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계절

소멸시대 지역경찰 0화

by 푸르름


2월.

성급한 사람들은 2월만 돼도 여기저기서 이제 봄이 멀지 않았다고 하고 실제로 두꺼운 외투도 벗고 제법 봄 흉내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경찰에게 진짜 겨울은 ‘인사의 계절’인 2월이다. 이 2월은 모두 바쁘다. 날씨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춥고 바람도 아주 매섭다. 이 시기만 되면 함께한 사람들이 아무리 좋아도, 정이 들어 아쉬워도 한곳에 머무를 수 없는 경찰조직의 특성상 다음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


떠나거나 떠나지 못한 이들 모두 2월의 칼바람은 생각이 많고 복잡하여 살을 에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2월을 그 어느 계절보다 가장 춥게 여긴다.


수사팀에서 2년 다 되어갈 무렵. 나에게도 인사의 계절이 왔다. 나는 어디로 옮겨야 할까? 를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수사하며 남의 억울함을 수사하여 풀어주거나 재판으로 넘어가도록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참으로 보람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사의 암막을 잠시 열어 걷혀,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었고 법치국가의 시스템에 대하여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울 때도 있었고 스스로 힘에 부친다고 느낀 적은 있으나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2년 동안 밀린 사건 없이 무난하게 잘 처리해왔고, 팀원들도 다시 만나기 힘든 사명감으로 뭉친 선한 경찰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조건으로 몸이 만족해도 늘 마음은 현장에 가 있었다.

미디어에서 여러 번 나오는 경찰들처럼 나도 시민들 한복판에서 그들을 돕는 그런 ‘현장’ 경찰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2달간 주변에 질의하고 스스로 자문한 끝에 2년 만에 지구대·파출소로 지원을 결정하게 되었다.

“ 가장 바쁜 지구대로 보내주세요. 현장에 가고 싶어요”

한 달 전부터 이동이유를 묻는 과장님 질문의 답변을 할 때도, 인사 내신서에 쓴 동기를 적을 때도, 시종일관 그저 ‘현장에 가고 싶다.’라고 답하였다. 수많은 사건·사고들 속에서 시민들 틈 속에서 내가 경찰이 된 이유를 다시 새겨보고 싶었다.


인사 당일.

퇴근 시간을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발령 전날, 밤 11시에 나는 ‘파출소’로 근무를 명하는 발령 통지를 사무실에서 받을 수 있었다. 당시 공고를 2번 아니 어쩌면 십 수 번은 보고 또 본 듯했다. 내가 배정된 곳은, 내가 소속한 경찰서에서도 시골 중에서 시골에 있는 파출소였다.

파출소가 위치한 면은 면적 60㎢ 정도로 여의도의 7배에 해당하나, 인구는 11,000여 명밖에 안 되는 도심 속 시골이었다. 순간 내가 말을 잘못해서 바쁜 파출소를 안 바쁜 파출소로 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가장 안 바쁜 파출소’

내 의지하고는 완전히 달라진 해당 파출소는 직원이 10명밖에 안 되는 매우 소규모의 파출소였으며, 12시간 동안 팀장 포함 3명이 전체 구역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발표 당일부터 눈은 또 어찌 그리 억수로 오는지. 내가 태어나서 본 큰 눈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나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들을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나에게, 수사과에서 눈이나 내리라고 고사라도 지낸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발표 다음 날 새벽. 한참을 눈 속에 숨은 도로를 지나 로터리로 들어서자 교회에 반쯤 가려진 파출소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직원분들은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라커룸과 수납함만 짧게 알려준 뒤 서둘러 우비를 꺼내입었다.


“신고 떨어졌습니까?”

“오늘 오기로 한 이주임이죠? 여기는 겨울밤에는 신고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우리는 오다가다 노인분들 미끄러질 수 있으니까 가서 제설제만 조금 뿌리고 올게요. 이주임은 쉬고 있어요”


팀장님은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제설 도구를 들고 먼저 나섰다. 가만있으라 했지만 나는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원형교차로로 천천히 걸어갔다. 도로 관리는 시청과 주민센터에서 하는 일이라는 항변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첫날부터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 묵묵히 제설제를 뿌렸다. 날씨는 꽤 추웠지만 도로가 좁아서 그런지 금방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오자마자 힘들었죠? 원래 주민센터에서 하는 일인데 지금 시간도 너무 늦고, 이렇게 우리가 몇 분만 해주면 동네 어르신들도 안전하고 교통사고도 없으니 다 같이 편하잖아요, 이제 진짜 쉬어요”


정말로 해당 파출소는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14시간 동안 신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리고 귀가할 때 우리가 제설한 로터리는 눈이 쌓이지 않은 채 원활하게 돌아갔다


그렇게 눈이 가득 쌓인 이곳에서, 우리 담당도 아닌 구역을 제설하며, 작은 보람 속에 1년간의 파출소 생활이시작되었다.


마치 이곳에서의 나의 경찰 생활이 어떨지를 잘 설명하듯.


tip

- 고속도로와 국도가 아닌 지방의 일반도로는 시청이, 이면도로 및 골목길은 주민센터에게 제설책임이 있다.

- 자연재해대책법 제27조상 건축물의 소유자 혹은 점유자(소유자 미거주 시)는 주변 보도 이면도로의 제설 책임이 있다.(대부분 1m)

- 다만 제설하지 않는 다하여 과태료 규정은 없고, 제설을 안해 보행자가 다치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 제설도구나 제설제가 없다면 주민센터에 문의하면 무료로 지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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