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중독자의 변명

성공은 못 했지만 버티기는 잘합니다.

by 정이든

어릴 때 학교 도서관 구석에서 발견한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정말 독하게 공부를 하는 소위 모범생이 된 것이다. 그 이후 ‘프랭클린 자서전’과 유사 자기계발서를 거치며 완성된 인생관 덕분에 지금은 성공가도를 달릴 줄 알았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래도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자기계발서에 쓰인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된다, 와 같은 인생의 원칙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막상 세상을 살아보니 삶은 단 한마디 말로 완결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N차 함수더라.


그래도 여전히 자기계발서는 읽는 맛이 있다.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들은 정독하지는 않더라도 매대에 서서 훑어보기라도 하는 편인데, 이 책들은 '인생계획 세우기'가 취미인 나에게 마치 신내림을 주는 듯한 영감을 줄 때가 있다.


특히 불변의 법칙, 인생의 10대 원칙, 삶을 바꾸는 법과 같은 제목인 부제가 들어간 책은 ‘대체 뭔 말을 하는데 한번 들어나 보자’ 하고 꼭 한번 읽어본다. 궁극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긴 한지만 그래도 각자의 위치에서 그럴듯한 논변을 해 준다.


그러면 나는 패키지여행에서 옥장판을 구매하는 관광객처럼 홀린 채 책을 구매하거나 문구들을 메모한다. 마치 삶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선 듯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실은 착각이다. 뭔가 바뀔 거라는 착각.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읽어서 이제는 성공했냐고 묻는다면 뜨끔하긴 하나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 본다. 그래도 매 순간에 최선을 다 해 왔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게다가 그럴듯한 문장들을 지어내는 재주가 생겼다. 이 문장들을 요리조리 조합하다 보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고민을 해소하는데 실마리가 생기기도 한다. 나도 언젠가 옥장판을 팔아봐야겠다. 이참에 생각나는 대로 써 봐야지.



정이든의 자기계발서 : 삶을 관통하는 불변의 법칙 (가칭)


일은 어렵다. 사람은 더 어렵다. 일은 뭐라도 하면 되는데 사람은 뭐라도 한다고 꼭 잘 되지 않는다.

무한정 계속되는 평온함이란 없다. 언젠가는 출렁일 날이 온다.

천천히 하다 보면 빨리 된다. 멀리 보되 멀리만 보지 말고 눈앞을 봐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비가역적이라서, 선택하지 않은 시간을 다시 겪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선택한 것에서 최선을 다할 뿐



사람, 멘탈, 노력, 선택은 항상 삶의 고민을 키우는 키워드다. 더 많은 자기계발 문장들을 뿜어낼 수 있지만 정독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몇 가지만 써 봤다.


그런데 쓰고 보니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다. 나도 항상 사람에 치이고 멘탈도 깨지는데 말이다. 조급증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부왕 급가속하다가 티맵 운전점수가 깎이기도 한다. 선택은 지지리도 못해서 매번 전전긍긍하는,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도 긍정회로를 굴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런 마음속 문장들이라도 없었다면 아마 여기까지도 못 왔을 것이다. 사람에 치이고 멘탈이 깨지고 섣부르고 불안할 때, 이 문장들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아, 그렇네. 결국 자기계발서는 출세와 성공을 하기 위한 바이블로써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삶의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한 기본 매뉴얼으로의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이걸 이제 깨닫다니.


그럼 그런 작가의도를 담아 옥장판을 조금 수정해 본다.




정이든의 자기계발서 : 성공은 못했지만 버티기는 잘합니다 (가칭) 삶을 관통하는 불변의 법칙


일은 어렵다. 사람은 더 어렵다. 일은 뭐라도 하면 되는데 사람은 뭐라도 한다고 꼭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일이나 하자. 사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매번 바뀌기 마련이다.

상대방에게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무한정 계속되는 평온함이란 없다. 언젠가는 출렁일 날이 온다.

따라서 평소에 빨리 고요해지는 법을 미리 익혀둬야 한다.

시간은 어떻게든 간다. 기다리고 설레던 순간도 언젠가 지나가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언젠가 지나간다. 그때마다 좌초하지 않도록,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불안하거나 다음 출렁임에 의지하지 않도록 우리는 인생의 기본값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유지해야 한다.


천천히 하다 보면 빨리 된다. 멀리 보되 멀리만 보지 말고 눈앞을 봐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뿐

너무 먼 미래와 큰 과제에 압도당하기보다는 작은 것부터 완성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해놓고 성공했다고 나를 세뇌시키는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좀 천천히 가면 어때? 놓칠 뻔한 주변 풍경도 보고, 휘파람도 불면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비가역적이라서, 선택하지 않은 시간을 다시 겪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선택한 것에서 최선을 다할 뿐

시간은 비가역적이니까 신중하긴 해야 한다. 저질러놓고 아씨 또 저질렀네 어쩔 수 없지 하는 태도는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충분히 고민하고, 시뮬레이션해봐야 한다. 시뮬레이션이라 하면 그저 대략적으로 스케치해 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순간에 직접 존재함을 생각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사를 간다면, 한 번쯤 이사 간 집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일상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절차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가 그저 좋은 점에만 꽂혀 있지는 않았는지 하는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과정으로든 이미 선택이 끝난 것에 대해서는,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계속 비교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서 더 잘하기 위한 방법에 집중해 나갈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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