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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Dec 05. 2022

놀이공원 같이 가는 남자

글쎄, 너 누군데

교복 대여하는 거 고민이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놀이공원에 가게 되면 교복을 ‘대여’한다는 개념을 갖고 대화할 정도로 우리가 졸업한 시간은 많이 흘렀다. A는 이번에 놀이공원 이벤트에 당첨이 됐다며 교복을 입을 수 있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았다. 어쨌든 간에 대여를 하게 되면 사이즈가 안 맞을까봐, 자신의 살 찐 몸 때문에 예쁘지 않을까봐 고민하는 거였다. 항상 그랬지만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사이 나 대신 같은 방의 다른 친구들이 대신 대답해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 A를 포함한 방의 3명은 다들 근처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마침 B, C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A가 놀러가게 되어서 간 김에 만나자는 얘기도 진행되고 있었다. 부럽다. 화장실에서 잠깐 숨을 돌리는 틈에 튀어나온 한 마디였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면 내가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회사 때문에 곤란했다. 다 같이 얼굴 보기가 점차 더 힘들어져가고 있었다. 그때 B는 자신이 남자친구와 교복대여를 해 놀이공원에서 찍었던 사진 몇 장을 참고하라며 방에 올려주었다. 쉬는 시간 잠깐에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을 구경했다.

사진 속의 친구는 너무나도 예뻤다. 자신이 아는 자신의 가장 장점을 부각하며 예쁜 포즈와 자세를 취했다. SNS에서 남들 다 하는 흔한 샷이었지만 어쨌든 예쁘니까 너도나도 찍는 샷이었다. 다리도 길고 날씬하면서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아우라를 풍기는 내 친구가 예전부터 우아해 보였다. 친구는 자신과 어울리는 오래된 남자친구와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머리띠까지 하고 한껏 꾸민 모습이 둘 다 귀여웠다. 얼마 전에 서로에 대한 고민을 들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보니 또 사이가 좋아 보인다. 당장에 친구 옆에 괜찮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도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항상 다행이고 고맙다. 비록 C는 당장에 누군가가 옆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 사람은 많은 것 같았고, 잘 지내는 듯 했다. 그 친구는 한때 사랑을 해서 너무 아파했다. 곤란한 상황들도 오곤 했지만 잘 견뎠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 힘들었지만 잘 견뎠다. 그렇게 내 친구들은 다들 누군가와 사랑을 겪고 지금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사랑 안에서 아프기도 하고 사랑을 걱정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게 고민이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단 한번도 그러질 않았다.

예전의 나는 너무 차갑고 얄궂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감정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퉁명스러운 우리 가족을 쏙 빼닮은 거라 생각했다. 그치만 그런게 아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많은 걸 겪고 깨달았을 때는 나는 누구보다도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우리 가족 또한 사랑이 많았다. 단지 그 방식이 잘못되었었거나 나와 맞지 않았기에 어린 나는 잘못 받아들였다. 그것이 아직까지도 나를 이루고 있지만 괜찮았다. 이제 그 정도쯤이야 뭐, 였다. 사람들은 그런 자라오면서의 자신에게 있는 부족함들을 다른 사랑에서 메꾸기도 했다. 나도 친구들에게 한없이 그랬다. 그렇지만 이성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궁금했다. 이성을 사랑하는 나는 어떻게 되어버릴까하고. 좋아하는 이성에게 플러팅을 한다, 관심을 표현하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너무 어색하고 이상한 개념이었다. 이성과 사랑하는 거라면 무조건적인 스킨십이 있어야 한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애정표현이 많은 주변의 가정들은 아빠가 딸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서슴없이 스킨십을 한다. 아빠와 그럴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말도 되지 않았다. 아빠랑 사이가 안좋은 게 아니다. 우스갯소리도 주고받는 사이인데, 왜인지 진지하고 애틋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게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이성에게 애정표현을 한다는 게 많이 겁이 난다. 아빠 핑계를 대는 것 같지만 어찌보면 태어나서 처음 보게 되면서 가장 가까운 이성이란 개념은 아빠가 아니였을까. 아빠를 보며 ‘남자’라는 존재를 알았다. 아빠에게서 나는 크나큰 애정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 이유에서인지 나는 이성과는 강한 스킨십이 있어야만 애정이 확인된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느낌이 다가온다. 그래야만 사랑이라고 표현될 거 같았다. 끝없는 표현 끝에야 사랑이라고 인지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감정표현을 잘하고 다정한 사람이 이상형이었다. 때로는 나 자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가만 보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들은 대부분 내가 보는 동경심에서 우러나왔다. 어떤 면에서든 완벽해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똑바른 이미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줄곧 내가 가지려고 노력하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눈이 높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인기 많은 대단한 선배를 처음 짝사랑해보기도 했었다. 그 선배를 따라 노력하기도 했다. 지금은 완벽하지 않아도 단지 내가 동경하는 기준에서 앞서 나가 있다거나, 어리숙하면서도 성숙한 면이 돋보이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런 사람에게 기대고 싶었고, 어울리지도 않는 어리광을 마음껏 부려보고도 싶었고, 그러면서 그 사람에게서 드문 어리숙한 면을 내가 챙겨주고 싶었다. 사실 그런 사람은 드문 것 같다가도, 은근히 많다.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다들 서로를 마주치고 감정을 느껴 만나는데, 대체 왜 나는 누구 하나 제대로 만나볼 수도 없는 건가 싶었다. 언젠가 인연이 생기겠지, 원래 때가 되면 나타나는 거야, 라는 말이 맞다 해도 그때를 기다리는 것도 이젠 지치고, 그때를 만들기 위해 나 스스로 기대하고 나서고 하는 짓도 지쳤다. 나 이제 정말 여유가 생겼는데,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하는데, 얼마나 더 완벽해져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걸까. 실은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는 부분인데, 대체 인연이란 게 뭔지, 그 앞으로 생길 인연이 누구이기에 나는 이렇게도 목을 매는 건지 가끔은 나 자신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마음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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