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아티스트 Jan 02. 2019

나를 망쳐버리고 싶은 분노

프리다칼로의 자화상을 바라보며

얼마 전 출장길에 뉴욕 모마 미술관에 들렀다. 5년 전 처음 모마에 방문했을 당시 처음 마주쳤던 프라다 칼로의 자화상은 오래 마주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화가 많이 난 느낌이었다. 찐한 눈썹이 인상적인 그녀의 자화상에서 그녀는 아빠 옷이라도 입은 양 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째려보는 듯 옆으로 흘리는 눈빛은 공허한 듯 흐트려져 있으면서도 단호함을 품고 있는 듯했다. 의자에 앉아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었다. 주위에 엄청난 머리카락이 흩으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마구 자른 직후 인 듯하다.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남자인 것 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갑자기 박지윤의 '난 남자야'란 노래가 스치듯 떠올랐다. 잠시 마주하다가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다른 그림을 보러 갔었다. 



이번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프라다 칼로의 삶에 대한 책을 여러번 접하고 난 후였다. 아 역시나 내 예감이 맞았었다. 당시 가수 박지윤이 남자 까만 양복과 중절모를 쓰고 '난 남자야'를 불렀던 그 느낌이 이 그림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가사를 보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 앞으로 또 다시 남자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남자처럼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난 남자야 이제 난 남자야 아무런 기대도 바람도 없이 즐길꺼야
너희처럼 그럴꺼야 나혼자 상처받는 일 더 이상은 없을꺼야
난 남자야 쓰레기 같은 남자야 내가 하는 말 모두 그때뿐야 잊는거야
기억은 없는거야 서로 즐거우면 된거야 쓸데없는 약속이나 감정따윈 없는 거야
-박지윤 난 남자야 가사 中 


이 얼마나 분노감이 쩌는 가사인가. 프라다 칼로의 이야기를 알고 쓴건가 싶었다. 사실 그녀의 삶은 이 가사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어릴적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18살에 교통사고로 온 몸이 망가졌다. 9개월을 전신 깁스를 하고 생에 걸쳐 30번이 넘는 수술을 하며 살았다. 죽음 앞에서 선택한 뒤늦게 선택한 그림으로 그녀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지만 하필이면 여성 편력이 심한 자신보다 21살이나 많은 이혼남이었다. 결혼 후에도 계속적으로 바람을 피웠고 심지어 그녀의 여동생과 불륜을 지른다. 아픈 몸으로 아이를 원했던 프라다 칼로는 3번이나 유산을 하고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지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망칠 수 없는 분노는 자신에게로 향했다고 느껴졌다. 얼마나 많이 질투하고 화가 났었을까. 얼마나 공허하고 고독했을까.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함부로 머리를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너무 안타깝게도 타인으로 인해 내 삶이 무너져버린것에 대해서 오히려 나를 자책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그 당시에 내가 이 그림을 제대로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은 나도 이별을 겪어내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바람을 핀 건 아니었지만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사랑이란 이름에는 내 마음의 집착이 있었다. 끝내 내려놓기 힘든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 그게 좌절되었을 때의 내 마음의 요동은 상당했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내 마음조차 놓을 수 없을 때 나에 대한 분노가 일어났다. 


보세요!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면, 그건 당신의 머리카락 때문이죠. 지금 당신은 대머리가 되었어요. 나는 더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어머니, 나는 죽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요, 그건 바로 그림이죠.
-짧은 머리의 자화상 글귀


그녀가 대단한 건 건강하지 못한 몸과 마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 분노 그 모든 감정을 그림을 통해서 마주했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이 너무 싫고 초라해보여서 거울조차 보기 싫은 그런 날들, 그럴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해야할 일이 있다면 너 자신을 사랑해야되라는 긍정의 말따위가 아니라 정말 싫은 나를 마주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일단은 살아야 할 다른 이유를 찾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남이 아니라 뭐가 되었든 스스로 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결국 분노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다. 나도 가끔 정말 나를 마주하기 싫은 날에는 가만히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려보곤 한다. 그렇게 계속 들여다보다보면 나까지 나를 미워하기에는 가엽게 여겨지면서 삶의 다시 의지가 생기곤 할 때가 있다. 그리고 확실한 건 고통은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약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힘들고 분한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말고 맘껏 울고 소리치고 다양한 방법으로 마주하고 표현하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