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수사경찰 - 12화
사기를 담당하는 경찰인 나는 참 어이없는 속임수에 넘어가 자신의 삶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매일 수십 건씩 본다. 그리고는 입버릇처럼
“아니, 그 말을 믿었어요?”한다.
안타까운 일은 독거노인들이 전 재산을 날리고 마지막 희망으로 나를 찾아올 때이다. 그분들은 대부분은 자식에 관련된 일들이다.
아무리 자식들이 본인들을 돌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면 자신들의 마지막 생계인 돈도 아낌없이 사기꾼들에게 준다.
그런 날엔 집에 가면 내가 이런 욕을 아나 할 정도로 격한 욕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보이스피싱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성행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가슴속 저 밑바닥까지 있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가족애를 노리는 것이다. 그렇치 않으면 약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대상. 에잇! 나쁜 놈들.
많은 사기 사건에 지친 나는 퇴근을 위해 가방을 드는 순간 나의 인생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야 어쩌면 좋아?” 평소에 늘 당당하고 속마음을 잘 드러 내지 않는 친구이기에 뭔가 큰일이 생겼음을 감지했다.
고등학교때부터 17년 이상을 알아 왔지만, 전화는 거의 하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손에 꼽는 친구였다.
그런 친구이기에 우리가 서로 전화를 한다는 것은 엄청 난 큰 일이라는 것이다. 가족이 큰일을 당했거나 친구 신상에 불행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했다. 이 친구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안되는데....순간 손이 떨렸다.
“친구야. 나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다.”
상상치도 못한 말을 전해 듣고 난 순간 잠시 호흡이 멈췄다. 오늘 그렇게 많이 접한 사건 같은 것에 이 똑똑한 친구가 걸렸다니 내용을 들어보니 친구가 당한 수법은 전형적이면서도 아주 너무나 기본적이 보이스피싱 수법이었다. 그것도 완전 교과서 같은 어디에나 있는 매뉴얼 같은 것. 아, 정말 이런 것에 속는 구나.
“대검찰청에서 계좌가 보이스피싱범죄에 이용된거 같아 구속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협조하면 구속은 안 당하게 해주겠다.”며 현금을 뽑아 직원에게 전달해주면 안전하게 보관해주겠다며 돈을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매사에 꼼꼼하고 확실하던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게 믿기지 않아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아니 국가기관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니까!! 그건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잖아 그리고 적어도 나한테는 물어봤어야지!!”
아, 경찰인 나에게도 못 물어 볼 정도로 공포였나보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치는 동안 친구는 전화를 하면서 사기같다고는 느꼈지만, 막상 ‘구속’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이스피싱범이 하라는대로 따라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답하였다.
구제절차와 고소방식들을 설명해주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친구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사회경력이 10년은 넘어가고 똑똑하다고 믿어온 내 친구마저 이렇게 쉽게 호랑이에게 문을 열어주건만. 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어르신들이나 사회초년생들은 얼마나 손쉽게 그들에 표적이 될지 생각하니 경찰로써 현실이 괜스레 안타까웠다.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로 유명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는 엄마로 분장한 호랑이가 오누이의 집을 찾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아이들은 엄마라면 목소리를 내보라하고, 손을 내밀어 보라는 등을 요구하다 문구멍으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나는 때때로 이 동화가 떠오르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오누이처럼 목소리, 손, 눈으로까지 확인하고 호랑이에게서 도망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문을 열어 호랑이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개그프로그램에서 보이스피싱을 희화화하고, 수많은 홍보로 해당 범죄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 보이나, 아직도 수사기관에는 수 많은 피해자들이 매일 같이 고통스럽게 경찰서를 방문한다.
수사과로 오기 전부터 나는 ‘보이스피싱을 대체 왜 당해?’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엄마 목소리를 흉내 내는 호랑이처럼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은 “대검찰청” “금융기관” “병원”을 사칭하거나 심지어 어린 자녀 목소리까지 흉내 내곤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돈을 달라고 요구하거나, 말투가 어딘가 어색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런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리거나, 오히려 범죄자들을 골려주는 시리즈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엄마를 사칭하는 호랑이를 알아차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기관은 절대로 개인정보나 돈을 요구하는 일이 없다고 수차례 홍보를 하여도, 막상 보이스피싱단원이 “구속될 수 있다” “병원비를 당장내라”는 말에 머리가 하얘지는 경우도 많기 떄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노력 형 천재 중 하나인 내 친구가 보이스피싱을 당하며 해당 범죄의 무서움을 느낄수 있었다.
동화에서는 도망치던 오누이가 나무위로 올라가 황금동앗줄을 받고, 호랑이는 썩은 동앗줄을 받아 떨어지며 해피엔딩을 마이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보이스피싱을 일단 당하면 금액기 크던 작던, 개인에게는 소중한 돈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재빠르게 신고를 해도 돈을 되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CCTV의 동선을 따라 현금을 인출해간 인물을 찾아내도, 고액알바라는 문구에 눈이 멀어 지원한 일일 알바인 경우가 많고 보이스피싱 지휘부등은 순신간에 잠적해버린다.
뛰어난 수사관들 덕분에 보이스 피싱 일당을 일망 타진하는 경우도 많지만, 피해자들의 돈은 이미 사라져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호랑이에게 애초에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개개인이 어떤 상황에서도 공공기관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 기억해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찰로서도 같은 얘기를 반복 홍보하여, 시민들이 지겨워할때까지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를 흉내 내는 호랑이의 목소리와 손을 알아채고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동앗줄을 기다릴 것도 없이 문 앞에서 호랑이가 잡혀 더 이상 보이스피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꿈꿔 본다.
오늘 이글을 마치며 나도 모르게 제일 걱정되는 엄마에게 문자를 넣었다
--엄마 병원이든 친구든 돈을 요구하는 문자나 연락이 오면 절대 응하면 안돼—그래도 부족해 보였다.
--그건 몽땅 사기야 속지마 알았지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