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표류 중이다

by 정이든

올여름 열대야가 34일이라는 유래 없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어제는 비가 오다가 오지 않다가 선선한 듯하다가 다시 또 덥기도 하였다.


더위는 몸과 마음을 마비시킨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나는 별다른 의욕이 없다. 의욕이 없어서 의욕이 없는 채 의욕을 충전하고 있다.

한동안 글을 안 쓰다가 이런 상태에서 다시 글을 쓰려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텅 비어 버린 것 같다. 듬성듬성 떠오르는 생각들은 억지로 잡으려 하면 이내 휘발되어 버린다. 나는 천성이 작가는 아닌가 보다.


유명한 작가들은 글을 쓸 때 항상 즐거울까? 에이, 딱히 그렇지는 않겠지? 그래도 최소한 지금의 나처럼 망망대해에 나무통 하나를 부여잡은 채 조난당한 느낌은 아닐 테다.


하지만 이 망망대해에 조난당한 느낌이 나쁘기만 하냐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가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에, 그래서 그냥 멈춰 있다는 사실은 인과관계를 나 자신에게 해명할 수 있기에 조금 불행하면서도 많이 안심스럽다.


사진: Unsplash의 Ivan Bandura


우리는 가야만 할 곳을 아는 것처럼 매일 재촉하며 하루를 달린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실상은 그저 표류 중이거나, 이 길이 맞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거나, 그냥 운에 맡겨 보거나, 일 것이다.


어린 시절 한 때 글을 열심히 써보려다 미뤄둔 적이 있다.

취업과 연애와 놀이에 바빴을 때다.

놀랍게도 그 미뤄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때 가끔 취기에 끼적인 서툰 글들을 다시 읽으며, 내가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투박하다 여겼다. 그래서 나중에는 나이가 들어 완숙하여 이제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니다. 그 시절 나는 이미 지금보다 섬세했고, 영민했다. 커피 한잔에, 또는 날씨 변화나 네 아픔 같은 것들에 절절하고 격렬하게 반응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무엇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나 자신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글 쓰는 것을, 또는 돌인지 황금일지 모를 가슴 두근거리는 무언가를 저 아래에 숨겨 두었을 뿐이다.



맞다. 나는 사실 그저 표류 중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스스로를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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