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수사경찰 - 부록(1) 의경
내가 요즘 하는 일은 사건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생긴 일을 수습하는 일이다.
처음 경찰을 하고 싶었던 것은 두려움에 떠는 시민들에게 안전한 생활을 지원해 주는 마음이었는데 조금 가는 길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매일 생각하는 것은 내가 가는 길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민원인들과 얽힌 실타래를 풀어 가면서 이 의미를 잃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나의 의경 생활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간 군대는 의경이다. 의경제도는 2023년 5월 17일 완전폐지 되었다. 그 이유는 인구감소로 현역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내가 갈 때도 경쟁률이 높아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슴 졸인 생각이 난다. 마지막 의경은 31대 1 넘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 수많은 성인 남성들은 군대 얘기만 나오면 봇물이 터지듯 과거 자신이 나온 부대의 이야기 홍수를 쏟아낸다. 며칠 밤도 샐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말 한마디 안 하는 직원에게 군대얘기를 슬쩍 꺼냈다가 며칠을 후회한 적이 있다.
그 얘길을 참고 들어주기에는 내 인내가 바닥을 들어냈다. 수다도 그런 수다가 없었다. 아마도 2년의 시간을 나에게 줄거리를 요약해서 다 들려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듯. 한이 풀리듯.
내성적인 대한민국의 남자도 이런데 말 좀 한다는 남자들은 어떤가? 남이 자신의 말할 시간을 뺏을까 숨도 최대한 짧게 끊고 한다.
연평도의 해병대원부터 독도경비대원까지 2년이란 값비싼 청춘을 바친 이들은 입으로는 ’ 힘들었다 ‘를 연발해도, 과거를 회상하며 입꼬리는 올라간 채 내려오지를 않는다. 인생의 가장 정점에서의 그 경험들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이 주는 고민과 고난, 성취감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는 그런 향수를 일으키나 보다.
나 역시 오늘은 나의 군대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갑자기 군대가 생각나거나 군대이야기의 붐이 일어서는 아니다. 특별한 일이 있다면 내가 나온 ’ 의무경찰‘이 5월에 폐지되어 다시는 부활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건 뭐랄까? 내가 태어 난 곳이 어느 날 가보니 물속으로 사라져 버려 지도에 조차 표기되지 않는 황당한 일 정도일 것이다.
20살을 갓 넘긴 시절. 나는 중학교 때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기에 군대도 이왕이면 꿈에 가까이에 있는 의무경찰을 지원하였다. 경찰을 남보다 먼저 알고 싶어서랄까.
의무경찰 복무 중 범인을 잡는다거나 응급 상황인 시민을 구조하는 등 가시적인 활동을 한 적은 없다. 다만 꽉 막힌 교통 한가운데에서 수신호로 흐름을 원활하게 해 주고, 축제 때 몰린 수많은 인파들을 도와주는 등 일상에서의 소소하지만 필요한 일들을 하며 많은 보람을 느껴왔다.
당시 경찰이 되고픈 욕구가 충만했던 나로서는 비록 의무경찰이라 하더라도 경찰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진다는 기대감에 부대 배치 때부터 전역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일지를 쓰곤 했다.
때때로 그때의 기억을 더듬기 위해 수첩을 꺼내 읽고는 하는데 그중에서도 지금껏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2012. 10. 23. 평소처럼 5인 1조로 묶여 우리는 시내 방범순찰을 돌고 있던 날이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도시는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한 동네라 시골의 풍경과 도시의 풍경이 혼잡된 곳이었다. 따라서 대학교가 2개나 몰려있는 곳이어도 조금만 벗어나면 어두컴컴한 길목을 지나야 원룸이 나오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동네가 범죄율도 낮고 워낙 조용한 곳이었기에 그날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부대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새벽거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100번의 근무 중 99번의 방범순찰은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당시 긴장이 풀린 상태로 순찰을 다닌 것으로 기억한다.
원룸 거리 끝자락을 나오며 한창을 대학시절에 대하여 작게 이야기하던 중. 후임 한 명이 갑작스럽게 ‘누가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문 채 어두운 방향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말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한 분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우리를 바라본 채 서 있었다.
새벽 3시에 가로등도 잘 비추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불쑥 나오자 소스라치게 놀랄 뻔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천천히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 뭐 필요한 일 있으세요?”
“.... 저기요 제가 저기 앞 원룸에 사는데 저 좀 저리로 데려다줄 수 있으세요?”
처음에 바로 3분 거리도 안 되는 원룸을 찍으면서 함께 가 달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아니하였다. 혹시나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귀가를 하는 이를 본적은 있었으나, 한 번도 20대가 귀가 동행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잘못 들은 듯하여 “어디요? 저기 앞에 있는 저기요?”라며 계속 되묻고 있자 보다 못한 후임이 나를 제지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에 꼼꼼한 후임이 “바로 앞이니 같이 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작게 말해주고 나서야 함께 원룸촌으로 되돌아갔다.
여성분은 앞장서서 걸으려 하지 않고 5명의 바로 뒤에서 몸을 숨기고 따라왔다. 무어라 말을 걸기도 애매하여 5명의 경찰 근무복을 입은 우리들은 앞에서 그녀를 숨겨주며 걸었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찍었던 원룸 근처에 다다르자 그녀는 갑자기 멈칫하더니 원룸 근처 차량을 떨면서 손가락질하였다.
차량에는 거짓말처럼 남자 한 명이 빤히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분을 쏘아보듯 했다. 창문을 내리고 있던 남성은 기다렸다는 듯 인기척이 나자 차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다 멈칫! 제복 입은 5명의 우리들을 보더니 조용히 다시 차에 탔다.
일 순 우리들은 쫓아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남자는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하더니 달아났다. 그 짧은 순간에 우리들 수첩에 그 남자의 차량 번호가 또박또박 적혔다.
어떠한 상황인지 도저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여자분이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해당 남성은 같이 수업을 듣는 나이가 꽤 되는 남자로, 몇 번 밥을 먹은 뒤 어떻게 알았는지 자꾸 집 앞까지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꾸 만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거절하고 오늘은 일부러 늦게 왔는데도 차가 있는 것 같아 주변에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택시를 잡으려다가 우리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
진실이 어떤지 알 수는 없으나 당시 여성분의 떨리는 목소리나 행동, 그리고 남성 분이 우릴 보자마자 황급히 떠나는 모습으로 보았을 때 문제가 있어 보이는 상황인 것은 맞았다.
2023년 지금은 해당 행위는 스토킹처벌법으로 곧바로 신고가 들어가고, 블랙박스와 CCTV 등으로 이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의무경찰로 활동할 당시는 2010년대 초반으로, 이제 막 블랙박스가 대중화되기 시작하고 스토킹에 대한 법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그 시간에 우리가 마침 방범을 돌 수 있었고, 상대 남성분도 미리 떠나지 않고 우리 5명이 함께 여성분의 귀갓길을 동행한 것을 보았기에 다행이었다. 아니면 여성분은 밤새 주변을 배회하거나 다음날 또 남성의 차량이 집 앞에 와있을까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여성분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였고, 그것이 내가 긴 시간 동안 의무경찰을 하면서 짧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은 이미 사건이나 사고가 벌어진 후에 수습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방범 순찰의 혹시 모를 사건을 예방한다는 진정한 의미를 몸소 느낄 수 있던 날이었다. 또한 범죄를 미리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의경은 참 좋은 제도였는데 이 또한 인구 감소로 사라져서 너무 아쉽움이 든다.
이 날 이후로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부대원들에게 해당 원룸촌을 새벽에 돌 때는 해당 장소를 한 두 번 더 돌아봐달라고 하였다. 다행히 이후로는 나는 해당 남성의 차량을 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리를 만나서 포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밤이 우리의 방범 순찰로 불안감이 해소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하루라 기억한다.
나는 때때로 수사를 하다가 머리가 아플 때면 20대 초반 까까머리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더 자세하게 기억하고자 그때의 일을 담긴 수첩을 꺼내들때마다 10월에 동행에서 멈추고 당시 일을 자세히 읽곤 한다.
경찰이 된 지금은 민원인 중 조금이라도 불안한 이들에게, 누군가 따라오는 듯하면,
1.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곧바로 112에 스토킹으로 신고를 하고,
2. 그 이후에 CCTV나 블랙박스가 위치한 장소에 서서
3. 마음을 안정시켜 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라고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있다.
아주 쉬워 보이지만 일이 생기면 이 매뉴얼을 다 잊고, 가족이나 119에다 신고하기도 한다.
비록 전화로 문의한 이들과 함께 걸을 수는 없지만,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대화상으로나마 함께 동행하며 최선의 예방법을 알려주는 것에 의무를 다하려 한다.
앞으로 29년의 남은 경찰생활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을 맞닥 뜨리면서 고민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마다 2012. 10. 23. 경 겪은 일을 기억하며 내가 오늘 하루 근무하는 이 순간이 또 다른 누군가의 불안한 밤을 해소할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함께 동행하는데 주력하고 싶다.
그리하여 검거 실적이 아닌 예방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업무를 새로운 일지에 남기고 싶다.
끝으로 2012. 10. 23. 해당 근무를 마친 후 적은 문구를 소개하며 나의 의무경찰 생활을 추억해 본다.
‘누군가 불안할 땐 함께 걸어요라고 묻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