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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Apr 01. 2023

박카스 한 병이 부패경찰을 만들기까지

새내기 수사경찰 - 14화

 

 문득문득 나는 내가 왜 경찰이 되려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려 했으나 30년간 한마디로 답을 내릴 수 없았다. 그러나 그 답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나왔다.


면접을 볼 당시. 경찰이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그동안 내가 품어 왔던 질문에,

고민도 없이 “나쁜 시민보다 나쁜 경찰이 더 나쁘기에 이들을 사전에 막고 싶다.”는 답을 꺼냈다.


그날부터 나는 더 이상 그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질문 전에 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회의 마지막 정의자는 경찰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만들어갈 것이다. 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내가 얼마나 나와 다른 나를 만날 때마다 가르쳐야 하는지 안다.


1년밖에 되지 않아 많이 못 만났지만, 만나 본 경찰들은 자신보다 일을 우선시하고, 사명감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부당거래의 형사나, 투캅스의 비리경찰들은 단순히 상상으로 만들어진 오락용 캐릭터에 불과할까? 아직 그렇게 밑바닥까지 내려간 경찰은 없었다.

 


 

바쁘디 바쁜 팀이 일 순간에 정적이 흐른 적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와 오고 가는 민원인들 사이에서 그날은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름 아닌 내 사무실 자리 앞으로 ‘사과박스’ 2개가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보냈어도 숙소로 보냈을 텐데, 보낸 이는 전혀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궁금증에 몇 번을 전화 시도한 끝에 보낸 사람이 사과를 판매하는 가게주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가게 주인은 ‘자신은 손님이 보내달라 해서 보내주는 것이고 워낙 전국으로 보내다 보니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며 쉽사리 누가 보냈는지를 답해주지 않았다.

혹시 친구가 보낸 것인지 아니면 누가 잘못 보낸 것인지 궁금 반 걱정 반으로 몇 분이 지나서야 가게 주인은 충격적인 세 글자를 불러주었다.


사과를 보낸 이는 다름 아닌 아직 검찰에서 사건이 진행 중인 사건의 ‘피의자’였기 때문이다.

 

고작 사과박스가 뭐가 문제냐일수도 있겠으나 나로서는 고소인이건 피의자이건간의 사건 관계인이 무언가를 보낸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것도 대가성으로  글로만 접했던  ‘미끄러지기 쉬운 경사로 이론’

 

비리 경찰을 막아내는 것이 경찰이 된 이유!라고 공언한 만큼 평소에 나는 병적으로 박카스 한병도 받지 않았다. 때때로 60이 넘은 노인 분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여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고 벌금까지 납부한 뒤 박카스 몇 병을 들고 와도 ‘이럴 거면 처음부터 다시 조사할 거예요!’라며 돌려보내곤 했다.

 

 

민원인뿐만 아니라 같은 직원도 유난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과하게 거부하다 보니 때때로 안 좋게 부딪히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무리 누가 뭐라 해도 나쁜 경찰을 막아내는 것이 경찰이 된 이유!라고 시작부터 공언한 마당에 작은 여지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만 1년 간 매몰찬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런 나에게 모두가 다 보는 우편배달 목록에까지 떡하니 기록까지 하여 배달하였으니 얼굴이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길로 모든 일정, 서류 작업을 멈춘 채 온 신경이 사과박스를 처리하기 위해 곧바로 사무실로 뛰어갔다. 사과 박스에는 진짜 사과가 담긴 건데도 내 눈에 5만 원 지폐다발이 얌전히 줄 서 있는 것으로 착각되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사과박스 안에 돈이 꽉꽉 채워질 리는 없겠으나, 박스 저 깊은 곳 속에 봉투라도 하나 섞여있으면 말 그대로 뉴스에 도배될 일이었다. 더군다나 학교 선생님들도 카네이션조차 받으면 안 되는 세상인데, 사건 관계인에게 아무리 단순한 과일일지라도 그 무엇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처음에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청문 감사관실로 사과 박스를 힘겹게 들어 옮겼다.

 

전혀 받을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한 치의 문제도 없었기에 재빨리 비리비행을 감찰하는 청문감사관실로 해당 일을 신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서려는 찰나 청문감사관실에서는 등록을 마치자마자 다시 사과 박스를 가져가는 게 좋겠다고 권하였다. 보고만 하면 끝 일거라 생각한 우리로서는 ‘여기까지 들고 왔으니 대신 좀 보내주세요!’라는 말이 입언저리까지 머물렀으나 절차상 보낸 이 가 다시 가져가게 하는 게 맞다는 조언에 말을 삼켰다.

 

힘겹게 우리는 다시 사과박스를 4층에서 낑낑대며 사무실로 들 고 내려왔다. 당장이라도 팀원 전체가 피의자에게 가져가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으나 괜스레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던 나로서는 조용히 보낸 피의자에게 ‘다시 가져가라’는 문자 하나를 남겨놓았다.

 

 

어이없게도 문자를 받자마자 피의자는 전화를 하더니 왜 돌려 보내냐며 적방하장으로 화를 냈다.

여러 번의 고성이 오가는 전화 끝에 사과를 보낸 장본인은 “버리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시오. 그깟 사과 가지고”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더 이상 받지도 않았다.


아, 그깟 사과라니  팀원들이 일도 못하고 사과를 들고 왔다 갔다 한나절을 보냈는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그저 수고해달라는 의미로 해당 사과박스를 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찰 입장에서는 ‘고작 사과 두 박스’로 남은 30년 경찰생활에 통으로 징계를 남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내 돈을 써가면서 택배로 사과 박스를 피의자 집 주소지로 되돌려 보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경찰관 입장으로서는 잘못한 것도 없고 받은 것도 없는데 돈도 쓰고 시간도 쓰고 감정까지 소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힘들고 화가 나기보단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운 감정이 엄습해 왔다. 지금에서야 이깟 것 정말 별거 아니라고 고작 이런 걸로 판단이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지만 앞으로 점차 현재에 안주하고 귀찮음이 과한 신념을 넘어선 시점이 올 때면 그때도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이번만 봐도 4층과 1층을 오고 가며 전화를 돌리는데만 1시간이 넘어가자 중간중간 귀찮은 마음에 ‘조사도 다 끝나고 검찰로 넘어간 건데 그냥 받아버릴까 그냥 사과일 뿐인데’라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마음이 미약하나 만 있었다는 것에 나 자신에게 섬짓하였다.

 


이날의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사과박스는 피의자에게 그대로 돌려보냈고, 이미 예전에 검찰로 간 사건은 그대로 벌금형으로 떨어져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제3자의 시각으로 보면 그저 운수 나쁜 날 중 하루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경찰이라는 직업을 계속하면서 잊을 수 없는 하루이기도 했다. 타성에 젖어서 세월에 스며들어 유난처럼 보이는 내 신념이 언젠가는 귀찮음에 가려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오늘의 이 글을 다시 꺼내 들어 사과박스를 받지 않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니고 전화를 붙잡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다른 것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경찰임용 당시 처음 받은 질문에 대한 당돌하게 답변을 하던 초심자의 모습 하나만큼은 잃지 않고 싶다.

 

가뜩이나 ‘사이렌’처럼 고음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커피도 박카스도 절대 안 받아요!’라고 외치는 탓에 우리 팀의 팀원 분들도 자동적으로 사건이 끝났어도 조그만 호의도 아름답게 거절하는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 앞으로도 나는 온갖 유난을 떨며 커피 한 잔 박카스 한 병도 받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숙련된 경찰이 된다면 그때에는 지금처럼 손사래만 치는 모습이 아니라

‘박카스 한 병은 힘들 때 본인이 드세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라며 유연하게 작은 호의를 돌릴 수 있는 그런 경찰로써 남고 싶다.

박카스 한 병의 무게가 나,  우리 경찰을 정의에 편에 설 수 있게 하는 기준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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