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대 지역경찰 - 마무리
나는 왜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다시 파출소를 희망했을까?
그 궁금증은 어머니의 초임 근무지였던 강원도 첩첩산골을 방문했을 때, 사방 뺑뺑 산으로 둘러쌓은 곳에 위치한 작은 파출소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주변에 집들이 한 두채 있고 아무것도 없는 곳.
그래도 시골길을 지나다 보면 그 어디에도 꼭 하나는 있는 파출소. 건물은 작고 검소하다. 물론 순찰차 하나 둘은 꼭 세워져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분들은 식사와 더불어 가족까지 상주하는 직업과 집에 일체, 직주일체의 형태로 근무를 하곤 했다.
산자락에 부는 바람을 고스란히 이겨내며 초라한 건물이지만 당당해 보였던, 유럽의 곳곳을 돌면 꼭 나타나는 성당처럼 난 그 파출소가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아, 이런 곳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진짜 큰일이지 일반 시민들이 범죄로부터 보호받을 곳이 저기로구나!
죄를 짓거나 남에게 나쁜 짓을 하면 안 돼!라는 어떤 상징물처럼 보였고 나도 꼭 한 번 근무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러나, 경찰에 몸담고 있는 주변인들은 모두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가 서울을 희망하고, 서를 넘어 청단위에서 전문적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이곳에서, 내 관심은 일반적인 생각은 아니었다.
그건 경찰 조직에 대해 다 알고 싶어 하는 젊은 날 나의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물론 다른 동기들이 6개월만 의무복무를 하면 되는 곳에서, 부탁까지 하며 1년 복무를 강력하게 주장한 점은, 앞으로 경력상 무리수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실습생활 당시 파출소에서의 생활은 경찰에 대해 새로운 세계관을 주었고,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선량한 일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내가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은 내가 겪은 경험에 발로라 믿었고, 변경 없이 1년간 파출소 생활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지역경찰을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그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주주주야비야비야비”.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뜻 보면 사이비 주문과도 같은 말이다. 부모님도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지금 그래서 뭘 말하는 건데?”라고 반응했다.
작은 주문과도 같은 이 단어는 지역 파출소에서 1년 동안 내가 섰던 근무 시간체계이다. 이곳에서는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10시간을 주간근무로,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14시간을 야간근무로 본다.
주간 근무 3번 후 야간근무 3번을 무한으로 반복하는 3개의 조가 2교대로 근무체계는 언뜻 보면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왜 경찰 선배들이 3조 2교대만큼은 하지 말라고 했는지 경험해 보니 알 것 같았다.
밤을 새우는 야간근무를 했으니 다음날 하루를 비번으로 쉰다고 하지만 집에 가서 낮시간동안 하루 자면 다음날 야간 준비를 해야 했다. 심지어 마지막 비번 때는 24시간 안에 다시 주간 근무를 해야 할 때면 아침에 퇴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가 그대로 쌓이는 듯했다.
이 악명 높은 근무체계가 바로 신고수가 적고 인구수가 소멸단계로 가는 작은 지역의 파출소 근무 체계인 3조 2교대 체계이다. 뉴스기사를 볼 때마다 3교대 근무도 몸에 무리가 간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건만 1년 동안 2교대를 해야 한다니 처음에는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이 근무 체계에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다름 아닌 사림이다. 이론상으로 어느 날짜여도 아침에 하든 저녁에 하든 365일 내내 같은 팀원과 근무를 해야 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팀원들과 헤어지던 수사과와는 너무나도 다른 방식에 걱정을 한 아름 들고 눈길을 해치며 파출소 문 앞에 뻘쭘 거리던 첫 만남이 생생하다.
더군다나 3조 2교대를 할 정도면 파출소장 제외 단 3명이서 12시간을 책임져야 한다. 한 팀 당 3명뿐이기에 한 명이라도 연차를 쓰면 야간에는 신고를 나갔을 때 파출소를 걸어 잠가야 했고, 혹시 모를 사건이 터질까 연차를 쓰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천우신조인지 모르겠으나, 하늘은 나에게 정말 좋은 팀원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매일 만나 얼굴을 보아도 늘 따뜻하고 격려의 말을 해주는 팀장님과, 지구대‧파출소 생활은 처음인 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단 한 번도 화내지 않고 가르쳐주던 사수까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고마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파출소가 원래 근무하던 곳에서도 구석진 곳이라 집에서 파출소까지 50분 정도 소요되기는 하였으나, 실습시절 내가 경찰로써 가슴이 뛰던 지구대 파출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행복했던 1년이 아니었나 싶다.
새벽 출근길에 휴게소를 지나오며 마주치는 수많은 새벽 근무자들을 보며, 나 역시 마냥 늦잠을 자던 공시생에서 이제는 부지런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점에 힘이 나기도 하였다.
지역경찰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시민들이 아닐까 싶다. 경찰을 찾아오는 이들 중 주취자나, 마음이 아프신 분들을 만나는 것이야 필연적이라 감정이 동요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작은 지역사회에서는 아직 이웃사촌이라는 개념이 남아서 그런지 마음이 따뜻한 분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오고 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날마다 작은 행복을 느꼈다.
시비가 걸릴까 봐 경찰 옷을 입고 식당을 잘 가지 않던 나에게 “항상 고생해 주어 고마워”라며 먼저 말을 건네던 어르신부터, 경찰차만 지나가면 “안녕하세요!”라며 경례를 해주던 아이들까지.
많은 지역주민 분들이 경찰을 경계하고 불신하는 모습보다는, 마을 주민의 일원으로서 우리들을 많이 아껴주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때문에 사이렌처럼 큰 목소리로 맞냐 틀리냐로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소리치던 수사과와는 달리, 이곳에는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 생활화될 수 있었다. 또한 식당이 즐비하던 경찰서와는 달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3군데 정도뿐이었기에, 많은 현안을 들을 수 있었다.
지역에 시급한 문제나, 우범지역의 예상되는 지역에 소식을 통해 한 번이라도 순찰차를 더 돌다 보면, 때때로 다른 곳에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교통사고 실종사건 절도사건등 많은 사건사고에서 경찰 혼자힘 만으로는 하기 어려운 사건부터, 단순 주취자의 시비까지 주민분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해결한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1년이 지나며, 나는 또다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주주주야비야비야비를 걱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건만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인사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마지막 근무 날 나는 마을 몇 군데를 순찰을 돌며 1년간 나를 성장하게 한 지역사회를 일일이 눈에 담아보았다.
내비게이션을 켜야만 거점을 돌 수 있었던 봄을 지나, 모든 샛길과 지도상 없는 길도 외우게 된 겨울에 와서야 이 근무지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밀집한 원룸촌부터, 중고등학생 자매를 홀로 키우는 할머니가 계시는 외딴집까지 홍경장님과 마을 전체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해가지고 노을이 지며 날이 거뭇거뭇해질 즈음.
내가 처음 파출소에 왔을 때를 기념이라도 하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1년간 입고 쓰던 물건들을 백에 넣어 팀원분들과 인사를 한 뒤 마지막으로 지역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순찰차를 한번 쓰다듬고 파출소를 떠났다.
앞으로 수사를 다시 할지, 다른 업무를 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경찰이 되게끔 가슴 뛰게 한 지구대 파출소로 언제 가는 다시 돌아오고 싶다.
눈이 가득 쌓인 길을 헤쳐오며 또 다른 지역경찰로써 소임을 다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새로 발령받는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푸른 가로등으로 지역을 밝히겠다.
tip - 3조 2교대 근무는 사라지고 있다. 2025년을 마지막으로 내가 근무하던 지역도 모든 지구대와 파출소가 4조 2교대 근무로 변경되며, 3조 2교대 근무는 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