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수사경찰 - 11화
어릴 적 나는 강아지 키우는 게 소원이었다.
형제자매가 없는 나에게는 정말 간절했었는데 단 한 번도 키워보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엄마가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이다.
알레르기만 있으면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을 텐데 인형만 한 강아지라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오죽하면 함께 가다가 저 멀리 강아지가 보이면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아버지 손을 잡고 본인은 눈을 감고 갈 정도였다.
어릴 적 동네 개한테 엉덩이를 물린 후 그 공포의 트라우마가 평생 엄마를 괴롭힌 것이다.
한 번은 셋이 저녁을 먹고 동네 길을 걷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강아지가 엄마의 근처로 다가와 끙끙거리자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 어려운 괴이한 소리를 내며 그 멋쟁이 우리 엄마는 혼자 달아나 버렸다.
어이없는 돌발상황에 아버지와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날 부모님은 심하게 다투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그래도 어려운 공부도 척척하셨고 남들이 어렵다는 승진도 하신 세상의 잣대로 보면 성공하신 분인데 강아지한테는 가족들이 창피해서 함께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지금은-------------?
엄마보다 덩치가 더 큰 아키타 개를 산책도 시키고 늑대 같은 이를 드러내는 개에게 입 속에 손을 넣어 간식도 주신다. 너무 이쁘다고 볼 때마다 두 팔로 안아도 남는 그 큰 개를 안아준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로 된 것이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 엄마의 그 아들이라고 나에게도 최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의 소울푸드를 말하라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침마다 수혈을 해주는 아메리카노나 미국 경찰들이 손에 장갑처럼 끼고 다니는 도넛을 떠올릴 수 있지만, 나는 ‘국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경찰 관련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국밥은 그 의미도 다양하다. 시체를 본 뒤 형사들이 선지국밥을 먹는다든지, 유치장에 있던 범인에게 돼지 국밥을 먹이는 등 여러 장면에서 국밥은 해당 장면의 장식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그토록 경찰을 동경하고 꿈꿔왔으면서도 경찰이 순대국밥을 먹는 씬을 보면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삼겹살이나 불고기 등 깔끔하고 맛있는 음식을 놔두고 왜 저런 돼지 내장을 맛있다고 먹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일단 맛보기나 해보고 말해 봐”
아버지께서 조금이라도 권하기만 하면 반발심에 “이건 음식이 아니야 나이 먹어도 절대 안 먹을 거야”라며 바로 뱉어내곤 했다
따라서, 유년기 때부터 돼지 부산물로 우려낸 국밥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단연코 먹지 않았던 국밥이 이 순대국밥이다. 학교에서 가끔 순댓국을 줄 때가 있었는데 급식실을 가득 채우는 그 역한 냄새에 식사시간이 고역이었다.
거무 튀튀 한 순대는 색감부터 거북스럽고 반쯤 굳은 젤리처럼 묘한 식감으로 무슨 맛으로 먹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음식이었다.
20대를 거쳐 30대에 다다르며 먹지 않았던 음식도 도전해왔지만 순대만큼은 되도록이면 멀리했다.
떡볶이 집에 가서도 간과 허파만 골라먹었고, 순대국밥을 먹을 때면 순대는 전부 건져내었고 물속에서 나온 순대는 더 흉한 몰골이어서 더 보고 싶지도 않았다.
마치 어린 시절 입맛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듯 ‘순대는 당연히 맛이 없을 거야’라며 먹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11월 초. 나에게 역사적인 일이 생겼다.
“순대 좋아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가자!!”
사귄 지 30일이 조금 넘은 여자 친구가 순대를 먹으러 가자고 권하였다. 아, 그 해맑은 얼굴에서 순대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순대를 먹어 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순대의 본고장 천안 병천으로 향하였다
천안 병천순대가 워낙 유명한 것도 알고 위치도 고향과 가까운 곳이었기에 언제든지 갈 수 있었지만 순대를 워낙 좋아하지 아니하였기에 30년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그제야 예전 장윤정 가수가 “연애시절에는 매운 닭발을 그렇게 좋아하더니 결혼 후에야 원래 안 먹던걸 알았다 “는 말에”연애할 때는 뭐든 좋아한다 하지“라는 변명이 이해가 되었다
여러 티비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순대 맛집은 11시임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식당 밖에는 외부 대기줄을 위해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산더미처럼 쌓아놨는데 그 높이에서 순대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더군다나 해당 식당뿐만 아니라 바로 옆 식당도 긴 줄이 늘어선 것으로 보아 얼마나 유명한지가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겉으로는 헤헤 웃으며 순번을 기다리는 여자 친구와 기대감을 공유하였으나, 속으로는 ’ 순대를 입에 무는 순간 한 번도 안 먹은 게 드러나면 어쩌지 ‘란 걱정이 앞서 왔다.
순댓국 밥과 모둠순대 시킨 후 주변을 둘러보자 하나같이 손님들의 얼굴은 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보였다. 정체모를 거무튀튀한 보라색 덩어리가 뭐 그리 맛있는지 다들 말없이 식감을 맛보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자 기대감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활짝 웃는 여자 친구를 앞에 두고 두려운 마음으로 고기를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여자 친구가 앞에 있다는 것으로 신경이 다른 것에 쏠리자 편견 없이 처음으로 순대라는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한입 물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맛있는데?’라는 표현 하나뿐이었다. 내가 상상하고 있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20년 전 떼를 쓰며 오만상을 한 채 뱉어내던 그때와 달리 돼지 잡내나 불쾌한 식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말로 동반자와 기분을 교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식사 후 집에 돌아오며 드는 감정은 함께한 덕분에 이토록 다채롭고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겉에 감사함과 동시에 30년간 왜 제대로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컸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거짓과 진실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아무리 사건이 단서도 없고 외국에 서버가 있는 등의 악조건에서도 끝까지 수사하고 도전하자! 고 그토록 되뇌어왔건만, 이 간단한 음식조차도 맛없을 거야 라는 상상에 갇힌 채 시도조차 한 적 없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도 느껴졌다.
앞으로 나만의 음식 리스트에 있어 순대와 순대국밥은 음 참. 괜찮은 인생 음식 메뉴로 추가될 것이다. 여자 친구 덕에 병천으로 향하는 도로를 알게 된 것에 지금도 때때로 고마움과 당시에 맛의 즐거움을 표현하곤 한다.
그것은 단순히 먹을 메뉴가 하나 늘었다는 기쁨보다, 내 마음이 만들어 내는 허상의 나약함을 이결 낼 구 있는 동기를 주었다는 데에 더 의의가 크다.
최근 타인의 명의 계좌를 도용하고 대포폰을 사용하여 행하는 보이스피싱이나 처음 듣는 어플리나 프로그램으로 인한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당 사건을 받았을 때 ‘어차피 못 찾아’라던가 ‘전문가도 아닌데 이 범죄수법을 어떻게 알아내?’라는 마음가짐보다는 ‘이 사건도 순대국밥처럼 도전하면 별거 아닐 거야 ‘라는 마음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그리하여 될 수 있는 한 끝까지 시도하고 파헤쳐보도록 해야겠다. 생각해보니 모든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드는 것 같다.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절대 불가능하다는 나약함도.
그것을 아는데 30년간 피해 다닌 순대국밥의 공이 크다. 순대국밥은 순대국밥이 결코 아니었다.