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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May 13. 2023

밥은 드셨나요?

새내기 수사경찰 - 15화

‘밥’이란 서먹서먹하고 경직된 사이를 풀어주는 키워드고 꼬여져 있는 관계를 풀어주는 시작점이다.


오죽하면 반갑다는 인사가 밥은 먹었냐는  것일까? 물론 나도 성장하면서 할머니로부터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밥 먹었니? 였다. 이상한 것은 질문한 시간이 밥때가 아니다는 것이다. 그 밥 먹었니라는 말속에는 전라도 거시기처럼 서로서로가 이해가 되는 마음의 언어가 숨어 있는 것이다.     


부모님께는 ‘밥은 잘 드셨어요?’라며 안부인사로 시작하고, 처음 본 관계에선 밥 한 번 같이 먹으면 십년지기가 된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에게는 ‘밥 한 번 먹자’라며 끝맺음을 한다. 물론 그 밥 한 번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다. 알면서로 우리는 그 밥 속에 담긴 정을 받는다.


매일 같이 먹는 ‘밥’은 사회에 있어 하나의 소통 창구이자, 물음표를 명쾌한 쉼표로 바꾸는 역할을 담당한다.          


경찰에게 있어서도 밥은 중요하다.

출근 시간과 퇴근시간은 업무 특성상 수시로 바뀌지만 밥때만큼은 고유의 시간이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청장님부터 시보기간인 순경분들까지 동일한 불변의 시간을 차지하는 게 바로 밥이다. 밥시간 때가 되어서야 동료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얼굴도 보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서로 알아가기도 한다.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건을 정리하기도 하기에 1시간이라는 밥 먹는 시간은 먹는 걸 넘어서는 큰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아무리 쉬는 시간 없이 아무리 업무가 바빠도 밥시간대는 지키려 하며, 수사부서에서도 오전 10시나 오후 2시에 조사 일정을 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1년의 기간 동안 나는 밥 먹는 시간에는 조사를 잡지 않으려 하였고, 아무리 빨라도 11시, 늦어도 오후 1시에 조사 일정을 잡아왔다. 때때로 조사받는 이들이 늦어 밥 먹는 시간에 겹치게 되면 밥 먹고 시작하거나 다음 날로 조사일정을 미뤄오곤 했다. 아,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봐도 밥 먹는 시간은 금쪽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중한 나의 신년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벚꽃이 만개하던 3월 처음으로 밥 먹는 시간에 조사를 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당시 3 달 전부터 나오겠다며 몇 차례 약속을 해놓고 매번 어기던 피의자가 있었다. 그는 시청에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소 20두를 키우다 고발된 사람이었다.      

월요일 오후 4시에 나오기로 하고 5번째 약속을 어기자 다음날 아침 나는 약간 상기된 상태로 노인에게 전화를 하였다.     



”처음부터 약속을 하시지 말던가 이게 몇 번째예요. 언제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

 “죄송합니다. 내 늙어서 계속 까먹어서 그래요. 아예 지금 출발하면 어때요? 이번 주 중 오늘 오전만 시간이 딱 나는데.”

노인은 걸걸한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의 말에 무신경하게 답변하였다. 그의 답변에 90일이 넘도록 약속을 어긴 기억들이 떠오르며. 오늘이 아니면 피의자가 스스로 나오는 날은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분들은 전화하면 늘 복사하여 붙이기 하는 것처럼 까먹었다가 1단계 바쁘다가 2단계 그리고 약속을 다시 잡는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나는 덥석 그에게 지금 당장 출발을 하라며 다른 조사 일정을 미루더라도 노인의 조사만큼은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주었다. 노인은 “그럼 지금 갑니다”라고 한마디만 하고는 시크하게 전화를 끊었다. 시간대를 정하지 않고 피의자를 부른 적이 처음이었으나 일단 도착부터 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9시에 전화를 걸었던 노인은 10시간 되어서도 11시가 되어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또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닌가 하며 전화기를 들려할 때즈음 12시가 넘어서야 노인 한 명이 천천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내 이름이 써 있는 자리로 찾아왔다


“그 수사관님.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늦었지요?”

“안녕하세요 주소지에서 경찰서까지 길게 잡아야 30~40분 거리라 하지 않았어요?

”아이고 그건 예전 주소지고 지금은 거진 2시간은 걸리는 곳에서 소를 키우고 있습니다. “

햇빛에 까맣게 탄 주름진 그가 시계를 쓱 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되도록 빨리 좀 끝내줘요 죄는 모두 인정하니까. “

3개월 만에 나타나 그것도 점심시간 시작할 때 즈음 와서 빨리 가야 한다니....

경찰서가 고객센터도 아니고 마구잡이로 일정을 정하려는 노인의 행동에 순간 당황했으나, 그는 더 큰 한방을 나에게 날려주었다.     


”그리고 수사관님. 밥은 드셨나요? 제가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데 밥부터 먹고 하면 안 되나요?. 새벽부터 지방까지 내려갔다 왔는데 한 끼도 못 먹은 상태입니다. 염치없지만 부탁 좀 드립니다. “ 그는 고랑진 얼굴의 주름을 더 깊게 하면 제발 밥 좀 먹읍시다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 조사의 결과보다 벌보다 밥이 중요했다.


순간 나의 이성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얼핏 들리며 본인이 아침을 안 먹은 게 무슨 상관이냐며 소리를 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조사 때문에 밥을 못 먹고 있는 나의 동료가 눈에 띄자 오히려 잘되었다며 빨리 점심을 먹자고 하였다.     

경찰서 주변에는 한참을 가야 식당이 나오기에 나는 내 구내식권을 하나 뜯어주며 시간도 절약하고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식권을 받아 들자 뻣뻣하고 퉁명스럽던 태도에 피의자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하였다. 사실 빨리 먹어 조사를 마칠 방법이 이것뿐이기에 준 것이지만 갑자기 바뀐 노인의 모습에 조금은 기분이 풀리기도 하고 아까까지 전혀 조사를 받고 싶어 하지 않던 노인이 급 공손해지는 것이 우습기도 하였다.     


식사 중간마다 노인은 내게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질문들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무엇보다 시급하게 조사를 마치고 싶었지만 굳이 죄를 다 인정하는 피의자에게 불친절하게 할 이유도 없었기에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흔한 질문 3종 세트들이었다. 부모님은 뭐 하시냐? 고향은 어디냐? 장가는 갔느냐?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노인이 아내를 잃고 아들과는 연락이 끊긴 점, 사기를 당해 모든 재산을 날리고 겨우 빚을 져 축산 일을 하고 있는 등을 듣게 되며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조사 아닌 조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가 끝난 후, 피의자는 물론이고, 나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상호 간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나로서는 노인이 이전까지 약속만 하고 수없이 어기던 블랙리스트 인물에서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딱하고 불쌍한 어르신피의자로 인식도 변화하였다.


이후 사무실에서 노인은 굉장히 협조적인 자세로 모든 죄를 인정하고 죄송하다며 사는 게 힘들어 그랬다고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며 2시간이나 걸렸지만 이제 조사를 받고 나니 자신도 후련하다며 아는 사람과 합법적으로 소를 키우고 있다며 전화를 몇 통 돌리더니 서류도 공용핸드폰에 문자로 모두 제출해 주었다.

그가 처음 들어올 때와 달리 상호 존중을 하며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밥’이란 얼마나 중요한 매개체인지 또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노인의 혐의와 증거가 명확하고, 처음 인상을 쓰면서도 죄는 인정하였기에 사건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다. 증거와 조사서류 그대로 송치하면 노인은 초범이기에 벌금을 받던가 기소유예를 받을 수도 있는 간단한 건이었다.     

그러나 경찰이라는 직업은 마냥 처벌을 하는 것만이 존재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듣고 앞으로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재범방지를 위해 1차적 노력을 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라고 본다.     



그러하기에 절대로 신뢰형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노인과도 단순한 경찰서 구내식당의 밥 한 끼로, 깊은 이야기를 하고 향후 방지를 약속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가슴 벅찼다.

비록 그날 점심시간과 휴게시간은 5분도 보내지 못했지만, 향후 동일한 범죄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가장 달콤하고 소중한 ‘밥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앞으로도 동일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경제수사과는 첩보나 정보가 필요한 업무는 드물기에, 고소인이건 피의자건 함께 밥을 먹는 경우는 희박하다. 수사비로 수사 관련 밥을 먹을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나, 개인적으로 조금의 유혹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하기에 일반 시민들과도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배고픔을 느끼는 시민들이,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내가 준 식권으로 밥을 먹는 기회가 온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그들이 어떠한 상황이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소통의 창구를 넓혀 대화를 해보고 싶다.

‘밥 한 끼’가 보다 직원들과의 교류를 넘어 사건에 있어 해결 실마리를 줄 수 있는 풍족하고 뜻깊은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음.  그러고 보니 골치 아픈 한 사건이 떠오른다. 구내식당에서 밥 한 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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