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결코 오지 않는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 동생과 함께 쓰던 방 한쪽에다가 나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보겠다고 이불을 가지고 텐트같이 양쪽 끝을 의자나 책장 지지대에 걸어 조그마한 천막을 만들었다. 어린나이에도 나만의 공간이란 것이 좋았던지 잠시였지만 그 속에 머무는 시간의 포근함이 오랫동안 떠오른다.
자라면서 내 방이 생겼지만 내 취향에 맞게 꾸며진 곳이기보다는 부모님의 설계대로 구성된 방이었다. 가구나 디자인도 당연히 부모님께서 선택한 것이며 잔소리를 포함해서 어느 정도의 간섭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언젠가 독립하면 내 맘대로, 내 취향으로 가득 찬 공간을 가져야지 살짝 다짐만 해봤다가 말았다. 비싼 서울 물가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작은 방의 자유마저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잃고 있다. 집보다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길기에. 거대한 회사라는 공간속에 있는 나는 자꾸만 작아진다. 내 마음대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에 반해 따라야 할 규칙은 너무나 많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어디로 멀리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진실은 나나 아빠나 모두가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시선의 자유’를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아빠만 그토록 열심히 보는 줄 알았던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TV순위 10위 안에 든다고 한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연인을 흠모하고 있을 줄이야! 꽤 놀라웠다. 퇴직하고 거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우리 아빠도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었다.
책에는 ‘자신만의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에서는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 또한 취향과 관심으로 가득 찬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도 생기도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긴다고 말한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독일어 단어인 ‘슈필라움’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자 심리적 여유까지를 포함하는 단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슈필라움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다는 것은 그러한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하긴 나 역시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고 생각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금 나에겐 잠자고 쉬는 바쁜 공간 이상으로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공간! 그런 구체적인 공간을 설계하고 ‘미역창고’ 못지않은 정말 멋진 이름을 지어봐야겠다는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다짐을 해본다.
지금까지는 경제적인 핑계만 댔었는데 그 이유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자연인들에게 배운다. 그들과 작가님은 완벽하게 자유롭기 위해서 외로움을 선택했다. 나는 멀리 떠나지는 못하기에 지금 있는 공간을 재창조하기 위해 우선은 부지런함부터 선택해야 할 듯싶다. 주섬주섬 쌓여있는 옷가지 때문에 괜히 공간에게 오는 만족감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기에.
대신 앞으로 아무 경제적 효용을 고려하는 대신 그냥 사고 싶은 것을 사서 장식해 놓던 나의 소비에 대한 죄책감은 살짝 내려놓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니까 말이다. 다만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과감히 뺄 줄 아는 용기는 좀 더 필요할듯 싶다.
불안 대신 충만함이 넘치는 삶을 위해 주체적인 나만의 공간 창조와 약간의 용기라는 구체적인 노력에 더 박차를 내봐야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자유로움 가득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