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학창 시절. 필수 권장도서로 읽었던 데미안이란 소설의 문구이다. 그때는 단순히 책의 스토리만을 중요시 여기던 시절이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읽기만 했다. 그러나 대학을 들어가고 생존의 직업준비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되었다. 이 알을 깨고 나오는데 나의 20대를 모두 보내야 했다.
2020년은 나에게 기념비적인 해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디어 신림동에서 출구로 나온 해이다.
매년 떨어지는 취준생의 심정은 글로 말로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다. 오죽하면 위로차 떠난 베트남 여행지에서 종교색과 상관없이 가는 곳마다 정성을 바치고 기도까지 했을까? 신기한 것은 그렇게 바치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돈 이면 신림에서 한 달은 피자 외 치킨을 고민 없이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액수였는데. 그러나 그것도 부족하여 고향 집 주변 절 신축하는 곳을 찾아가 기왓장에 이름을 새기고 시주까지 했었다. 그 용하다는 절에서 아버지는 108은 아니어도 할 수 있는데 까지 하라고 해서 무릎이 아플 정도로 기도로 했다. 아, 또 있구나. 불쌍한 반려견도 키우며 이렇게 정성을 다하면 혹, 복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이제는 주변 도움 없이는 화장실 사용이 어려운 할아버지를 위해 목욕도 시켜 드리고 기저귀도 직접 해 드렸다. 그때도 내 마음속에는 이런 게 쌓이면 나에게 복이 내릴 거라는 황당한 불씨를 품고 있었다. 물론 나의 종교는 뼈 속까지 기독교이며 어릴 적 사진에 보면 늘 가방을 메고 있는데 그 가방 속엔 하나님의 말씀을 적은 공책이 소중히 들어 있었다. 웃긴 얘기지만 3번 떨어지고 재미로 타라 점을 봤는데 봉사가 쌓여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그런 얘기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최소한 그렇게 살면 희망은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스크 대란으로 마스크 한 개 조차 구하기 어렵던 시절. 매일같이 주변에서 폐지를 줍는 등 구부러진 할머니께서 마스크가 없는 걸 보고, 고민은 되었지만 무의식적으로 한 개 남은 마스크를 드렸다. 날마다 배달되는 쿠* 박스도 모았다가 드리기도..
그러고 나서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은 하늘을 한 번 쓱 본다.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제발 이런 것 모두 기억해달라는 뜻으로
때론 보행기를 짚은 노인분이 길을 건너도록 돕거나, 길을 직접 찾아드리는 듯 정말 소소한 봉사를 매일같이 했다. 처음 한 달간은 괜한 짓을 하는 것 같고, 억지로 누군가를 도우려다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 달 뒤부터는 찾지 않아도 도울 일이 보였고, 어느새 그 일을 즐기고 있는 새로운 나를 보았다.
신림동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두 탑승하는 곳이다.
음. 대한민국의 모든 취준생들이 모여 새로운 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문화를 만들어 간다.
물론 출구로 빨리 나가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고시촌에서 컵밥을 먹으며 약속되지 않은 결과를 기다리며 몇 년을 살아간다. 이것도 부모님께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도와주는 운이 좋은 경우다. 우수한 머리를 갖고도 집안 형편으로 1~2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친구들도 여러 있었다.
신기한 것은 이곳에 들어오는 청춘들은 약속받고 온 것처럼 일찍 이곳을 나갈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나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신림에서 스터디 구성원들이 바뀌고 밥자리 술자리 멤버들이 바뀌면서 초등학교 때 2등만 해도 1등 도장 찍어 달라고 떼를 쓰던, 한 발짝만 뒤에 서도 불안해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점점 뒤로 처졌다.
더 이상 뒤로 갈 곳이 없자 3평 남짓한 원룸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5년 동안 내가 그 오랜 시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최면을 걸며 살았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매년 달랐지만 마지막엔 선을 베풀면 복을 받는다는 것. 내가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 위로가 싹을 틔워 탈출구를 향해 한발 한발 딛게 되었다. 나의 나이 앞자리가 바뀌고 나서야
30년간 갇혀온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갈 준비가 끝나자, 하늘도 알을 깨부술 기회를 주었다. 신림동이란 탑승구에서 헤매다 선한 영향력을 따라 뻗은 경찰이란 가지를 따라서 출구에 이르렀다.
이제 깨어낸 알에서는 '봉사'라는 새로운 세상을 쥐어주었다.
앞으로 또다시 이전에 답습해오던 경쟁이란 알로 갇혀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나를 비롯해 출구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자신에게 최면을 걸으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끝으로 30대에 경찰대학이란 새로운 알에 다다른 나에게 데미안의 문구에서 한 구절을 추가하고 싶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날갯짓해야 한다. 그것이 타인에게 우스운 일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