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오고 북적임과 어수선함이 새로이 거리를 채운다. 봄날 삼청동길에 사람들과 산책을 나왔다가, 거리 곳곳에서 당신을 떠올린다. 새로이 시작되는 다양한 만남 속, 수많은 우연이 모여 결국 우리가 만났던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한다.
우리 사이 멀디먼 거리를 채우던 어색함과 머뭇거림이, 짧게 오간 몇 마디 덕분에 새로움으로 바뀌었다. 서로를 바라보던 시선은 시시각각 바뀌어 왔으나 결국 믿음과 안락함을 꽃피웠다. 한 사람을 새로이 알게 된다는 것은 어찌나 경외 로운 일이었는지.
당신이 살아온 방식, 삶을 채워온 생각의 편린, 향해왔던 방향성 같은 것들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누군가를 오롯이 알 수 있다 자신하는 것은 무척 오만하고 자의적의다. 우리가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한들, 그것은 본질적으로 미지에 해당하는 영역일테다.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나의 깊은 복잡함과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당신의 행위는, 내게 부끄럽고 동시에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나도 기꺼이 당신이 살아온 삶의 냄새를 맡아보고자 한다. 그것은 흙냄새로 시작하여 고소한 커피향을 거쳐 어느새 오늘날의 포근한 봄 향기에 도달한다. 한 사람을 탐구하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반갑고 동시에 나를 돌이키게 한다.
내가 쉬이 떨치지 못하는 과거의 일상들.
이제는 흑백사진처럼 고루하고 차분하여 더 이상 생경하지 않으나, 그리하여 나는 놓지 못하고 한편 앨범에 꽂아둔 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버리고 채우는 것, 지우고 새로 그리는 것, 잊고 다시 경험하는 것을 나는 두려워했나 보다.
꽃이 피고 지고, 봄이 지나 여름이 오듯이, 세상은 흘러가고 당연한 듯 만남과 이별이 반복된다. 매일매일 바뀌는 창밖의 풍경처럼 나의 마음은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우리의 관계도 잔잔한 뉴에이지 음악에서 트렌디한 팝으로 바뀌곤 한다. 순간의감정에 매료되지 말고, 옷장을 정리하듯 새로운 옷과 헌 옷을 구분하고, 버릴 옷은 과감히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용기내어 해본다.
관계의 반복 속에서,나로 인해 당신이, 당신으로 인해 내가 행복한 날이자주 있다면 좋겠다. 서로의 부족함이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계기가 되기를.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여 당신과 내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