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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Aug 13. 2022

오늘 사무실엔 사이렌이 울린다

새내기 수사 경찰 - 5화

2주에 한 번 고향 집에 가는 날 매번 빠짐없이 듣는 말이 있으니 “좀 작게 말해”이다.

내 차 가득 2주 동안의 이야기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몽땅 싣고 가니 오죽하겠냐! 주어진 시간 안에 그 이야기들을 다 쏟아낼려니 빠르고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시간과 공간의 순서가 바뀌지 않고 차곡차곡 다 풀어내는 내 능력도 대단하다.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굉장히 큰 데다 한 번 말을 시작하면 2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통에 온 집안은 내 목소리로 가득 차 버린다.

오랜만에 본 아들 얼굴을 반가워하던 어머니도 2시간이 넘어서면 마치 버거운 등산을 한 사람처럼 피곤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만 그만!”외치시곤 한다.


2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날이면 그동안 삼켜왔던 문장들을 토해내듯 집안에 쏟아낸다.

심지어 어머니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다니며 말을 하고 잘 안 들리는 장소이면 말을 끊었다가 이어서 다시 한다. 빼놓는 문장이 있으면 안타깝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친구분들과 만날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 “우리 애는 집에 오면 말이 없어”일까.


어디 가서 목청 하나로는 지지 않는다는 아버지도 아파트 1층에서 들으니 그 동에서 내 목소리만 아주 선명하게 다 들리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하셨다.

내 목소리면 온 아파트 주민들이 내가 집에 온 것을 알 정도라고 제발 작게 말하라고 당부하신다.


그래도 조용하던 집이 활기를 찾는 것 같다며 집에 안 가면 심심해하시기도 한다.

 

사실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은 것은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좋은 태도가 아니다.


국민 MC인 유재석도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은 가장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와 관련된 내용의 책만 수권을 읽어왔기에 집이 아닌 밖에서는 중요한 대화를 할 때면 하고 싶은 말을 3번은 꼭 삼키고 핸드폰 메모장에 적은 뒤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맺음을 지어야 하는 조사 과정에서는 더욱 중요한 태도이다.

객관적인 증거라 할지라도 결국 질문과 답변은 ‘말’을 통해야 하기에 대화 시 발성이나 태도는 무엇보다 중요한 스킬이다.

따라서 처음 왔을 때부터 폭발하듯이 말하는 스타일 대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3번이 아닌 5번을 삼키고 종이에 펜으로 적고 나서야 고소인과 피의자들에게 말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팀원분들은 내가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고 다른 팀에서는 심지어 과묵한 직원이라고까지 소문이 났었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처참하게 깨졌다. 당시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조사를 해 본 고소인은 60을 넘어 70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었다.

보통 진술 녹화실에서 조사를 해오지만 노인은 답답하다며 사무실에서 조사를 원하였고, 시작부터 ‘아 그리고 크게 말해줘 나 귀가 잘 안 들려’라며 운을 띄웠다.


본가에 계시는 우리 할아버지도 보청기를 끼고 생활하시기에 익숙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발령받은 도시가 원래도 노인의 비율이 높은 곳인 데다가 경제 수사과는 특히 연령대가 높아 노인분들이 자주 오신다.


노인분들은 대부분 잘 안 들려 목청이 엄청 크시기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도 조사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 왔고 할아버지와 소리 지르며 대화하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기에 별생각 없이 조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번 시민분은 정말로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분이었다. 내가 한 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다시 나에게 질문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것만 골라서 되묻기를 반복하였다.

더군다나 노인은 이전에 내가 해온 사건과 달리 영상녹화실을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받고 싶다고 하였기에 다른 동료직원들도 모두 우리에게 시선이 쏠려있었다.

 

“언제 돈을 주신 거예요!”

“주스? 어?”

“언제 돈을 주었냐고요!!”

“뭘줏었냐고?”

“아니 건넸다면서요 돈!! 돈을 빌려줬다면서요 언제 넘겼어요!!” 목소리가 쩍 갈라져서 쇳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이번 고소인은 정말로 처음부터 아예 듣지를 못하는 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묻는 순간 답이 나오는 첫 번째 질문에서조차 온갖 손짓과 유의어들을 총동원해서야 비슷한 단어를 찾아내었다.

이후 질문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자 정말로 알아듣지 못하는 질문은 커다랗게 적어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원맨쇼를 방불케 하는 방식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2시간이 가까워서야 조사는 끝이 났다. 그 자랑스럽던 내 목소리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머리까지 아팠다.

 

 

조사가 끝나자 시민은 시민대로 반쯤 녹초가 되어있었고, 나 역시 사우나를 갔다 온 듯 상당히 진이 빠진 상태였다. 나는 힘겹게 조서받은 용지를 뽑으며 그제야 시작할 때 나를 지켜보던 주위 팀원분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팀원 중 2명은 이미 나가버렸고 남은 한 명은 이어폰만 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만 조사 중 참여 관인 팀장님만이 옆에서 얼굴을 찡그린 채 괴로운 얼굴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어폰을 낀 팀원을 보자 얼마나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왔는지 체감이 되었다. 나는 최대한 남은 절차를 서둘러 끝내고 시민에게 나가는 길을 안내하고는 사무실로 들어와 팀원들에게 목소리가 너무 컸다며 사과를 했다.

 

옆에서 함께한 팀장님 말로는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조사 후 다른 팀장님들께서 옆 사무실을 넘어 1층 전체에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고 알려주셨다 했다. 아마 평소라며 스스로 인지하고 작게 말하려 했겠지만, 노인 분을 고려하다 보니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데시벨로 제어 없는 목소리가 2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나온듯했다.

 

 

“죄송합니다. 평소처럼 진술 녹화실도 아니었고 워낙 잘 듣지 못하시는 분이라 저도 모르게 너무 크게 말이 나왔습니다. 적어도 우리 팀원이랑 옆 팀원 분들에게는 따로 사과를 드리러 가보겠습니다.”

 

“아니야 사과할 일이 아니야. 다들 업무 때문에 그런 것도 알고 빠짐없이 묻기 위해 그러는 거 아니까 괜찮아. 이주임 생각보다 목소리가 굉장히 크구나, 이주임 아니었으면 조사 못했을 거야 당사자인 시민분은 얼마나 답답하겠어 그런 점만 잘 숙지하고 있으면 됐어”

 

다시 생각해보니 고소 당사지인 노인께서는 얼마나 답답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인적사항을 답변하는 것에 있어서도 여러 번을 답해야 했는데, 억울하다는 부분을 답변할 때에는 정말로 앞이 막막했을 것이다.

 

다행히 나의 단점이라고 여겨왔던  목소리와 목소리 체력의 강자로 2시간 정도는 지지치 않고 끊임없이 말하는 습관 덕에 고소인과의 의사소통이 쉬웠다고 조금은 안도가 되었다.

 

그렇게 평소에 목소리 큰 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해 한 달을 노력했는데 그날 이후로 몇몇 친한 분들은 나를 ‘사이렌’이라고 불리었다. 내 목소리면 1층 전체 사람들이 다 듣는다며 붙여준 말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시끄럽다는 부정적 별명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나의 운명에 수긍하며 이후 수많은 노인 분들을 조사하면서 나의 사이렌은 쉼 없이 울렸다.


 

다만 이제는 핵심적인 질문은 커다랗게 a4용지에 써서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드리는 습관을 추가하였다. 단순히 목소리만 크다해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몇 번이고 고민한 끝에 나온 보완책이었다. 그 덕분인지 심각하게 들리지 않는 분들은 질문지를 보고 편하게 답변을 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다.

나의 일생일대의 단점이 빛을 바라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집에 가면 나의 목소리는 아파트를 채운다. 이전과 달리 집에서만 커지는 목소리가 아니라 직장에서도 가끔씩 목소리가 커져 오지만, 이점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수많은 시민 중에 누군가에게 커다란 목소리가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사이렌’을 울리며 a4용지를 꺼내 든다. 부모님이 말하신 ‘활기를 주는 목소리’까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모두가 본인의 주장을 빠짐없이 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잘 들리는 목소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시민 억울함을 종이에 적어도 되지 는 그런 사이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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