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하는 마법

아주 오래된 인연 해리

by 푸르름

금방 끝 날 줄 알았다. 이 지루하고 힘겨운 시간이
그러나 5년째.
나는 독서실과 고시원을 맴돌고 있다. 그동안 숙소를 몇 번 옮기기는 했으나 신림동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5번의 봄을 맞았고 봄이면 대학 신입생들의 하이톤의 웃음소리에 홀리기도 5번째.

신림동에 값싸고 맛있는 음식점과 눈치 안 보고 오랫동안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찻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어쩌다 용돈이 조금 더 생기면 그동안 신세 진 지인들을 불러 조금 생색을 낼 수 있는 곳도 기막히게 알고 있다. 이 생활은 몇 년 동안은 괜찮았는데 4년을 넘기면서는 평소에 가던 찻집과 식당을 모두 바꾸었다. 남들이 아직도 신림동에 있는 나를 알아볼까 두려웠다. 그리고 밖을 나갈 때에는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다 가릴 정도의 마스크도 쓴다.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보다 이제는 후배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졌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많은 고통이 따랐다.

시험장소도 가까운 서울을 놔두고 하루 전에 도착해야만 볼 수 있는 먼 곳까지 간다. 처음에 친구 후배 선배들이 나와서 파이팅을 외쳐 주었을 때에는 그냥 붙는 것도 아니고 1등으로 붙을 것 같은 벅찬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물론 붙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도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그 기분은 이제 아주 작은 불씨만 남아있다. 태연한 척하는 나의 말과 행동에 묻어 나는 소심함을 친구들과 후배 부모님은 알고 계실 것 같아 대인기피증 즉, 공황장애까지 생겼다. 식당에 가면 나도 모르게 눈 깜짝할 새 밥을 먹고 분위기에 젖어 우아하게 즐기던 카페도 테이크아웃으로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 현실이 나를 너무나 압박하였다. 꿈속에서도 나는 공부만 하는 꿈을 꾼다. 계속해서 시험에 떨어지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던 친구는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상담 동아리를 연결해주었다. 6개월간 계속된 상담 동아리 활동은 쫓기던 내 마음을 조금은 안정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 하소연을 들어주는 상대가 있는 순간은 마음이 편하고 안정을 찾으나 그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은 아무리 붙잡아도 제자리로 기가 막히게 돌아갔다. 또다시 불안해졌고 강박관념에 온몸이 긴장되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자기소개서를 발표할 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 바뀐 나의 꿈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경찰청장이 되겠다고 힘주어 말해 동기생들과 교수님께 큰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학교 다니는 2년 동안도 난 시험만 보면 바로 붙을 것 같았다. 예상문제를 풀어보면 대부분 합격점이 나와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생들이 말리는데도 자신감 하나로 군대도 빨리 갔다 오고 2학년까지 다니고 휴학계를 냈다. 남보다 먼저 시험에 붙어 어릴 적 그 꿈을 향해 빨리 달리고 싶었다. 그 시간이 5년. 재미있게 놀아 보지도 못하고 마음 편하게 친구들과 즐기지도 못하고 나의 20대는 올해가 마지막이 된다.

내가 고향 집을 내려갔을 때 이 아주 오래된 인연을 다시 잡지 않았으면 난 이 절망의 터널을 나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한시도 떠난 적 없이 책꽂이에서 자리 잡고 있던 '해리포터'라는 소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유치하고, 한 번 보고 지나칠 요깃거리 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10대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읽고 이런 판타지를 글로 옮길 수 있는 롤링이라는 작가에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이미 여러 번을 읽어 표지가 너덜너덜 해졌음에도 다시 읽으며, 다음 편을 기다리던 설렘은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대화도 해리포터가 기승전결이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며 7편의 마지막 4권을 모두 읽었을 때의 그 뿌듯함은 세상에 모든 비밀을 알아버린 듯한 착각이 되어 하루하루가 찬란했다. 모든 일이 마법과 같았고 아무리 힘든 경험을 해도, '오블리비아떼'라는 기억을 잊는 마법을 쓰며 이겨내 왔다.
아마 당시에는 누구보다도 해리포터를 사랑했었다 자부할 수 있다. 책 속에 나오는 대화가 기억에 남으면 원서를 찾아 읽으며 기억할 정도였다.

집에서 나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나의 곁에는 언제나 해리포터가 있었고, 자기 전엔 기숙사가 호그와트와 같다 생각하며 행복하게 지내왔다. 이후 고3 시절.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영화로 나왔을 때는 끝났는데도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의미 없이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조차 놓치고 싶지 않았다. 10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그 긴 여운을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만큼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해왔지만.

대학시절에는 해리포터는 점점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마치 해리포터의 1,2권처럼 대학생활은 마냥 신기하고 재밌던 동화와 같았기에 , 이야기가 끝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해를 기다릴 수 있었다. 문득문득 고향을 내려가면 한 권 씩 꺼내어 재미 삼아 읽어보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해리포터와 오블리비아떼는 10대의 추억으로만 남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 긴 고시원 생활에 점차 마음이 무너져 갈 즈음인 올해 초. 10대 시절 읽었을 때와 달리 해리포터의 이야기는 그저 아름다운 동화 같지 않았다. 해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전율보다 더 큰 감동이 밀려왔다. 고아라는 환경과 자신을 유년시절 내내 괴롭힌 이모의 집을 방학 때마다 돌아가야 할 해리, 그리고 악당보다 더 무서운 같은 마법사들의 차별과 비난까지.
단순히 환상적인 마법으로 악인을 물리치는 판타지보다는, 끝없이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는 10대의 성장소설 같았다.

더군다나 5권부터 갈수록 초반에 밝기만 한 아동 소설에서 점점 이야기는 어두워졌고, 도대체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답답한 6권의 분위기는 방향성과 길을 잃은 현재의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이며 공감이 갔다.
밤마다 소설을 읽으며 이 주가 다되어서야 다시 해리포터를 완주한 다음 날. 나는 처음으로 커피를 사며 불안함과 강박관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 날 느꼈던 10대 때의 당당함과 설렘은 잠시나마 내가 대인기피증이란 사실을 마법주문 '오블리비아떼'처럼 잊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서야 푹 눌러써왔던 모자를 잊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퀴디치 빗자루를 탄 것처럼 훨훨 뛰어다니던 진짜 '나'의 모습이 기억났다. 지금 나의 상황은 단지 6권의 어두운 상황에 불과하고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다면 누군가를 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덕분에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푹 눌러써 닳아버린 검은 모자도, 남들을 피하기 위해 빙 돌아서 온 길거리도 나에게는 없었다. 대인기피증이 올라하면 '오블리비아떼'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이겨내려 하였다. 그러면서 되도록 가족들과 더 시간을 보내며, 어두운 6권을 끝내고 마지막 찬란한 결말을 기다리고 있는 7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보지 못하였던 수많은 소소한 행복이 나를 더 빛내주고 있었다.

'happiness can be found, even in the darkest of times, if one only remebers to turn on the light' - 불을 켜는 법을 잊지 않는다면, 행복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존재하는 법이다.
해리포터를 원서로 읽었을 때 가장 좋아하던 문구로 3권 아즈카반의 죄수의 덤블도어가 한 말이다. 나의 고시원에 합격이라는 글자를 떼낸 자리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부모님의 커다란 믿음, 친구들의 5년간의 응원, 6개월 간 나를 찾기 위한 상담 동아리 활동보다 처음의 나로 올라갈 수 있게 지켜주는 것은 내 성장기의 전부를 차지한 책, 해리포터이다.
해리의 응원으로 올해 난 새롭게 또 도전한다. 다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고개를 들고 이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켜는 법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힘든 순간에는 오블리비아떼를 외치며 이겨내던 10대의 나를 간직한 채 20대의 끝을 맞이하고자 한다. 마치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처음의 나의 모습으로 훨훨 나는 해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