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1. 태백산에는 꽃사슴이 있었다

by 푸르름


평소에는 여행지 선택에 할머니 눈치 보느라 별말씀을 안 하시던 어머니께서 이번에는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태백산에 꼭 가자고 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 꿈에 자꾸 보인다고 하시더니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그곳을 꼭 가보고 싶으셨나 보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강원도에서 살았다.


태백산은 얼음축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엄마의 추억처럼, 한 여름에도 시원하고 아름다운 들꽃들이 알프스처럼 피워 있다고 한다. 이러한 소식을 접해 보지 않은 나는 남해바다를 가보고 싶은 욕심을 참고 여행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내가 바다에서 산으로 마음을 바꾼 것은 외할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자꾸 까먹고 같은 얘기 반복하시며, 이제는 세월을 눈에 보이게 먹어가는 어머니가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시골의 때 묻지 않은 정서를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으로 먼저 정선을 들렸다.


어머니는 익어가는 옥수수를 봐도 좋아라 하시고 산골의 폐광으로 난 레일바이크를 타시면서, 그 작은 산과 개울과 들판에 땀을 흘리면서도 아름답다고 환성을 지르셨다. 잠은 태백산 자락에 있는 민가에서 잤는데 그 태백산에서 내려오는 찬기가 밤에 불을 때야만 사그라질 정도였다.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았던 그 밤하늘의 별들. 흔히 우리가 쏟아질 것 같다는 표현을 쓰는데 별이 사라진 게 아니고 도시에서는 그 수많은 별들이 안보였다는 것을 실감하니 아주 먼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이었다.


말로만 듣던 꽃사슴이 산다는 태백산을 다음날 아침에 올랐다. 어머니는 아주 어렸을 적 가족과 함께 이곳에 나물을 뜯으러 왔다고 한다.

숲이 터널을 이루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서 갓 딴 나물과 밥을 먹을 때 초록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게 있어 쳐다보니 작은 꽃사슴이 있었다고 한다. 햇빛이 개울물에 반사되는 것인 줄 알고 다시 보니 여전히 그 눈동자가 있었다고 하신다. 어머니께서 할머니께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믿지 않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에 맨 나물을 뜯은 보자기에 들꽃들을 수북하게 뜯어 꽂았다고 하신다.

혹, 그 꽃을 보고 또 그 꽃사슴이 또 나올까 싶어.


그러나 결국 그 꽃사슴은 나타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 꽃사슴을 꼭 다시 보고 싶어 다시 온다고 한 세월이 30년이 지난 것이었다. 그동안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그 추억 속의 태백산을 튼튼한 다리가 있을 때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에 30년의 추억을 간직한 태백산을 가족이 함께 오르게 되었다.


태백산은 내가 생각한 모양이 아니었다. 큰 소나무들이 산기슭을 듬성듬성 매웠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워낙 고산지대라 나무들은 작고 어머니 추억처럼 들꽃이 아기자기 피어 스위스의 풍경처럼 이국적이었다. 그 나뭇잎 반짝이는 개울도 있었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숲 터널도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마비시킬 정도로 차가운 계곡물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마음이 고요해지는 곳이었다. 태백산은 단군이 내려온 곳으로 정상에는 천제단이 있었고 자연석으로 쌓은 곳으로 멀리 동해바다가 보였다. 그러나 이 달력에 나올 맑은 하늘도 잠시 비바람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해가 쨍쨍했었는데...... 비바람에 가족들은 얼굴을 모으고 천제단 앞에 모여 준비한 따뜻한 차를 마셨다. 순간 시간이 멈추는듯하고 먼 과거 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단군이 비바람을 몰고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내려오는 길에 엄마의 탄성으로 정말 꽃사슴이 나타났나 했더니 하얗고 작은 여러 송이 꽃이 마치 꽃다발처럼 핀 꽃이 감탄의 주인공이었다. 이런 고산지대에는 희귀 꽃이 많다고는 했지만 너무 아름다워 사진에 담았다. 어머니는 그 꽃을 어렸을 때 본 것 같다고 하시며 세상에 이런 꽃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며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와 본 바로 그 꽃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어머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가족 나들이는 기억의 생각 속에 박혀 항상 어머니에게 그리움을 주었나 보다. 야생화에 대해 미리 좀 알아봤으면 이름을 알았을 텐데 이름을 모르니 참 답답해하며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태백산에 다녀온 뒤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태백산에 자생하는 주목나무였다. 왠지 모를 장엄함에 나의 마음이 겸손해졌다. 태백산에서 꽃사슴은 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샘물인 용암의 물맛처럼 그 써늘함은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여행을 다녀온 날, 어머니와 같은 결심을 나도 하였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꽃다발 같은 꽃의 이름을 알고 다시 태백산을 오르겠다고. 그때는 어머니께서 못 보신 그 꽃사슴을, 그 눈망울을 나도 볼 수 있겠지.


-이름 몰라 애태웠던 아련한 꽃 무덤 꽃은 산조 팝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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