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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Nov 23. 2022

[영화]순전히 나만 보기 위한 떫평:<굿 윌 헌팅>

떫평


천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이 세상이 얼마나 지겹고도 재미없게 느껴질까, 하고 생각했다. 반면 초능력을 갖게 되는 것과 입장을 동일시 해보자. 순간이동으로 인해 걷는 재미가 없을 것이고, 염력을 통해 물건을 다스리고 하늘에 뜰 수 있다면 비행기를 타서 하늘을 바라보는 설레임과 고층 건물에 처음으로 올라가 뷰를 감상하는 그런 감성을 좀처럼 느낄 수가 없을 지도 모른다. 결국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천재 또한 말이다. 이 또한 판타지 같겠지만 세상에 그러한 사례는 존재한다. 작품에서도 나왔듯이, 교수가 푼 문제를 보고 어떠한 공식을 썼구나, 라고 말하지만 윌은 심드렁하게 공식 이름은 몰라요, 그냥 쓴 거예요. 라고 무심히 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열심히 풀이하고, 노력하는 노고에서 나오는 열정, 그 재미를 차마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세상이 다 뻔한 것투성인데 무엇이 매력 있게 느껴지겠는가. 그럼에도 결국 그들도 사람으로서 ‘감정’이 존재하며, 사랑에 빠지고 이별에 아파할 줄 안다. 그들은 이론적인 ‘심리’에 대해 꿰뚫고 있을 지라도 자기 자신만의 감정은 조절할 수가 없다. 인간의 무의식이라는 심해는 그 누구도 함부로 꺼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윌이라는 인물을 영화 초반에 볼 때는 사실 부러웠다. 치고 박고 싸우든 간에, 저런 끈끈하고 잘 맞는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으며 이것저것 다 하며 자유로운 인생. 물론 분명 무얼 할지도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가끔은 저런 청춘다운 모습이 나는 그립다. 자신의 명석한 두뇌로 사람들에게 한 번을 져볼 줄 모르고, 정신과 의사들도 거뜬히 이겨내는 그의 실력을 갖고만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라는 상상. 하지만 천재들도 결국엔 인간이며, 그들 모두가 흠이 있다. 상처? 당연히 감정이라는 건 천재도 좌지우지 못하는 부분이며, 어쩌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다. 어쩌면 너무도 똑똑해서 그 사실 자체를 깔끔히 외면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런 윌의 천재성이 드러나면서 교수들을 만나고, 그 교수들 또한 자신의 내적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면서 한 걸음씩 동시에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일상이 흘러가듯 지켜보는데, 이 영화가 그렇게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작품인 거다.

윌의 전형적인 일상 소개부터 연출은 그들의 악독한 표정에 집중한다. 패거리들과 싸움을 할 때, 주먹을 날리는 장면만 슬로우 모션이 되고, 도망가는 등 멀리서 지켜보는 관점으로는 그냥 개싸움으로 표현이 된다. 객관적인 제 3자의 입장으로 볼 때는 하찮고 할 일 없는 깡패들에 다름없지만, 본인의 싸움 속에선 감정이 들끓고 있는 걸 강조하는 건가 싶은 연출이었다. 윌은 그렇게 겉으로 보면 그저 한심한 깡패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여는 순간 모두는 이 천재 앞에서 경직 되어버린다. 이런 천재가 사랑에 빠지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순간이었다. 작품에서 그렇게 표현된 점이 가장 좋았다. 뭔가 굳이 휘황찬란하게, 엄청난 상대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그런 루트가 아닌, 우연히 호기심으로 하버드 근처의 술집에 갔다가 서로 친해진 남녀 간의 호감을 시작으로 풋풋한 데이트, 그를 통한 사랑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선이 보기에도,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도 편안했다. 인상적으로 남는 장면은 꽤 유명한 명장면인, 숀이 공원 호수 앞에 앉아 윌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그를 간파하고 설득하는 장면이다. 처음 대사를 칠 때는 계속해서 숀만 카메라 화면에 가득 차 있는데, 어느 순간 점점 윌이 화면에 천천히 들어오다 그 다음으론 윌이 화면을 독차지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전개가 윌이 숀의 얘기에 점점 귀와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부분을 그렇게 연출한 것만 같았다.

또 다른 명장면은 10번을 넘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숀이 외쳐주는 장면. 그 따뜻한 말을 수년간 윌은 얼마나 기다려왔던 걸까. 숀은 윌의 반항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수용하면서 그를 알아보고 받아들인다. 숀은 타고난 천재라 두려울 것이 없는 윌에게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준다. 이 뜻과, 이 뜻을 가진 이 작품이 작금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작품이 아닐까? 청년실업이 가장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하고자 하던 걸 수년간 해오면서도 멈춰 서서 이 길이 맞는 건지 수없이 또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고, 좌절하고, 잡념에 빠지고, 자아를 잃는다. 삶의 질이 떨어지고만 있는 이 사회의 미래가 될 청년들이 방황하고 있는 와중, 나는 그들이 어떤 길을 자신의 뜻대로 가지 못하더라도, 눈앞에 당장에 주어진 삶에 대한 의미는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 뜻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길이 되지 않을까. 20살 때 처음으로 보았던 이 영화를, 지금 한창 이도저도 못하고 두려움에 휩싸여있는 상태에서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내가 잊고 있던 (초심을 갖고 있던 시절의) 길을 발견한 듯했다. 이번 작품만은 ‘영화’라는 작품을 분석하고 감상하기 위해서, 과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정말 이 작품 자체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감상하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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