손이 닿는 것이다. 그러면 이 음악은 손이 큰 사람만 칠 수 있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다. 쉽게 “긁는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건반을 한 번에 짚어내는 게 아니라,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듯 아래 음부터 차례로 윗 음까지 빠르게 짚어내는 터치를 이야기한다.
*아르페지오 : 화음의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
하지만 2번 협주곡의 처음 묘미는 한 번에 그 화음을 울리게 해주는 것! 멀리서부터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것처럼 묘사를 해주기 위해서는 동시에, 한 번에 음악 다 눌러 소리를 내줘야 제 맛이다! 그래서 본인은 일단 2번 협주곡을 들을 때에는 첫 8마디를 동시에 울려주는 음반 위주로 찾는다. 서서히 다가오는 듯한 첫 도입부부터 나를 설레게 해 준다.
악보에서 보이는 피아노 파트 부분을 보면 텅텅 비어 있는 듯한 음들 속에 울림이 지속되며 생동감을 만들어준다. 여러 개의 동그라미가 한 줄로 길게 쌓여 있는데, 저렇게 위로 쌓여 있는 동그라미의 제각각 위치에서 한 번에 눌러줘야 원하는 색의 화음이 울려 퍼진다.
매우 여린 부분을 설명할 때에는 “여리다, 작다”로 표현하지 않는다. 공간적인 부분으로 ”멀리서 “라고 이야기하거나, “귓속말”이라고 표현하며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린 부분은 오히려 손에 근육이 탄탄하게 붙어 있어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다. 귓속말은 비밀스럽기에 조심스러우면서도 매우 정확한 전달을 필요로 한다. PP 피아니시모 정도의 여리게는 그런 느낌, 혹은 역할을 한다. 그 이후 cresc. 크레셴도가 입체감을 표현해 준다. 점점 거대해지는, 내 앞에 다가오는, 그러한 크기와 움직임 등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들의 라흐마니노프 감상평
모임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은 게스트 분들의 감상평도 꽤나 재미있다. 너무 흥미로운 부분은 박찬욱감독의 영화가 생각난다는 감상평은 두 분 이상이었고, ”레미제라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같은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스토리가 느껴지는 서사적인 음악에는 이러한 감상평이 많다. 예전에 쇼팽 발라드 1번을 들을 때도 영화에 대한 언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외에는 몽환적, 극적인 모험,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서늘함 등의 표현들이 있었고, 깊이감, 공간감, 혁명, 등의 감상평도 있었다. 재밌었던 표현은 “보드카 냄새”였는데, 아마 러시아의 색이 드러났다고 여겼을지 모르겠다.
기승전결이 느껴진다는 부분의 감상평이 좋았다.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시대의 마지막 작곡가>라는 타이틀도 붙여져 있는데, 이 말은 ”발전형식“과 ”선율의 존재“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이 ”스토리“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러한 부분이 탁월한 작곡가가 라흐마니노프라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은 깊이감이 확실히 느껴진다.
언제 들어도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안겨주는 그의 음악을 끝까지 감상해 보고 나름의 감상평을 한 번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