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리트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네덜란드 교환학생 시절로 푸릇푸릇했던 20대 초반이었다. 그 당시 나의 관심은 책에 나온 유명한 그림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러 다니는 것이었다. 옆 동네 벨기에도 대략 5번정도 방문했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마주하였다. 초현실주의에 대해서 잘 몰랐고 막상 봐도 왜 이걸 그린거지 싶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낯설었다. 익숙한 사물이 전혀 맥락을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인 동시에 낮인 그림들, 파란 하늘인지 사람인지 식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의 그림들은 매우 세밀한 묘사로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니깐 뭘 그린지 정확히 알겠는데 도대체 뭘 그린거지 싶은거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정의병에 걸려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이 그림을 설명하고 싶고 정의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올라왔기때문이다. 완전 추상그림을 볼 때는 형태를 알 수 없으니깐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건 뭐 너무 잘 그렸기에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불편함이 느껴졌다. 왜 나는 작가의 의도를 굳이 정답처럼 찾으려 하는거지?
지나고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제대로 설명해봐'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표현에 서툰 분들이었고 설명에 더 익숙하셨다.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학교 다닐때도 그랬다. 독후감이랄까 그런 것들도 어느 정도의 답이 있었다. 완전히 생뚱맞은 것을 쓰거나 이야기했을 때는 다시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을 이야기했고 사건을 서술하는 시험을 풀었다. 중요하고 암기할 것들이 많았고 그래서 정답이 있는편이 쉽게 받아들여 졌던거다. 반면 마그리트의 그림엔 의문이 많았다. 전혀 관련없는 사물들과 장면을 연결시키며 나같은 설명충들에게 그만 해석해라고 한 방 먹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의 엉뚱하고 상상력 넘치는 고집스런 삶과 그림이 좋다. 그 중에 가장 보고 싶은 그림은 '골콩드'라는 그림이다. 개인적으로 'it's raining men'이라는 노래를 들을때마다 이 그림이 생각난다. 골콩드라는 말은 겨울비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깐 중절모를 쓴 남자들이 말 그대로 비처럼 내리고 있는 그림이다. 하늘에 저런 남자들이 가득 비처럼 내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처음 본 순간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좀 더 어릴때라면 아마 나도 '할렐루야' 라고 외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사람이 많은 북적이는 장소를 선호했었다. 그러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기 시작한 직장생활에 익숙해지면서부터는 의도적으로 사람 많은 곳을 피한다.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가 불편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데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인지 사람 비가 예전처럼 멋있게 느껴진다거나 맞고 싶지도 않다. 시간이 지나니 그림을 보는 나의 시선도 이렇게 달라진다. 사실 딱히 작가의 의도나 정답따위가 내 인생에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내가 알아가야 할 것은 작가같은 나만의 생각이었던 셈이다.
생각한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매력적인 것은 아마 이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림에도 인생에도 정답따윈 없다. 그저 나만의 답안지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